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다는 것
탐조하는 이들 사이에선 무척이나 싫어하는 새가 있다.
공동 책 작업을 하느라 그림작가와 함께 숲에 갔을 때였다.
어떤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나는데
마치 물 속을 유영하듯 날개를 접고는 헤엄치듯 날아가다
날개를 펴다 그러는 것이었다.
사인 곡선을 그리듯 그렇게 날아가는 모습이 참 멋졌다.
그때까지 새에 관심이 1도 없었는데
그림작가는 한창 새를 보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새 이름을 알려줘도 그닥 흥미가 일지 않았는데
마침 눈에 그 새 한 마리가 들어왔다.
와, 저 새 정말 멋지게 나네요!
그림작가는 그때 내가 감탄하는 걸 들으며
새를 보는 관점이 다양할 수 있다는 걸 터득했다고 한다.
그 새가 직박구리다.
탐조인들 대부분이 직박구리를 싫어하는 까닭은
반가운 새를 만나 탐조하려면 어디선가 직박구리가 날아와서는
다 쫓아버리며 훼방을 놓기 때문이다.
이 녀석이 소위 숲의 정찰병이다.
어디를 가나 터줏대감처럼 있다.
소리도 찌~~익 찌이~~~익
얼마나 어여쁜 새소리가 많은데
이 녀석이 내는 소리는 그냥 소음에 가깝다.
그러니 미운털만 덕지덕지 박힌 그런 녀석이다.
그런데 그 소음도 자꾸 듣다보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단 과일을 좋아하는 직박구리는
겨울철 그것도 먹이가 궁해질 때가 아니면 우리 모이대를 절대 찾질 않는다.
어느 순간 이 녀석이 보이면, 먹을 게 진짜 곤궁하구나 짐작할 따름이다.
우리 집 모이대는 일년 중 이 즈음이 가장 붐빌 때다.
새들은 겨우내 저장해놓은 것들을 어지간히 다 찾아먹었을 테고
숨어있는 애벌레들도 꺼내 먹을 수 있는 정도는 뒤져먹은 터라
거기다 겨울이어도 눈이 드물다보니
물도 부족하고 여차저차 새들에겐 말하자면 보릿고개같은 시절인 것 같다.
이제 햇수로 7년차 새를 띠엄띠엄 관찰한 바로는 그렇다.
이번 겨울 좀 많이 추웠던 어느 날 모이대 물그릇에 물이 꽝꽝 얼었다.
보통 오전에 해가 뜨고 시간이 좀 흐르면
물이 녹는데 그날은 한파여서 종일 물이 얼어있었다.
가뜩이나 물이 부족할 텐데 싶어서
딴에는 도움을 주려 뜨거운 물을 물그릇에 부었더니 그만 사기 그릇인 물그릇이 터져버렸다.
다시 궁리를 하다 부동액이 떠올랐고
그래서 생각해낸 게 설탕물이었다.
설탕물을 내놓으니 직박구리, 어떻게 알고 나타났다.
그리고는 날마다 물그릇 주위에 와서 살다시피 한다.
평소에는 물도 잘 안 마시던 녀석들이
물이 얼까봐 내놓은 설탕물 그릇으로
직박구리가 많게는 십 여 마리 모이대로 와서
서로 먹겠다며 싸움이 벌어지고
굉장했다.
창을 사이에 두고 콩쥐와 나는 배꼽을 잡는 일이 잦아졌다.
너무 단 걸 먹어서 얘네들에게 해가 되는 건 아닌지 슬금 걱정이 생길 무렵 날이 풀렸다.
해서 올해 설탕물은 이제 끝이야, 이러고는 다시 맹물을 내놓기 시작했다.
직박구리는 며칠을 더 물그릇에 와서는 물맛을 확인하고 가는 눈치다.
내 눈, 그러니까 인간의 입장에선 그 모습이 어쩐지 안스러워 사과를 하나 내놨다.
해마다 겨울이면 사과나 배를 내놓곤 했는데
올해는 직박구리가 잘 오질 않았다. 그러다 설탕물을 어떻게 알고 찾아오기 시작했던 거다.
