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두 번 어른이 된다.

by 위시 앤

│어른이 되고 싶은 첫번째 스무살


가슴 깊은 곳에 연민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두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때로는 왜곡하며 감정을 이입한다. 가령, '비바람이 몰아쳐서 나뭇가지들이 아파하잖아' 정도의 휘몰아치는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해가 갈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소한 힘듦을 오롯이 느끼며, 동정하고 안쓰러워 마음을 쓰는 그런 사람. 바로 과거의 나였다. 이 정도면 이름을 그냥 연민이로 지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횡단보도 앞에서 도와달라고 모금함을 드리미는 건장한 청년을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1초도 고민 없이 지갑에 있는 돈을 털어 모금함에 넣은 게 바로 나란 사람이다. 첫 번째 스무 살을 살아가는 나는 순수한 이타심과,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흙탕물이 튀어 하얀 옷이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변해가고 있었지만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누군가를 안쓰럽게 보는 그 마음이 나쁜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타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동정이라는 감정을, 함부로 가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도움을 청하는 것도 아닌데, 도와줘야 한다고 쉽게 판단해버리는 마음도 자칫 잘못하면 다른 이를 존중하지 않고, 낮게 보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20대는 이타적인 삶이었다. 아니 이타적으로 살면, 자신이 높아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살았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착하다는 인정을 받으면 이 삭막한 세상에 존재하기 어려운 빛과 같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믿었으니까. 지금도 내가 믿는 개신교에서는 행위를 통한 믿음에 대한 부분에 말이 많다. 결과론적으로 성경적인 삶을 살고, 철저하게 말씀대로 행동하여 구원을 얻는 것인지, 아니라면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 만으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모든 행위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인지에 관해서다.




가까운 사람들은 말한다. 살인자도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죄를 뉘우쳐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에 이르는 거냐고, 그게 신의 뜻이냐며 반문한다. 죽은 이는 말이 없는데, 이미 저질러 버린 죄에 대해 값을 치르지 않고 천국에 가겠다는 사람에 관해 오랫동안 생각을 했다. 죄가 나쁜 것인가? 사람이 나쁜 것인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성경에는 적혀있다. 죄를 지은 그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진심으로 뉘우쳤는지 아닌지는 신만이 아는 일이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았는지, 천국에 가게 될 것인지 판단할 수 없다. 살인자는 그렇게 믿고 싶겠지만 말이다. 어떤 것이 정답인지 모르지만, 주님은 우리 죄를 다 용서하십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언제부터 였을까? 교회에 가면 절로 얻어지는 믿음인 줄 알았던 지난날을 뒤로하고, 성경을 자세히 곱씹을수록 말씀의 뜻은 참 어렵게 느껴졌다. 사람은 보이는 만큼 믿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 보이는 것에 깊은 뜻을 두지 말자. 지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될 일들에 마음을 쓰는 것을 멈추자. 잘되지 않겠지만, 자신을 가장 돕고 싶은 사람으로 두고,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 만이 진정한 나로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그저 보통의 회색 인간

세상에 발을 막 디딘 나의 첫 번째 스무 살이 기억난다.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나름 천사라 불리던 시절.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언제나 귀가 후에는 지쳐서 누워만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나이팅게일의 마음으로 아픈 환자들이 건강하게 나갈 수 있도록 열심을 다했다. 사람의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그때는 몰랐다. 스스로 조절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몰랐기에 그때의 나는 환자에게는 좋은 간호사였지만, 같은 동료에게는 일을 빨리 처리 못하는 간호사가 되어있었다. 신규를 거쳐, 선임 간호사가 되었을 무렵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물론 환자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과거처럼 했다가는 시간 내에 해결해야 할 일 처리도 못할뿐더러, 다른 동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였으니까. 헌신적이던 자신을 위해서라도 환자와 거리 두기를 했다. 모든 것에 진심인 사람은 그러한 진심이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통한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러다 보면 그만큼 돌아오지 않았을 때 상처받거나, 상대가 진심을 원하지 않았음에도 일방적으로 노력한 자신을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며 자기 위로를 하게 된다. 황금률의 법칙에 따라 언젠가 돌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위해 조절을 하지 않으면 지치고 만다. 다시 말하지만 에너지는 정해져 있다. 그 이후 깨달은 것은, 쉼과 내가 누려야 할 마땅한 시간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보통의 회색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그것은 나에게 참 중요했다.


현재 작가를 꿈꾸는 지금. 효율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원래의 나라면 그렇지 않겠지만, 세월이 주는 깨달음과, 남편의 영향을 조금 받은 듯하다. 꿈에 가까워지려면 잘 쉬어야 한다. 이제 나의 에너지는 자유롭게 책을 읽고, 글을 마음껏 쓰는 것을 향유한다. '나 자신을 책임지고 돌봐줘야 하는 사람처럼 대해야 한다.'는 보통의 생각으로 지치지 않게 목표를 이룬다.




