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언니 아빠가 글쎄… 병원에 가다가 넘어진거야. 그래서 복숭아뼈를 다쳤대”
집에서 한참 100일도 되지 않은 신생아를 달래고 어르고 있는 내게 어느 날 동생이 전화해 하소연했다. 동생은 친정 부모님과 같은 동네에 살았고 나는 차로 30분 남짓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었다. 출산 직후 친정 부모님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쯤 됐을 때의 일이다.
에휴. 또 무슨 일이야.
아버지는…
아버지는 손이 많이 가는 분이었다. 자주 아프고 자주 사고를 쳤고 그래서 엄마를 자주 근심하게 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우리 역시 근심했다. 그러다 어느 날 당뇨, 심부전증 같은 병을 들고 왔다. 먹을 것도 관리해 줘야 하고 일주일에 세 번씩 병원에 가서 신장 투석도 해야 했다. 신장 투석이 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먹을 것 정도는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공부도 했고 떨어졌고 다시 취직 준비를 하고 직장에 다니며 정신없이 살았다. 내 바쁜 일상에 아버지의 식단 관리 같은 게 들어올 틈이 없었다.
아니 사실 있었다. 그럴 틈은 많았다. 같이 살면서 그 정도도 못하나.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의 건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엄마에게로 넘어갔다. 엄마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아버지 때문에 근심하다, 체념하다, 분노하기를 반복했고 나는… 외면했다. 실체도 없는 미래를 위해 경주마처럼 달리며 20대를 보냈고,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멈추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부모님과 분리된 가정을 이루면서 이 외면은 더욱 확실해졌다. 그러다 아이를 낳고 다시 캥거루처럼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갔으니 스스로도 좀 우스운 정신상태이긴 하다.
어찌됐든 아버지가 복숭아뼈를 다쳤다니 들어나보자 싶었다.
“어쩌다”
“얼음에서 미끄러졌나봐”
“그래서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
“병원에 갔는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네?”
“뭐?”
복숭아뼈를 다쳤는데 수술까지? 그 때는 몰랐다. 이날 이 작은 부상이 얼마나 큰 화로 번질지. 그래서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래… 집 앞에 병원이지? 너가 한 번 가봐”
“아니, 근데 아빠가 병원 밥을 안 드신대. 맛이 없나봐”
“그런 건 그냥 못들은 척 해. 지금 병원 밥을 안 드시면 어쩔거야. 너도 애가 둘이고 나도 애가 둘이고, 엄마는 우리 도와주고…”
“그래, 그 말이 맞아…에휴”
역시 또 책임은 엄마로 향했다. 당시 나는 100일이 안 된 쌍둥이 둘을 키우고 있었고, 동생도 6개월 좀 지난 둘째가 있었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식사를 거부한다고 계속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엄마는 손수 밥을 차려서 가져다 줘야 하는 상황이 고단했다. 그저 복숭아뼈를 다쳤을 뿐이지 않나,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