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뿌연 안개 속에 갇혔을 때

자존감수업 | 오직 나를 위한 마음공부

by 지혜더하기
선생님, 사실 저는 제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요

내 삶인데,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뿌옇다고.

그냥 하루하루 흘러간다고.


"오늘 저녁 뭐 먹고 싶어요?"라고 물으면

"아무거나요."

"주말에 뭐 하고 싶어요?"라고 물으면

"모르겠어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 앞에서 멈춘다.


이 사람들은 게으른 게 아니다.

무성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너무 오랫동안,

남의 기대에 맞춰 살아야 했다.



타인의 지도로 걸어온 길


이들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늘 '타인의 지도'가 놓여 있다.

부모님의 기대, 학교의 기준, 조직의 요구.

어린 시절부터 그 목소리들은 너무 크고 단단해서,

내 안의 작은 욕구는 들릴 틈이 없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이었다.


그 환경 속에서 이들은 '사회적으로 정답인 욕망'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익혔다.


"남들만큼은 살아야지",

"이 나이에는 이 정도는 해야지."


그 목소리는 너무 커서

내 안에서 올라오는 작은 신호들—이건 싫다, 이건 하고싶다—은 묻혀왔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내 욕구를 접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에게 삶은 점차 색을 잃는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 좋은 대학에 가라고 해서 갔고,

결혼하라고 해서 했고,

애 낳으라고 해서 낳았어요.

제가 뭘 원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잘못한 게 아니다.

그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었다.

다만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라는 감각이 점점 희미해진 것이다.



삶이 뿌예지는 순간


심리학에서는 이 상태를 '자기 주도성(autonomy)의 상실'이라 부른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감각이 약해지는 것.

운전대를 잡고 있긴 한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상태.


자기 주도성이 낮아지면 삶이 뿌예진다.

'내가 지금 행복한가?' 모르겠다.

'내가 뭘 좋아하는가?'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삶은 뭔가?' 더더욱 모르겠다.


이런 상태가 길어지면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 온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힘들다.


내가 무엇을 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상태.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자신의 요구가 외면된 결과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


거창한 인생의 비전부터 물을 필요는 없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같은 질문은 너무 크고 막연하다.

그것부터 물으면 더 막막하다.


대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나는 오늘 아침에 먹은 빵이 맛있었나, 아니었나?"

"나는 지금 이 음악이 좋은가, 싫은가?"

"나는 이 사람과 대화할 때 편한가, 불편한가?"


처음에는 답이 안 나올 수 있다.

너무 오래 내 안의 소리를 꺼놓고 살았으니까.


그럼 더 작게 쪼개면 된다. 좋다,

싫다. 편하다, 불편하다.

이 두 가지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 감각, 내 감정, 내 욕구를 인식하는 것.

이게 흩어져 있던 '나'를 다시 불러 모으는 자기 인식(self-awareness)의 과정이다.



"아무거나"를 그만두는 연습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이 질문에 "아무거나"라고 답하는 습관이 있다면,

오늘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몇 초라도 멈춰서,

내 몸이 뭘 원하는지 들어본다.


정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다.

그냥 내 안을 들여다보는 연습이다.


"나는 오늘 따뜻한 게 먹고 싶어."

작은 문장이다.

하지만 '나'를 주어로 하고, '나'의 욕구를 담은 문장이다.

이 문장을 자주 말하다 보면, 점점 '나'를 알아간다.


"아무거나요"라고 답하던 사람이

"나는 이게 좋아요"라고 말하기 시작할 때,

눈빛이 달라진다.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그건 '나'가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다.



나를 찾는다는 것


나를 찾는다는 건 어디 멀리 떠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아는 것.

이 작은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뿌옇던 삶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낸다.


오랫동안 남의 기대에 맞춰야 했다면,

나를 찾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그게 당연하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느낄 때,

그건 당신이 이상한 게 아니다.

너무 오래 남의 이야기를 들어와야 했을 뿐이다.

이제는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오늘 하나라도 완성해 보기를.


그 한 문장이,

뿌연 삶에 작은 빛을 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