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드라마 '미생' 중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공인된 '저질 체력'이다. 평생 체육 과목 열등생으로 살았다. 초중고등학교 오래 달리기는 전교 꼴찌를 매번 다투었다. 중학생 때 구르기 시험을 보는데 나름 성실한 학생이던 나는 매일 체육실에 들러 매트 위에서 구르기 연습을 하고 집에 갔다. 그래도 시험 날 구르기를 엉망으로 하자 이를 안쓰럽게 여긴 체육 선생님께서 '너는 노력을 봐서 F 대신 E를 줄게'라고 말씀하셨다(실제 E라는 점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학생 때는 늘 비염에 콧물을 달고 살았다. 대학생 때는 대학교 앞에서 쓰러져 실려간 적도 있었다. 대학교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 교육 봉사를 하며 좀 무리했다가 허리디스크를 얻어 한 학기를 거의 휴학하다시피 하고 치료를 받았다. 아이를 임신하고 찾아온 갑상선 항진증으로 손발이 덜덜 떨려 서있을 수가 없어 남들보다 긴 육아 휴직을 했다. 성격은 매사에 열정적인데 몸이 안 따라주니 점점 몸을 사리게 되었다.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시험기간 일주일은 밤새며 도서관에서 지냈는데, 대학원 졸업 후 임용시험공부를 하다 하루는 자리에서 일어나니 의자에 피가 흥건했다. 무리해서 오래 공부하다가 못 견딘 몸이 하혈을 한 것이다. 점점 더 욕심나는 일이 있어도 '나는 몸이 약해서 안 돼'라는 생각에 마음을 접곤 했다.
그런 내게 정신이 퍼뜩 들게 한 문장이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만화이자 드라마인 '미생'에 나온 대사이다.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승부 따윈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충분한 고민을 버텨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웹툰&드라마 '미생' 중에서
이 문장을 읽고서야 나는 '공부' 못지않게 '체력'도 노력해서 만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바라는 일과 가정의 성취를 위해서는 반드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동안 대학과 대학원을 가기 위해, 교사가 되기 위해 늘 공부만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며 몸을 갈아 살아왔다. 그런데 혼자 앉아서 하는 공부는 체력이 안 되면 기대서라도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었는데 학생을 가르치고 아이를 기르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체력과 관련이 있었다. 체력이 부치는 날에는 학생들과 내 아이들에게 짜증이 났다. 같이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일찍 마음으로 포기했다. 최소한의 것들만 하려고 했다. 자꾸만 나의 부족한 체력을 핑계로 회피하며 위축되고 있었다. 이렇게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십 대에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나의 체력을 희생했다면, 삼십 대에는 체력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공부 못지않게 투자하고 애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둘째를 낳고 나는 지금 돈을 들여 1:1 헬스 피티를 받고 닭가슴살 샐러드를 사 먹으며 몸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덕분에 임신 때 찐 몸무게 20킬로가 다시 빠졌고, 처음보다 더 많은 양의 운동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는 그 모든 시간이 너무나 괴롭다. 나는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나의 체력에 대한 주변의 평가와 개인적인 경험으로 내 체력과 운동 능력이 최하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조금만 무리해도 쉽게 아프다고 생각하니 운동할 때도 자꾸 소극적인 태도가 되고 무리하는 게 겁이 난다. 또한 조금만 세게 운동하고 나면 며칠간 근육통으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힘들고 마음도 우울해진다. 그런데 트레이너 선생님은 자꾸만 나에게 '운동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라'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마음으로 '아니, 나는 안 된다니까요!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요! 나는 정말 운동 열등생이란 말이에요!'라고 외친다. 그러면 트레이너 선생님은 '외람된 말씀이지만, 어떤 유명한 헬스 트레이너가 한 말이 생각나네요. 닥치고 하세요'라고 대답한다. 가끔은 눈에 눈물이 고인다. 진짜 못하겠는데 해내라고 하고 또 나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 서럽고 힘들어서이다.
이렇게 운동할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우리 반 체육 전공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아이들은 담임 수업이라 어떻게든 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도 자주 꾸벅꾸벅 존다. 깨어있을 때에도 눈빛이 멍하다. 나는 이 아이들이 원래 그런 아이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학교 배구대회에서 우리 반이 우승하는 일이 있었다. 신나서 매번 수업이 없을 때면 우리 반 경기를 응원하러 운동장에 나갔다. 아니 그런데 체육 전공을 준비하는 아이들의 눈이 반짝거리고, 목소리도 자신감에 차서 경기를 주도하고,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수업시간에 발표할 때면 주눅 들어 작은 목소리로 힘없이 발표하던 그 아이들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전히 다른 활기를 보였다.
그 날 이후 그 아이들이 다르게 보였다. 공부에는 자신 없지만 체육은 잘하는 아이들. 운동을 배우다 보면 그 아이들이 자주 생각난다. '나는 앉아서 공부하는 것은 할만했는데 운동하는 것은 이렇게 고역이구나. 너희도 그랬겠구나. 내가 너희 마음 다 몰라줘서 미안해. 학교에 돌아가면 더 쉽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도록 선생님이 연구와 노력 많이 할게.' 운동하며 이런 성찰을 정말 매번 한다. 십 대인 내 학생들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데 나도 운동을 포기할 수는 없지. 어떻게든 견뎌내고 싶다. 사람들 말로는 계속 운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 운동을 즐기는 날이 온다는데 그 날이 내게도 올까? 평생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없을까? 몸이 힘든 걸 제일 싫어하는 내가 그나마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걷기 뿐이다. 그것도 산책하듯 슬렁슬렁 걸어 다니니 무슨 운동이 될까.
다시 마음을 동여매 본다. 나는 삼십 대에 체력에 가장 큰 투자를 할 것이다.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체력을 만들 테다. 그 체력으로 사십 대 이후에는 보다 더 내가 욕심내는 것들을 체력 핑계 대지 않고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흑흑. 그런데 계속 운동할 생각을 하니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