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스스로를 질투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어려서부터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범생이기는 했으나 별로 남을 부러워하는 일은 없었다. 세상 누구보다 내가 좋았다. 다른 사람과 나를 바꿀 수 있다고 해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지금은 어린 시절보다 더 자주 나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종종 스스로를 싫어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나의 삶이 소중하고 나 자신이 애틋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가 질투하는 인간임을 받아들인다.
내가 심히 질투하는 경우는 대체로 두 경우이다. 하나는 나보다 수업을 잘하는 사람을 볼 때이고, 다른 하나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볼 때이다. 둘 다 내가 되게 잘하고 싶어 하는 영역인가 보다. 물론 나보다 수업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세상에 넘친다. 그 모든 사람들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질투를 느낄 때는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보다 더 잘한다고 느껴질 때이다.
일단 수업에서 나는 나와 동갑내기인 동기 선생님에게 가장 큰 자극을 받는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도 어느 조직에서나 적극적이고 우수한 인재로 인정받아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선생님의 열정은 내가 그동안 경험해온 어떤 사람보다 더 대단했다. 나는 항상 일을 할 때 선이 있었다. 대학생활을 하며 무리하다가 응급실에 실려가거나 허리디스크로 한 학기를 누워 보낸 경험을 한 뒤로 나는 내 체력과 상황 이상으로 무리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다. 게다가 결혼을 하고 정교사가 된 이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으려 지나치게 일 욕심을 내려하지 않았다. 스스로 넘치지 않으려 마음을 동여매도 어느 정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수업 준비를 하다 보면 야근은 일상이었고, 주말에도 자료들을 가져가 집에서 수업 준비를 하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시간적으로 더 한계를 느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내가 직접 하원 하려면 야근을 줄여야 했고, 주말에 집에서 수업 준비를 하려면 아이를 재운 새벽 시간에 해야 했다. 아이를 낳기 전 아이 엄마 선생님에게 '커피 한 잔 하자'라고 말했다가 '시간이 없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을 때 무척 서운했다. 아무리 바빠도 잠시 커피 마실 시간이 없을까 싶었다. 먼저 용기 내 다가간 내 마음을 선배 선생님이 몰라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되어 복직을 해보니 너무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아껴가며 분주히 일해야 했다. 매일 출근 시간 한 시간 전에 출근해 교무실에 가장 먼저 도착해 일을 시작해야 그나마 퇴근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아이 엄마라는 핑계로 조금이라도 더 일을 허술하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 욕심은 100에서 70으로 줄여야 했다. 플래너에 '올해는 70점만 하자'라고 써넣고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내 욕심만큼 실컷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몹시 속상하게 느껴졌다.
이런 상황 가운데 나의 동갑내기 동기 선생님이 있었다. 나와 같이 임용되어 서로 다른 과목을 전담하게 되었다. 내가 대학원을 졸업하는 동안 그녀는 이미 경력을 쌓아 나보다 훨씬 베테랑이었다. 게다가 강철 체력으로 교사 체육대회에서 MVP로 뽑혔다. 미혼이던 그녀는 내가 욕심나지만 차마 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들을 실컷 해나갔다. 매일 교무실에서 9시가 넘어 퇴근하며 수업 준비를 비롯해 여러 연구대회에 참여했다. 방학 때마다 반 아이들과 캠핑을 가고 좋은 추억들을 쌓아갔다. 학생들이 원하면 언제든 남아 늦은 밤까지 상담을 해주었다. 선생님들이 모이는 모든 모임과 회식에 빠지는 일이 없이 늘 끝까지 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동기 선생님은 우리 학교 최고의 '인싸'로 인정받았다. 나 역시 학교의 모든 크고 작은 소식들을 이 선생님을 통해 듣게 되었다. 참 부러웠다. 체력과 가정의 제약 없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그녀가. 나도 대학원을 가지 않았더라면, 결혼을 좀 늦게 했더라면, 아이를 좀 늦게 가졌더라면 이렇게 충분히 일할 시간이 있지 않았을까 막연한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동기 선생님에게 느끼던 질투심이나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은 점점 긍정적인 자극으로 변해갔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인 나도 마음이 점점 단단하고 강해져 갔다. 결혼과 출산 모두 내가 원한 나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다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나에게 최선인 일의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수업의 질과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가 그 이전보다 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어진 시간에 훨씬 집중도 있게 수업 준비를 하게 되었고,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더 겸손하게 매일 출퇴근 길에도 EBS 강사들의 강의를 비교해 들으며 내 수업을 보완해가려고 노력했다. 내 아이를 키우다 보니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이 누군가의 자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학생 한 명의 이름도 얼마나 고민 끝에 지은 이름일지 헤아려졌다. 학생의 부족함이 안쓰럽게 여겨졌다.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도 내 학생을 대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교사로서 그 이전보다 더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동기 선생님과 나는 표면적으로 차이가 나는 교사생활을 하고 있지만, 나 나름의 교사로서의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동시에 마음이 가정에 더 기울어져 학교 일에 좀 소홀해지고 싶어질 때면 동기 선생님을 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래도 같이 들어온 동기와 실력 차이 난다는 이야기는 듣지 말자'라는 최후의 자존심이 나를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 이제 그녀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동료 교사로 성장해나갈 것을 믿는다.
