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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인 Feb 26. 2019

'시계'에 대하여

내 손목을 채우는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현대인의 삶은 시시각각을 다투는 삶이다. 아침 9시가 되면 주식시장이 열려 누군가는 그 시간에 맞춰 스마트폰을 통해서 주식을 사고팔고, 누군가는 회사에 늦지 않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연타한다. 시간을 모르면 바보가 되어버리는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원하는 때에 시간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잠깐만, 우리가 매 번 시간을 확인할 수 없었다면 '회사에 9시까지 오세요'라는 규칙이 생길 수 있었을까?


시간을 보기 위해서는 시계가 필요하다. 시계는 사전적인 의미로 "시간을 재거나 시각을 나타내는 기계나 장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시계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현대인들은 보통 '스마트폰'을 통해서 시간을 확인한다. 가장 정확하며,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편리한 시계(시계를 추가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가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의 손목에는 종종 시계가 올려져 있곤 하다. 그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어떤 이는 손목시계를 보는 것이 편할 수 도 있고, 손목시계를 액세서리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또 과시욕을 해소하기 위한 사람도 손목시계를 착용한다.


나는 손목시계를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기계식 손목시계'를 좋아한다. 기계식 손목시계는 물리적 에너지로 태엽을 감아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즉, 사람이 어떠한 물리적 방식을 통해서 시계 내부의 태엽을 감고, 그 태엽이 풀리면서 시간을 측정한다. 쉽게 말하면 사람이 태엽을 감아야 한다. 감는 방식에서 수동 기계식 시계와 오토매틱 기계식 시계로 나뉘지만 물리적 에너지를 주어야 함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보면 귀찮기 짝이 없는 이 기계식 시계를 나뿐 아니라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기계식 시계의 물 흐르듯 흘러가는 초침을 보면 넋을 놓고 쳐다본다. 그래서 기계식 시계가 좋다.


내가 처음 시계식 시계를 샀을 때는 재작년 2월이었다.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면세점에서 구입했다. 시계를 살 생각은 별로 없었으나, 생애 최초의 면세점을 이용할 기회인데 화장품 같은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같은 팀 팀원이자 친한 친구인 최한글 님이 시계를 사보는 것이 어떻냐고 했다. 당시 내가 차고 있던 시계는 가죽 스트랩이었기 때문에 스틸 소재 스트랩의 시계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별생각 없이 시계를 사기로 했다. 하지만 유튜브로 본 기계식 시계는 신세계였다. 너무 부드럽게 흘러가는 초침이 시간의 연속성을 표현해주는 듯했다. 기계식 시계는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시간의 흐름을 담은 유일한 물체인 양 내게 소리쳤다.


최종 구입을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일상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어떤 브랜드의 어떤 시계를 사야 하는 것일까 고민하는 것이 행복했다. 처음에는 예산을 200만 원 정도까지 잡고 태그호이어 브랜드의 까레라 칼리버5를 눈여겨봤다.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명품이라는 점에서 내 마음에 들었다. 롯데백화점에 있는 매장에 가서 실제로 착용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결정적으로 기계식 시계의 심장인 무브먼트가 부실하다는 정보를 접하고 리스트에서 삭제하였다. 디자인이 아주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시간이 너무 안 맞거나 자주 고장이 나는 것은 질색이다. 


명품시계의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태그호이어의 까레라 로즈골드 칼리버5. 실제로 보게 되면 매우 영롱함을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고민했던 시계는 미도라는 브랜드의 멀티포트였다. 면세가로 40만 원 남짓이었고 심플한 디자인에 COSC 인증, 파워매틱 80 등 입문용 시계로는 여러 시계 커뮤니티에서 정평이 나있었다. 내가 자주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온리뷰"에서 미도라는 브랜드와 멀티포트에 관한 영상을 보고 그것에 매료되어 구입을 결정했다. 실제로 사무실에서 가까운 용산 아이파크 면세점에서 착용해볼 수 있어서 3번은 갔던 것 같다. 아 참. 귀찮았을 텐데 늘 같이 가준 내 친구 최한글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현재에도 내가 자주 보는 유튜브 채널 "온리뷰"이다. 현재 100여 개가 넘는 리뷰가 있으니 관심 있는 시계가 있으면 리뷰를 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시계는 멀티포트가 아니다. 최종 구매까지 했지만 철회하고 같은 브랜드의 커맨더2를 구입했다. 여러 시계 커뮤니티를 보며 시계를 구경하던 중에 내 시선을 단 번에 사로잡은 시계가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 이유가 굉장히 명확하다. 태그호이어 까레라 칼리버5와 유사한 디자인에 멀티포트와 같이 훌륭한 무브먼트를 지녔기 때문이다.


내가 딱 원하던 모든 조건을 갖춘 미도 커맨더2. 적당한 가격, 준수한 무브먼트, 디자인 모두 합격!