인생을 항해하는 것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도 여행일까?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가는 동안, 빠짐없이 나를 돌아본다.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면 한발 떨어져 3인칭 시점으로 바라본다. 자라온 환경이 나를 그렇게 변하게 만든 것일 테지. 감정이 휘몰아치는 밤이면 더욱 가라앉는다. 원래의 나는 감정 기복의 편차가 큰데도, 도리어 화가 나야 하는 상황에서는 침착해진다. 삶에 굴곡이 많은 사람들은 작은 파도에는 맞서 싸우지만, 큰 파도는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같이 휩쓸려 가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할 뿐이다. 어떤 이는 작은 파도에는 의연하고, 큰 파도는 막아서려 한다. 그렇게 산산조각 난 마음을 주워 담는다. 그 모습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였을까, 호의적이지 않게만 느껴진 삶의 의미를 찾았다. '이 정도 일에 힘들면 어떻게 해?' 하는 마음의 소리는 거짓이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간은 있다. 어떤 여행이든 쉽지 만은 않다. 이에 나는 수없이 배우고, 풍부히 표현할 것이라 다짐한다. 그렇게 부서진다 해도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외쳐본다. 지금의 나는 새로운 꿈을 이루는 여행을 하고 있다. 이 경험을 뼛속 깊이 새겨야지. 파도에 멈추지 않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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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스무살이 되었다.


주민등록증과 처음 마주했을 때, '내가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감탄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왠지 그 순간부터 어른이라는 낙인이 찍혀,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굴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고 할까? 그렇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도 잘 몰랐다. 돌이켜보면 어른이란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온전히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행동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가르침을 받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선택할 수 있는 나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이만 20살이었지 그때의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현재의 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키워냈고, 모든 시간을 아이에게 쏟았다. 그 표현이 딱 적합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릴 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잠든 밤 남편과 함께 TV를 시청하며 대화를 나누는 게 나에게는 유일한 낙이였다. 두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나서야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시간이 막막해서, 아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집이 낯설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한두 달이 지날수록 나태함이 나를 찾아왔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라며,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게으름의 연속, 하루 종일 아이들과 있을 때 보다 더 상황이 나빠졌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더 이상 무기력하게만 있을 수는 없다는 마음이 솟구칠 무렵, 자기 계발서를 읽게 되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계속 책을 찾았다. 이때부터 였을까? 책은 사람을 변화 시킨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책을 읽다 보니 글이 쓰고 싶어졌고, 글을 쓰려고 하니 책을 또 보게 된다. 작년만 해도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꿈은 상상으로만 끝날 뿐 실제로 연결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한번 쏘아 올려진 불씨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비상식적 성공 법칙'의 저자 간다 마사노리가 말하길 목표를 확실히 하면 상상도 못해 본 능력이 발휘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목표가 없기에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제일 중요한 사실은 목표를 종이에 적으면 실현된다는 것! 무슨 데스노트도 아니고, 적는다고 실현이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성공한 사람들은 우리가 우습게 보는 사소한 행동을 당연한 듯 해왔다는 것이다. 우리의 뇌는 정보처리 능력을 타고났다. 질문을 하면 즉각적으로 눈앞에 있는 정보를 탐색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따로 자세히 다루겠다.) 목표를 설정하고, 종이에 적고, 자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루어질 확률은 높아진다. 뇌는 이토록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믿지 못하겠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

좋아하는 것들을 여기저기 많이 두어야 한다. 장소든, 물건이든, 사람이든 어떤 하나에 지나친 집착을 가지지 말자. 하나에 의존하다 보면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만 붙잡고 있다 보면, 사람의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흔들리기 쉽다. 내 공간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없었다. 원래는 식사하는 용도로 구입한 식탁이 현재 나의 책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책과, 책상 중앙에 놓인 노트북은 언제든지 앉아서 글을 쓸 수 있게 해주고, 독서 욕구를 일으킨다. 좌식상에서 밥을 먹는 가족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이 자리를 양보하고 싶지 않다. 나만의 작은 공간, 따뜻한 색감의 목재가 멋스럽다. 의자는 다소 투박하지만 바르게 앉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이곳에 머무르면 무엇이든 쓰고 싶어진다. 그런 기분과 함께 밀려오는 소소한 행복이 참 좋다. 탁탁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 손을 뻗어 언제든 펼쳐볼 수 있는 종이책, 그리고 맛있는 커피 한 잔이 나에게는 힐링이다. 거실은 뚫려있는 공간임에도 분리된 장소처럼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을 통해 탐험하고, 한자리에서 머나먼 곳까지 여행을 떠나는 작은 책상은 한 척의 배다. 이 책상이라면, 단숨에 뭔가를 써 내려갈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물건의 쓰임을 달리하니 일상 속 즐거움이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행복이란, 작은 것에서부터 오는 감사와 만족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소중한 물건일수록 애지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들여다보고 고 사용해야 한다. 꿈을 위해 나의 책상에서 작은 행복을 많이 만들어 나가자고 다짐한다.




시점의 힘

이따금 우리는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곤 한다. 우리는 1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삶을 열심히 꾸려 나가는 주인공이다. 시련이 오는 이유는 내면의 숨겨진 목표를 각성 시키고, 변화하게 하여 더 큰 도약을 하기 위해서라고, 그동안 우리를 열심히 맞이했던 사건들은 성장하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사람만큼 흥미진진한 서사가 있을까? 나와 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자. 인생은 한 번뿐이다. 두 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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