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기러기
아침에 큰기러기 사진을 한 장 보았다.
사진을 찍은 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러기가 리더인지 당번인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기러기들이 땅에 고개를 박고 먹이를 먹는 동안
고개를 쭉 빼고 망을 보는 녀석들이 있다고 했다.
주위에 논두렁같은 두둑이 있으면 그리로 올라가서 시야를 확보하면서 보곤 하는데
한 녀석은 조금 더 오버를 하는 건지
다른 녀석들 식사 장소에서 한참이나 앞으로 나와 길 근처에 자리를 잡고 경계근무를 서는 것 같다고...
새를 보러 가면 이따금 그런 녀석들을 만난다...
그게 그들 사이의 규칙인지 아니면 어쩌다 그런 자세가 내눈에 들어온 건지 알 길은 없지만.
오늘 본 사진 속 기러기는
내 눈에 경계근무보다는
어쩌면 사색 중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배를 채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사색, 그래서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그렇게 자리를 잡고 먼데를 응시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새를 지나치게 의인화한 해석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료를 지키려는 리더든 당번이든 아니면 사색을 하는 기러기든
어떤 경우였어도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러기를 그래서 오늘 그려봤다.
오늘은 원주에 있는 한 중학교에 강의를 다녀왔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원주로 가면서
심심함에 좀 빠져볼 요량이었다.
분주하게 정신없이 사는 이 삶에서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멈춰보자고 스스로에게 얘길 했다.
이게 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이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벌써 아이패드를 꺼내고
원고를 수정하려던 걸 아차,
멈추고
꺼내던 것들을 가방에 도루 밀어넣고는
시선을 창밖으로 던졌다.
휙휙 뒤로 사라지는 풍경 너머
아마 양평과 원주 그 사이 어디쯤이었던 것 같은데
개천에 잔뜩 모여있는 민물가마우지 떼를 봤다.
그리 크지 않은 개천 가운데로 돌이 꽤 여럿 있었나보다.
돌을 하나씩 차지하고 올라앉아서 몸을 말리고 있었다.
가마우지는 물 속으로 잠수해서 물고기를 잡아 먹고 사는 새이면서
깃털이 방수가 안 된다.
해서 잠수를 하고 난 뒤에는 꼭 날개를 펼쳐 말려야 한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방식이지만 생존에 더 이득이었기에
이 방향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마치 빨랫줄에 빨래를 널듯 날개를 양 옆으로 펼친 모습이 볼만 하다.
만약 저 돌들이 없었다면
저 개천이 개발에 떠밀려 사라졌다면
가마우지들은 대체 어디서 몸을 말릴까
고 짧은 시간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풍경은 이미 시야 밖으로 사라진다.
생각해보니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바라본 게 꽤 오랜만이다.
늘 쫓기듯 무언가를 쓰든가 읽든가 그도 아니면 그림이라도 그리든가...
오늘은 작정하고 심심하기로 했다.
목표한만큼 심심치는 못했다.
창 너머로 지나가는 풍경들마다 단 한 순간도 같은 게 없었으니
그러다 문득 멍 때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인류의 문화적 업적을 살펴보면 깊은 사색에 힘입은 바 결코 적지 않다.
사색하는 과정에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그 깊은 사색 과정에 예술도 눈부신 진전을 견인하지 않았던가
정신없이 쏟아지고 치고 들어오는 외부의 자극으로 넘쳐나는 이 시대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심심할 짬이 없다.
심심함이 증발해버린 시대,
너무나 분주한, 그러나 한없이 가벼운 이 분주함으로는 어떤 새로운 것도 잉태할 수가 없다...
벨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꿈의 새"
라 했다고..
원주 강의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커다란 느티나무를 지나고
아파트 입구쯤 왔는데
정월대보름달이 차고 화~안 했다.
달님 동무삼아 아파트를 크게 한 바퀴 돌아 들어왔다.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래서 얼른 집 가서 쉬고 싶었지만
일부러 빙 돌아 들어오고 보니 그도 괜찮았다.
조금 더 심심함의 여운을 즐겼다고나.
아침에 본 기러기 한 마리에서 사색의 힌트를 얻고
조금은 깊은 심심함 가까이로 가보려 시도했던 하루
2022.2.15 정월대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