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혼자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편할까? 부딪히지 않고, 누군가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아도 되며 하고자 하는 것에 의심도, 눈치도 보지 않는 삶을 산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고립을 선택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이며,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그 본성을 완성한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혼자서는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히 실현할 수 없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혼자인 게 낫다고 주장하고 싶어진다.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서조차 '잘 지내야지, 참아야지'하고 내면의 소리를 억지로 밀어내고야 만다. 하지만 관계의 불편함은 익숙해진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다. 우선 처음 보는 상대와의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아두길 바란다. 부정적인 감정은 불쾌한 기분을 자극함으로써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데, 인식하고 있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피해야 할 사람은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경고 시스템이 그동안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 축적되어 왔다. 그러니 자신을 믿고 관계에 힘을 주며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오히려 부딪히면서까지 잘 지내보려다 곪아 터지는 경우가 많다.
혼자였으면 몰랐을 일인데, 이게 성장이냐고 물어볼 수 있겠지만. 그러한 불편함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애초에 편하게만 살길 원하는 건 가당치도 않다. 우리는 주변 환경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측불가한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버틸 수 있는 힘. 이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라고 보면 조금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종종 관계의 변화에 대해, 상대방과 나와의 사이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환경의 변화로도 관계가 바뀐다. 예를 들면 독립된 개인으로 살던 남녀가 만나 아이를 낳음과 동시에, 한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온 신경을 쏟는 결혼 같은 것 말이다.
잠시 나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과거에 나는 만나면 좋은 사람이지만, 연락이 되기까지 어려운 사람으로 불렸다. 그 성격은 바뀔 리 없었고, 몰입의 대상인 아기가 태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인간관계의 극단적인 축소가 일어났다. 이미 결혼 전 나를 파악한 친한 언니는 결혼 선물로 조남주 작가님의 '82년생 김지영'책을 주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마 볼 수 없겠지. 지금도 보기 힘든데, 더 힘들어질 거야"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던 언니가 준 책이라, 남편이 인상을 찌푸린 기억이 난다. 어쩄든, 친구와 동료들은 멀어졌고 영화 은행나무 침대에 나오는 황 장군 같은 몇 안 남은 친구들만 이런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나조차도 거울을 보며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하건, 아이를 낳건, 관계를 잘도 유지하는데 너란 사람은 왜 그러는 거니?'라고 되뇌었으니까. 그렇게 스스로 집이라는 감옥을 만들고, 아이만 바라보는 삶을 선택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고 했다. 그 결정 덕분에 아이 친구 엄마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관계의 변화가 있다면, 친구도 동료도 아닌 공통점이 있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아이를 낳고 나니, 아이가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선호하게 되었다. 즉, 가족관계의 변화는 친구, 동료 관계의 변화로 이어진다. 살고 있는 환경으로 인해 주변 인물들이 바뀐다. 이렇게 변화는 변화를 만들어낸다.
만약, 인간이 홀로였다면 내면이 성장할 수 있었을까? 굴곡과 기복이 없는 평탄한 삶을 누구나 지향하지만, 그 삶을 통해 배울 점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에세이, 소설, 영화, 드라마를 찾는 이유도 동일하다. 시련을 주는 세상에 대항하여 맞서 싸우고 이겨내어 목표를 이루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주인공을 응원하고, 자신 또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삶이란 맛있게 양념이 버무려진 음식과도 같다. 김치가 익어갈수록 맛이 더해지는 것처럼, 설익고 강하게 드러내는 맛들이 숨이 죽게 되면서 '김치'라는 이름으로 밥상에 오른다. 배추 혼자서는 김치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크고, 작은 시련 없이는 미완성이다.
우리의 목적은 자신이 끌고 가는 스토리의 여정을 잘 그려내는 것이다.