그렇게 나의 첫 시계는 미도라는 브랜드의 커맨더2가 되었다. 시계를 구입하고 착용한 사진도 많이 찍고 친구들한테 기계식 시계에 대해서 막 설파하고 다녔다. '너도 어서 이 흐르는 초침에 대해서 논해보라고 하면서'. 이때가 본격적으로 시계 커뮤니티를 들락날락하면서 소위 '눈팅'을 많이 했던 시기였다. 점점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시계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면서 새로운 시계를 또 구입하고자 하는 욕구가 찾아왔다. 이 욕구를 잠재우기 위해서 갈색 가죽 스트랩으로 커맨더2를 줄질도 해봤지만.... 당분간이었다. 


내겐 이미 드레스 워치(정장에 잘 어울리는 시계)는 있으니, 활동적인 일을 할 때 필요한 필드 워치 혹은 다이버 워치가 사고 싶어 졌다. 그중에서도 방수에 강한 다이버에 관심이 갔다. 실제로 필드 워치라는 독자적인 종류의 시계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롤렉스 사의 익스플로러가 필드 워치라고 혹자는 주장하나, 그 특징이나 정체성이 명확하지 못하다. 반면 다이버 워치는 높은 방수 기능, 다이버 베젤, 미세조정 링크 등 여러 가지 특징이 명확했다. 따라서 다이버 워치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고르기 시작했다. 


오리스 사 애커스, 활동적인 남성에게 잘 어울리는 다이버 워치

첫 번째, 다이버 시계의 기본인 방수 기능은 적어도 300M 일 것. 여기서 미도의 오션스타나 해밀톤의 프로그맨 등이 제외되었다.


두 번째, 가격이 세금 포함 150만 원 이하일 것. 당시 신한은행 어플을 켜 본 뒤 세워진 기준이다.


세 번째, 바 인덱스(시간을 표기하는 부분은 인덱스라고 한다. 로마로 표기되어 있으면 로만 인덱스.) 일 것. 아무래도 나는 바인덱스가 가장 예쁜 디자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 결과 후보는 두 가지 시계로 압축되었다.


크리스토퍼 와드 사 C60 Trident Pro 600, 세컨즈가 삼지창을 형상화하여 독자적인 디자인이 매력

두 시계의 큰 차이점이라고 하면, 애커스는 세계 시계 명가 스위스의 스와치 그룹 산하의 오리스라는 브랜드 파워가 장점인가 하면, 트라이던트 C60의 경우 마이크로 브랜드이긴 하나 검증된 마감력과 600M 방수 기능이 장점이다. 


시계는 착용해보지 않고 느낌을 명확히 알기는 쉽지 않다. 애커스는 실제로 착용할 수 있었지만, C60은 그러지 못해서 애커스를 구입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난항이었다. 해외에 나갈 일이 없어 미개봉된 제품을 구입하려고 했지만. 거래 성사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미개봉 제품을 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건이라는 점에서 꺼림칙했다. 사는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불법적 시장을 내가 조성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석연치 않았다.


결국 나는 유튜브에 있는 많은 후기 동영상과 나의 감(혹은 나의 팔목)을 믿고 올해 1월 31일에 크리스토퍼 와드 사 C60  Trident Pro 600를 구입했다. 2월 20일 내 품에 온 두 번째 시계는 대만족이었다. 사이즈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실물로 보니 디자인이 더 예뻤다. 얼른 시계 줄을 줄여서 차고 싶어서 다이소에서 공구를 사서 뚝딱뚝딱 줄인 뒤 착용해 보았다. 착용감은 생각 그 이상이었다. 게다가 미세조정 링크가 있어서 반코 정도를 상황에 따라 줄일 수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방금 보신 그 시계를 들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약 1년 동안 두 가지 시계를 들인(많은 시계 매니아들은 시계를 사는 행위를 '들인다'라고 돌려서 표현한다.)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시계를 구입하면서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그래도 나란 놈은 소비에 있어서 합리적으로 기준을 세우는 편이구나. 

두 번째, 나는 가성비를 엄청나게 따지는 사람이구나를 다시 한번 느꼈다.

세 번째, 지금도 부드럽게 흘러가는 초침을 보면 기분이 좋다. 변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편이 더 듣기 좋겠다.


다음 식구가 될 녀석을 살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진 모르겠지만.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 시계를 들일 일은 없어 보인다. 단적인 예로 이제 시계 커뮤니티에 머무는 시간이 제로에 수렴하고 있다. 아마도 이제는 시계가 아닌 다른 것에 흥미가 생겨서 인지도 모르겠다. 


다음번 글은 '데이터 수집에 대해여'가 제목이었으면 좋겠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와드의 트라이던트 C60,  미도의 커맨더2, 지샥의 머드맨(군입대 102 보충대 연병장 앞에서 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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