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웅크리던 불씨.
소소하게 모여서 이야기할 때는 까불고 웃고, 제법 말재간도 있는 편이다. 듣는 것보다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카카오톡 단톡방에서는 제법, 나를 재미있어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아. 조용히 있어야지 하면서도 말할 거리가 생기면 손가락이 가만있지 못한다. 지금 말해야지. 지금! 바로 이야기해야 빵빵 터지는데!! 슬초 브런치 3기 동기단톡방에서 그렇게 나름 '인기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나는 중요한 자리에서는 늘 뒷걸음질인 사람이다. 책임지는 게 무섭다. 내가 원래 그렇다.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정말 부담스러웠다. 묻어가는 게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손을 들고, 내가 하겠다고 외쳤다. 절대 먼저 나서지 않는 내가, 이 일을 맡겠노라 했다. 어버버 한 나 자신. 잘할 수 있을까? 백번 고민하다가 꼬리 내려버렸던 내가. 손을 들었다. 슬초 브런치 작가 모임에서 부회장을 하라는 부름에 기꺼이 응수를 했던 것이다.
늘 두개로 나뉘어져 있던 내 생각이 신기하게도 하나로 대동단결을 했다.
작가라. 작가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글? 나는 책도 많이 안 읽는데. 눈을 반짝이며 읽은 책들을 이야기하며, 너무 재미있다고. 푹 빠져들었다고. 추억하며 행복해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무언가 모를 괴리감도 느꼈다. 음.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 어릴 적 엄마가 책 좀 그만 읽고 나가서 놀라고 화를 내셨던 몇몇 기억은 있지만. 중등, 고등 때 이것저것 읽긴 했던 것 같지만. 내용도 기억 안 나고. 그냥 읽어냈다는 것에 만족했던 것 같기도 하고. 최근에 좀 끄적거리고 독서모임 좀 몇번 한게 다다. 책에 대한 겨우 그런 단편적인 빈약한 추억만 가지고 있는 주제인 그런 내가 왜 슬초 브런치 작가 프로젝트에 지원을 했을까?
곧 본인의 책을 세상에 선보이실 작가님이 강단에 나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모든 일은 엄지 두 손가락이 해내었다고. 갈비뼈가 세대나 나가는 큰 일을 당하셨을 때도 그 엄지 두 개가 이 일을 해냈노라고.
충동성
겁이 많은 내게, 절대 있어 본 적이 없었던 행동이다. 하지만 내 행동은 충동적이라는 말 외에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왜 나는 내 두 엄지를 그렇게 '충동적'으로 놀렸을까?
그뿐만이 아니다. 동기들이 쓴 편지를 내가 낭독하겠노라고 손을 번쩍 들었다. 앞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면 입과 뇌가 따로 놀아서, 아무 말 대잔치를 시전 한다는 걸 혹시, 눈치 채신 분들이 있으실까? 누군가에게 비치는 내 모습을 너무 신경 쓰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걸 혹시, 아시려나. 실수가 두려워서 시작조차도 해버리지 않는 소극적이 사람이라는 걸, 어쩌나, 티가 났으려나.
운명론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내 인생의 결정이 보이지 않는 바람에 떠밀린 듯했다. 오래 심사숙고하고 결정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심사숙고'는 너무 오래 '고'한 탓에 그저 고여있기만 하기 일수였으니까. 생각을 거치지 않고 행동부터 해보니까, 괜찮았다. 무언가 마구 이루어지고 있는 그 순간이 신기했다.
루모스!
소설 '해리포터'에 빛을 부르는 주문이다. 지팡이 끝에 밝은 빛이 모여서 어두운 동굴을 밝혀 준다. 어쩌면 이 우연한 '충동성'으로 내 인생에 스스로 '루모스'를 외친 것은 아닐까.
사진: Unsplash의Casey Horner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나지만,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손에 이끌려 바람과 파도에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불씨를 얻었으니, 일렁거리는 얕은 불꽃을 소중히 꺼트리지 않고 끝까지 잘 가져가 보리라.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정말 너무 든든하고 안심이 된다. 이 모든 일에는 분명, 나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려는 삶의 의도가 숨어 있으리라 믿으며. 다 같이 떠나는 이 항해에 조심스럽게 승선해 본다. 너무 웅장한 계획으로 스스로를 겁주지 말고, 최대한 나 자신에게 솔직한 언어로, 배운다는 자세로 임해보려고 한다. 그저 먼저 읽고, 쓰고 하는 하루를 시작해 보아야겠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기대도, 고민도 없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해'보는 매일을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