내면의 성장은 켜켜이 쌓아 올린 모래 성과도 같다. 쉽게 없어지는 모래성이 내면의 성장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다음을 기억해라. 우리는 없어져 버릴 모래성인지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 즐겁게 성을 쌓는다. 시간이 흐르고 바닷물로 인해 모래성이 무너져 보이지 않더라도 그때 열심히 만들었던 자신과 이루어낸 성취감, 그 기억과 감정은 연결이 되기 때문이다. 실패하더라도 수많은 시도와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에서 인간의 성장을 엿볼 수 있다. 누군가 말해주었다. 우리는 평범한 하루 중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때 그 기억을 오래오래 간직한다고 말이다. 그 기억은 떠오르기만 해도 몸서리치는 기억일 수도 있고, 다녀오고 싶을 정도의 좋은 기억일 수도 있다.
잠시 나의 소중한 순간을 들여다본다. 그날은 아이들이 유치원에 갔고, 남편은 갑자기 하루 쉬게 되어 데이트를 하게 된 날이었다. 집에만 있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조금 거리가 있는 곳으로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갔다. 파워 J인 남편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맛집을 찾아냈다. 음식점 이름은 생각이 안 나지만, 시금치 크림 파스타와 시저샐러드 그리고 고르곤졸라 피자가 지금도 침이 고일 정도로 맛있다는 강렬한 기억은 남아있다. 사실 맛도 맛이지만, 호텔 식 레스토랑 이여서, 그곳의 분위기와 흐르는 음악, 직원분의 친절한 태도, 나를 바라봐 주던 남편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시간은 멈춰있는 것만 같아서, 잠시 결혼을 했다는 것도, 두 아이의 엄마란 것도 잊는다. 그날에 나는 온전히 한 남자 옆에 앉아있는 여자였다. 연애할 때의 간질거림과 긴장감이 맴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수줍어진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기억을 통해 소중한 순간은 이렇게 다시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잊고 있던 과거의 나,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마음껏 사랑했던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소중한 순간이었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어우러져 관계의 변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타인과 나와의 관계에서만이 변동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수많은 관계 안에 성장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였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관계 말이다.
사랑만으로는 견디지 못하는 세상. 지금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이다. 여기서 혹시라도 과거 우리 아버지, 어머니 시대와 비교하려는 생각은 즉시 버려야 한다. 결혼은 절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인생에서 가장 변화가 크게 일어난다면, 그것은 결혼이기 때문에 기피하는 것이다.' 결혼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같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이야기로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이야기는 순탄치 않은 과정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오래전에 눈치챘다.
그렇다. 결혼은 '가족과 가족의 결합이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당연히 맞춰가기 위한 시간이 필수로 포함된다. 6년 전만 해도, 남편과 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도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았다. 각자의 울타리 끝에서 한 번씩 만나 애정을 나누는 각별한 사이였을 뿐이다. 30년 정도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 둘이 만나 고작 몇 년 연애를 하고, 가정을 만들어 간다는 건, 당연하게도 긁히는 일의 연속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를 누구나 마주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우리는 남이었지만, 부모보다도 긴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선택한 남편, 선택한 아이들. 자녀가 자라기 전까지, 서로를 돌볼 날이 없던 시간 동안 우리는 티격태격하며 굳건해졌다. 누군가 전우애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이상의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랑 아니면 미움이라는 단순한 정의는 식상하기에.
나는 남편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관계가 변화했다면 그것이다. 다른 시간을 살아온 남녀가 결혼을 하며 서로의 세월을 마주 보고 이해해나가는 그 시간은 돌이켜보면 참 애틋하다.
결혼을 하면 적응하기 위한 고군분투가 시작되는데 성격차이, 각자의 가족을 받아들이는 것,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등 모든 것이 폭풍우처럼 휘몰아치게 된다.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결혼은 나의 결함까지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도 나를 잘 아는 사람을 알게 되는 여정이다. 인생의 반을 같이 살아가는 단 한사람 말이다.
프랑수아 드 라로슈 포코라는 프랑스 작가가 말하길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면 우리는 친구에게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친구의 실수도 터놓고 말한다'라고 했다. 그것은 친구나 부모 또는 자녀일 수도 있겠다. 언제나 곁에 있으며, 사소한 버릇과 표정 생각까지도 다 알고 있는 높은 단계에 이른 사람. 드러내지 않아도 통하는 기쁨을 공유하는 사람을 만나기 바란다. 그런 사람과는 관계를 통해 배움을 얻고, 자신의 내면도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