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림일기

그 작은 몸으로

일 년만에 만난 상모솔새

by 최원형

아침에 콩쥐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이었는데 무슨 일인가 했더니

"우리 아파트 000동 있잖아. 그 옆에 전나문가 거기에 작은 새들이 있어.

굉장히 작아."

"그래? 그럼 지금 나가볼게"

파카를 챙겨입고 마스크를 하고 쌍안경을 들고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파트 주차장을 지나는데 슷슷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린다.

콩쥐가 일러준 곳으로 가니

아이는 아직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나무를 가리킨다.

그리고는

"솔새류 같아. 난 이제 갈게"

잘 가라고 입으로 인사를 하며 내 눈은 나뭇가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새, 참새보다도 작은 새 서너 마리가

이리저리 재게 움직이는 게 보인다.

쌍안경으로 좇다보니 상모솔새다.

아, 그 작은 새가 올해도 왔었구나

반가움이 뭉클 인다.


작년에도 우리 아파트 옆단지에서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올해는 꽤 여러 마리가 보인다.

전나무에서 소나무로 옮겨다니며 부산스럽다.

슷슷슷 소리를 내면서

한참을 새들 동선을 따르다 저 멀리로 날아가며 소실되는 어느 지점에서

발길을 돌렸다.


새들을 보는 동안 동네 주민 몇몇이 내 옆을 지나갔지만

아무도 내게 뭘 하느냐 묻진 않았다.

설마 궁금한 마음이 아무에게도 들지 않았던 걸까?

내가 열심히 보고 있으니 방해하지 않으려던 건 아니었을까?

다들 머릿속 어떤 일들로 바빴던 걸까?

집으로 들어오면서 잠깐 들었던 생각이다.


상모솔새는 겨울에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가장 작은 새다.

가을부터 우리나라를 통과하거나 겨울을 나는 철새다.

이제 입춘도 지났고

곧 녀석들은 북으로 이동할 것이다.

요즘엔 철새들도 그냥 뭉개고 텃새처럼 지내기도 하던데

대체로는 이동을 한다, 그럼에도.

대체 이 녀석들은 어디까지 오갈까?

유럽에서 동쪽으로 바이칼호, 남쪽으로 코카서스, 천산산맥, 알타이산맥,

히말라야에서 중국 중부, 러시아 극동, 우수리, 사할린, 북한 등지에서 번식한다고 알려져있다.

도감에서 여기까지 찾아보는데

몇 번이나 저 작은 새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몸길이 고작 10cm정도에다 날개 길이가 5cm정도다.

그 작은 날개로 저 먼거리를 이동한다는 사실이

도저히 내 머리로는 상상이 안 된다.


그 먼거리를 오간다는 사실을 안 이후

더 특별해진 새다.

존경의 마음이 절로 이니까.


나뭇가지 위를 휙휙 날아다니며

톡토기, 진딧물 같은 곤충류나 겨울잠 자는 거미류를 찾아서 먹는다.

기온이 올라가면 이제 서서히 활동을 시작할 이런 작은 동물의 수를 적절히 조절해주는

상모솔새는 말하자면 살아있는 살충제인 셈이다.


생태계 서비스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조류의 역할 가운데 하나인 건 분명하다.

생태계에서 적절하게 수를 조절해주는 것은

항상성을 유지하는데 무척 중요하다.

이런 고마움이 인간에겐 전혀 어필되지 못한다.

새라는 존재가 도시 곳곳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조차

많은 이들은 놓치고 산다.

새소리는 차소리에 묻히고

새의 움직임은 머릿속을 꽉 채운 온갖 생각들에 가려지기 때문이다.


2020년 1월에 그린 상모솔새가 생각나서 찾아봤다.

다이어리에 끄적이다가 그렸던 걸로 기억한다.

책상 위에 새도감이 있었고

어디쯤 펼치다 맘에 들어 보고 그린 그림

이 그림이 나를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으로 안내한 첫 작품이다.^^


먼 거리를 이동해가는 어디쯤에서 한번씩 쉬어가며

먹이도 보충할 텐데

그 길에 북한도 지날 테고

압록강도 건널 텐데

닿는 곳마다 배 곯지 않고 무탈하게

목적지에 잘 도착해서 새끼 잘 치고

올 가을에 무사히 또 만나길...

곧 떠날 걸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애잔하다.

철새들은 올 땐 반갑고 떠날 땐 늘 마음이 힘들다...

뒤바뀌는 기후로 서식지 파괴로..

이들을 기다릴 환경에 어떤 변수들이 위기로 덮칠지 알 길이 없으니 더욱이...


오늘 읽었던 글 가운데

"긍정의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무언가로 바삐 살면서도 늘 자유를 갈망하지만

그 바쁨으로 인해 자신을 옭아매고 자신을 고갈시키는데도

그걸 우리는 인지조차 못한 채 살아간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를 그래서 '피로사회'라고...

자신을 번 아웃 시키고 방전될 때까지 혹사시키는 사회

그것이 긍정성이 가져온 부작용이라는데...


우리 주변에 오가는 새에게 귀를 열고

눈을 마주할 여유를 갖는 길이 피로를 걷어내는 일일 수도


202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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