다음으로 나는 나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질투가 난다. 국문학도였기 때문에 글을 잘 쓰는 동기와 선후배들을 숱하게 봐왔다. 그때마다 질투심에 배가 조금씩 아팠다. 한 번은 대학 수업에서 공동 글쓰기 과제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같이 과제를 하는 사람은 유명한 청소년 문학상을 받은 수재로 알고 있었다. 나는 당시 국문학에 교육학 이중 전공생으로 글로 써내야 하는 과제는 넘쳐났으므로 평소처럼 적당히 써서 그 언니에게 넘겼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충 이런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다. '이게 최선이니?' 머리를 띵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자존심이 퍽 상했다. '다시 써서 보낼게요'라고 답장을 한 뒤 할 수 있는 모든 집중력과 기술을 동원해 다시 써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답장이 왔다. '아까보다 훨씬 낫네'. 어디 자기는 얼마나 잘 쓰나 두고 보자 했는데 정말 글을 뛰어나게 잘 써서 할 말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대학원을 졸업한 뒤로는 글을 써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나의 글쓰기는 학생들의 생기부를 쓸 때 가장 쓸모 있었다. 언젠가 글을 쓰고, 책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과 동경은 있었다. 글쓰기 전공이셨던 지도 교수님께서 '누구든 십 년을 꾸준히 쓰면 다른 사람이 읽을 만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이 오랫동안 내 마음의 희망이었다. 지금 당장은 임용 공부를 해야 해서, 초임 교사로 적응을 해야 해서, 아이들을 키워야 해서 글을 쓰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쓰리라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한 대학 동기에게 연락을 받았다. '나 브런치 작가가 되었어.'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브런치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같이 문과대를 졸업한 친구도 글을 쓰는데 왜 나는 못 쓸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이를 임신하고 몇 달째 부러워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교사 글쓰기 소모임 모집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벌써 5년째 글쓰기를 미루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소모임에 들어갔다. 그리고 매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오랜만에 시작한 글쓰기는 참 낯설었다. 학교 다닐 때는 노트북만 켜면 줄줄 써지던 글들이 왜 이토록 어려운 걸까. 오랜만에 쓰는 글이 어색했지만 학생 때와 달리 평가받지 않고 오직 격려받는 글쓰기임을 기억하며 지금 당장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 썼다. 첫째를 키우며 둘째를 뱃속에 품고 지내는 날들의 우울, 기쁨, 어려움, 설렘 등. 소모임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큰 즐거움과 자극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 엄마 선생님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어떻게든 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나도 쓸 수 있다는 용기가 되었다. 이후 둘째를 낳고 결혼기념일에 부부만의 시간을 얻게 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아이들 없이 남편과 단둘이 나온 나들이였다. 그런데 남편이 시간을 줄 테니 한 번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보라고 했다. 그날 카페에서 주어진 두 시간으로 운이 좋게 한 번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때는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에 너무나 기쁘고 뿌듯했다. 나도 글쓰기를 통해 무언가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커다란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그렇게 소모임 글쓰기와 브런치 글쓰기를 틈틈이 이어가는 가운데, 아이 둘을 키우는 것이 너무나 고단하게 느껴졌다. 첫째를 키운 경험으로 백일만 지나면 밤에 통잠을 잘 거라 믿었건만, 둘째는 8개월이 지나도록 매일 밤 여러 번 깨서 울었다. 반년 넘게 푹 자지 못하자 만성피로가 나를 따라다녔다. '글쓰기는 무슨 글쓰기, 그게 잠재워주는 것도 아니고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부질없다'라는 생각이 나를 자꾸 처지게 했다. 그때마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브런치에 쓴 글이 카카오톡에 소개되었어, 내 글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어, 내 글이 공모전에서 상을 받게 되었어'. 성실하게 자신의 재능을 피워나가는 친구가 너무나 대견하고 축하하는 마음 뒤로 나도 글 좀 원 없이 써보고 싶다는 마음, 나도 시간이 있다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리고 질투심이 들었다. 이 '질투심'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앞의 두 마음은 그래서 나를 글을 쓰게 만들지 않는데 마지막에 느낀 질투심이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글을 쓰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기형도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워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이제 나는 질투하는 사람이 되려 한다. 만족스럽지 않은 현재에 만족해보려고 애쓰기보다는 만족하지 않고 나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질투하며 나아가려고 한다. 질투한다는 것은 더 잘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다. 질투하므로 나에게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