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속에서 찾은 문제"

by 위승주

먼지 속에서 다시 발견한 이름


창업을 결심했을 때, 선택지는 무한했다.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도 있었고, 지금의 트렌드에 맞는 전혀 다른 분야를 찾아볼 수도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오래된 노션 팀 페이지 구석에 묻혀 있던 발표 자료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드링키지'

교내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수상까지 받았던 이름이었다. 와인 입문자들의 취향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만들겠다며 준비했던 프로젝트. 파일을 열어보는 순간, 솔직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문제도, 기능도, 타겟도 모호하다.

문장 하나하나, 화면 구성 하나하나가 지금 기준으로는 형편없었다. 당시의 나는 이 서비스로 무엇을 해결하려는지조차 분명히 모르고 있었다. 문제는 흐릿했고 방향은 없었다. 개발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안 된다"는 말이 들리면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렵다"는 말이 들리면 억지로 다른 방법을 찾았다. 왜 그렇게까지 흔들렸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다시 시작해야 할 지점은 솔루션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는 것.




솔루션을 지우고, 문제만 남겼을 때


나는 '드링키지'라는 이름과 형태를 잠시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저 그때 내가 해결하려 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그게 진짜 문제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현상에 불과했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아주 단순한 질문들을 반복했다.


- 이 문제가 존재하는가?

- 누가 이 문제를 겪는가?

- 언제, 어디에서 이 문제가 드러나는가?

-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질문을 던질 때마다 문제는 조금씩 형태를 드러냈다. 마치 거친 표면이 조각 도구에 깎여 나가듯, 바라봐야 하는 지점이 점점 뾰족해졌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문제만이 남았다.




말은 같아도 맛은 다르다


와인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어려움 앞에서 멈칫한다. 추천을 받을 때 “단 게 좋아요”, “부드러운 게 좋아요” 같은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와인을 오래 마신 사람이 말하는 단맛이나 부드러움은 전혀 다른 감각의 스케일을 가리킨다. 경험의 층위가 다르고, 그 경험이 만들어낸 언어도 다르기 때문이다.

굴절된 언어

겉으로는 같은 단어를 쓰지만, 입문자가 기대하는 ‘단맛’과 추천자가 말하는 ‘단맛’은 서로 다른 세계에 놓여 있다. 그래서 추천자가 “정말 단 편”에 속하는 와인을 골라줘도, 입문자는 그것을 단다고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곧잘 발생한다.


이 작은 불일치는 첫 경험의 방향을 크게 틀어놓는다. 입문자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와인을 첫 선택에서 마주하게 되고, 그 경험이 기대와 어긋나면 “와인은 나와 안 맞는다”는 결론으로 쉽게 이어진다. 취향이 형성되기도 전에, 학습의 출발점에서 이탈해버리는 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지식의 저주(Curse of Knowledge)’라고 부른다. 어떤 것을 너무 잘 알게 되면, 그것을 전혀 몰랐던 시절의 감각을 자연스럽게 잃어버리는 심리적 현상이다. 와인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에게 ‘단맛’은 잔당량, 산도, 질감의 균형을 포괄하는 복합적 개념이다. 반면 초보자에게 ‘단맛’은 일상에서 접하는 음료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둘은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다른 대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언어가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이지만, 그 언어가 초보자에게는 오히려 벽이 된다. 추상적 맛의 체계가 비유도, 비교도 없이 그대로 전달될 때, 입문자는 설명보다 더 큰 혼란을 경험한다.

PNG 이미지.png 추상적 감각

또 하나의 문제는 와인의 맛을 구성하는 요소 대부분이 추상적 감각 언어라는 점이다. 산도, 타닌, 바디감은 손으로 만질 수도, 눈으로 정확히 볼 수도 없다. 오랜 경험을 통해 체화된 개념이기에,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는 ‘안개 속 단어’처럼 다가온다. 그래서 경험 많은 사람의 설명이 오히려 초보자를 멀어지게 만들 때가 있다. 추상적 개념을 또 다른 추상적 개념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복잡한 설명이 아니라, 두 세계를 연결하는 중간 언어다.


결국 문제는 추천이나 선택의 기술 이전에, 초보자와 추천자 사이의 감각 언어 자체가 맞지 않는 데 있었다. 나는 이 간극을 수정하고 싶었다. 초보자의 일상 언어를 와인의 맛 체계로 번역하고, 와인의 기준을 초보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감각적 형태로 다시 내려주는 서비스. 두 세계의 언어를 이어주는 일종의 해석 장치다. 취향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탈해버리는 구조를 바꾸고, 사용자가 스스로의 맛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내가 만들고 싶은 와인 서비스의 출발점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는 명확해졌다. 그래서 나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가장 작은 형태로 어디까지 만들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그 답을 찾기 위한 구조 설계와 MVP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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