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을 결심한 순간은 뚜렷하지 않았다. 격렬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거창한 말에 반응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름 붙이지 못한 감각들이 천천히 쌓이다가 어느 날 한데 묶여 ‘지금 시작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도의 속도였다. 하지만 그 느린 움직임은 어느 순간 분명한 방향이 되었다.
나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스물다섯이다. 하지만 내 첫 실험실은 아주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 군대에서 우연히 시작한 미식 매거진 <Gourmevel>은 단순 취미가 아니라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뤄보는 과정’ 그 자체였다.
촬영을 배우고, 편집을 익히고, 글을 쓰고, 카드뉴스 디자인까지 손으로 만들었다. 외주나 협업 없이 모든 공정을 혼자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일이 완성되는 구조”에 대해 감각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스케줄이 생기고, 광고 제안이 들어오고, 종종 식음료 업계 모임에 초대를 받아 다양한 대표님들을 가까이서 뵙게 되었다. 내 또래에서 보기 어려운, 이미 자기 일의 리듬을 갖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속으로 묘한 자극이 번졌다.
그땐 몰랐지만, 아마 그 시기부터 창업이라는 바람이 아주 조용하게 내 안에서 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창업에 대한 마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취업이 먼저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마침 주변 모두가 인턴 자리를 찾느라 분주했고, 나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게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파르게 성장 중인 스타트업 'Planfit'에 지원했다. 회사에 들어가보고 맞으면 취업하고, 아니면 나중에 다시 생각하자는 정도의 태도였다. 창업을 진지하게 고려하던 시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플랜핏에서의 인턴십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데려갔다. 단순한 경력 한 줄을 위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나는 일의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움직이는지를 처음으로 생생하게 보게 되었다. 그 경험이 결국 내가 창업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지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인턴 첫 주는 CS 업무였다. 당시의 나는 생각이 너무 짧았다. '답변 기계'가 된 느낌이라며 허무함을 느꼈고, 사용자 문의를 단순히 소모적인 업무로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때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고 있었음을. 사용자의 불만과 욕구를 한 문장 한 문장 읽어내는 일이 제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기반인지.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안에 ‘Solver’라는 포지션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솔버는 기획·디자인·개발·QA까지 스프린트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끌어가며, 팀 구조에서 생기는 병목에 얽매이지 않고 생산성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1인 포지션이었다.
솔버들이 일하는 방식을 곁에서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업무 범위가 넓다’는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하나의 문제를 기획에서 디자인, 개발, 검수까지 스스로 이어가며 완성해내는 모습은 내가 알고 있던 업무의 경계와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침 'AI'가 빠르게 발전하던 시기라, 개발을 모르던 디자이너가 코드를 다루고 디자인 경험이 없는 개발자가 화면을 만들며 역할의 틀이 실제 현장에서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기사로만 접하던 변화가 눈앞에서 구현되고 있었고, 한 사람이 제품의 전체를 매끄럽게 이어 붙이는 모습은 내가 막연히 상상해왔던 이상적인 일의 형태와 거의 겹쳐 보였다.
나는 그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거의 홀린 듯 'Solver'에 지원했다. 그리고 그 결정 이후, 목표 지표를 끌어올리기 위해 문제를 더 날카롭게 정의하려는 플래닝부터 UI/UX를 고려한 디자인, 난생처음 해보는 개발까지 스스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실험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표를 다시 분석하는 일까지, 제품의 처음과 끝을 직접 이어가며 이 일의 흐름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한다고 일이 항상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 전환은 되지 않았다. 의외로 그 아쉬움의 한가운데에서 낯설 만큼 조용한 여유가 생겼다.
그 시간을 지나면서 나는 이 업무를 통해 발견한 내 장단점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빠르게 도전하고 실행하는 힘은 분명한 장점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의욕이 앞서 문제를 충분히 정의하지 않은 채 솔루션에 몰두하는 습관도 드러났다. 노력에 비해 성과가 아쉽게 반복되던 이유 역시 그 지점에 있었다.
그 무렵, 다른 회사를 알아보기 위해 채용 공고를 아무 생각 없이 넘기던 날이 있었다. 취업이 다음 단계라는 믿음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추천 목록에 뜨는 회사들을 하나씩 눌러보며 목표와 서비스, 그리고 그들이 풀고자 하는 문제를 살펴보는 순간, 손끝이 조용히 멈췄다.
플랜핏에서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치밀하게 고민하는 문화를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막상 회사들을 들여다보니, 많은 곳에서 무엇을, 왜 만들고 있는지조차 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채용 공고와 소개 문구는 화려했지만, 정작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때 문득, 아주 단순한 질문이 떠올랐다.
“잠깐만... 이제 나 혼자서도 서비스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다음 질문.
“그렇다면, 내가 정말 풀고 싶은 문제를 직접 붙잡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 질문 이후, 나는 취업을 고민하던 자리에서 처음으로 내 문제를 스스로 풀어보는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즈음, 서로 다른 자리에서 들은 두 문장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젠슨 황은 “작은 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하라”고 말했고, 데이터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늘 강조해오던 송길영 작가 역시 최근 강연에서는 “실패 비용이 크게 줄었으니, 일단 시도를 많이 해보라”고 했다. 결국 두 문장이 말하는 바는 같았다. 생각만 하지 말고, 먼저 시도해보라는 것.
그날, 나는 방 구석 의자에 앉아 첫 화면을 띄웠다.
거창한 결심도, 준비된 선언도 아니었다.
가슴이 조금 빨리 뛰는 것을 느끼며
지금의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를 조용히 떠올려보고 싶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