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5도 그리고 산책..

잃어버린 순수함..

by 떠도는별

만보 걷기 100번째. 물론 중간에 빠진 날들도 더러 있었다. 새해 들어 매일 이어지다가 어제 하루, 빈 공간이 생겼다. 추위 때문이기도 하지만 빙판길이 부담스러웠다.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다시 허리를 다칠 수도 있으니 아직은 조심해야 할 때니까. 오늘 아침도 쉬어 갈까 하다가 이틀 연속 빠진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채비를 하고 천천히 걷는다. 토요일 아침, 기온 영하 15도. 평일이면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거리가 한산하다. 가끔은 그들의 모습을 막연한 부러움으로 바라보곤 했었는데 오늘은 시선을 둘 곳이 별로 없다. 늘 같은 거리를 걷지만 다가오는 느낌은 다르다. 오늘은 청량함과 상쾌함이 먼저다. 장갑을 끼었어도 손이 조금 시린 것을 제외하면 꽤 걸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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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어붙은 세상. 그럼에도 아침 일찍부터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가게들. 이런 날씨에 손님이 있을까 싶지만, 삶은 어차피 이어지는 것이기에 그 부지런함을 응원한다. 올림픽공원 산책로에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정리했을 킥보드들이 대신 반겨준다. 아니, 늘 다니던 길을 떡하니 막고 존재감을 과시하는 듯하다. 햇살이 비치는 나뭇가지 위에는 한 마리 새가 그 환한 빛을 반기고 있다.


한강의 결빙 소식이 들리고 몇 십 년 만의 강추위라며 약간의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내 유년 시설의 겨울은 늘 이런 추위였었다. 믿거나 말거나 한강에서 썰매를 타기도 하고, 아주 가끔은 그러다가 얼음이 깨져 익사 사고가 나기도 했었다. 지금은 온통 빌라뿐인 거리도 그때에는 논과 밭이었다. 겨울이면 그곳은 썰매를 타고 연을 날리고 더러는 불장난도 하던 우리들의 놀이터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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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같은 바람이 불어도, 연신 코를 훌쩍거리면서도 친구들과 어울려 종일 뛰어다니던 시절. 이렇게 눈이라도 내리던 날은 가장 즐거운 겨울날이 되었었다. 눈사람, 눈싸움. 눈이 녹은 것인지, 땀이 난 것이지 모를 정도로 뒹굴며 아무 걱정 없이 웃음 짓던 그 시간들. 흘러내리는 콧물을 연신 훔치다 보면 옷소매는 마치 빙판길처럼 반들반들해지기도 했었는데.


누구나 다 마찬가지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천진난만함은 잊어버리게 된다. 오직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다가올 것들에 대해서 고민 따위는 없던 그 마음. 언제부터, 또 왜 사라지게 된 것일까?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그리울 뿐. 그런데 조금 더 성공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어렸을 때 이미 경쟁부터 배워나가는 요즘 아이들은 어쩌면 잃어버릴 것이 없어 그리움이 조금은 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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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정도 그렇게 잡생각을 하다가 돌아온다. 미끄러질까 조심스럽게 걷다 보니 조금은 힘이 든다. 여전히 한 시간 이상 걷는 것은 허리에 약간 무리가 간다. 마지막 허리디스크 파열 이후 이제 6개월 정도 지났다. 제대로 서지도 못한 채 창밖을 바라볼 때면 씩씩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그때 '다시 저렇게 걸을 수 있을까?'하며 두려워했던 마음에 비하면 이 정도면 축복이다.


아침 식사 후에 설거지를 하고 고구마를 씻는다. 어머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간식. 올해는 운 좋게도 좋은 상품을 골라 맛있게 드시고 계신다. 이틀이면 다 사라지려나? 그러면 또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된다. 그리움으로 먼 과거를 가끔은 반추하기도 하지만, 그때에는 분명히 이런 편리함은 없었다. 이 편리함과 함께 그때 우리들의 순수함과 사는 것 같았던 정(情)도 계속 간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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