설날에 선물로 들어온 사과박스를 우리 식구 중 나말고 안 먹으니 줄어드는 속도가 느리다.
해서 나눠 먹기로 했다, 새들과.
사과를 먹는 직박구리 모습은 조각가같다.
사과를 그 뾰족한 부리로 어찌나 정교하게 파먹는지..
그렇게 절반 넘게 직박구리들도 먹고 참새들도 고 작은 부리로 먹고 그랬는데
어느 날 사과가 사라졌다.
처음엔 사과가 아래로 떨어졌나 했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그동안.
직박구리는 계속 모이대로 왔고
두 번째 사과를 내 놓았다.
이번에도 사과가 1/3 정도로 작아지자 사라졌다.
심증이 가는 녀석이 하나 떠올랐다..
가끔 빵을 내놓으면 와서 물고 가고
땅콩도 통째 내놓으면 물어가버려
작은 새들이 먹을 게 없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잘게 다지거나 빻아서 내놓는다.
*세 번쨰 사과, 직박구리가 먹고있던
세 번쨰 사과도 그 정도 사이즈가 되자 사라졌다.
그런데 세 번째 사과를 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마귀가 모이대 근처를 둘러보고 가는 걸 봤다.
이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랬구나, 이 넘이.
이 까마귀같은 넘이 정말!!!
이러고 @#$%^& 마구 미워했다.
이제 올해 사과도 끝이야! 이러고 모이대를 향해 이야길 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직박구리는 해맑은 모습(내 해석)으로 또 모이대를 기웃거리다
물그릇에 가서 두어 모금 마시다 가기를 반복했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오늘 네 번째 사과를 내놓고야 말았다.
사과 세 개를 직박구리가 오롯이 먹지 못하고
중간에 계속 날치기를 당했다 생각하니
까마귀가 더없이 미웠다.
까마귀가 물고가는 모습을 한 번도 못 본 게 아쉬웠던 마음이 더 큰 걸 수도 있다.
잘 모르겠다. 얄밉게 크기가 작아지길 기다렸다 낚아채가는 까마귀 심보가 고약하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7년 전 처음 모이대를 만들고 빵조각을 처음 내놓은 날
우리가 보는 가운데 어치가 와서 빵을 물고 숲으로 가는 장면을 봤다.
그떄 숲과 내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가깝게 연결돼 있는지를 순식간에 느껴버렸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러 까마귀의 그 행동에 대해 씩씩대고 있는 무지한 나를 발견했다.
숲 가까이까지 아파트가 들어서도록 우리가 새들이며 숲의 목숨들에게 원죄가 이미 있다는 거
그래서 시작한 새 모이주기였는데
어느 새 이 새는 괜찮고 저 새는 안 되고 분별하고 있었다...
왜 어떤 새는 먹어도 되고 어떤 새는 먹으면 안 된다는 건가?
왜 어떤 새는 이쁘고 어떤 새는 밉다는 건가?
더구나 그 사과는 내가 키운 것도 아니다.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려 우리 집에 온 사과이긴 했으나
햇볕과 바람과 비와 흙과 흙 속 미생물들의 도움으로 결실을 맺은 사과인데..
그러니 이 사과는 가능한 여럿이 나눠 먹을수록 공평해지는 거다.
나도 먹고 직박구리도 먹고 참새도 먹고 그리고 그밖에 모이대에 이따금 들르는 새들과
그리고 1/3정도 크기가 되어 물어갈 정도가 되었을 때 까마귀도 먹는 거다.
아마도 네 번째 사과가 사라질 즈음이면 이제 겨울은 끝날 듯 싶다.
다행이다, 겨울이 가기 전에 공평하게 사과를 나눠먹을 수 있게 되어서.
*오늘 그림은 창 너머로 찍은 흐릿한 사진을 보여 그렸다.
사과를 먹으면서 단물이 묻은 부리를 긴 혀로 날름거리는 장면도 너무 재밌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오늘 떠오른 글귀,
"새들이 도시에 오는 이유는 도시가 탄생하기 전에도 왔기 때문이에요"
2022.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