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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을 내요, 미스터 김

늘 당신 곁에는 내가 있으니

by Wishbluee

코로나가 할퀴고 간 뒤, 식욕을 한껏 떨어졌다. 입맛이 없으니 살맛이 안 났다. 비록 위장은 쥐꼬리만 하지만, 미식에 대한 갈망만큼은 코끼리만 했기에. 이주동안, 내 삶의 보석 같은 한 잔인 아메리카노도 못 마시고, 죽과 미역국으로 연명했더니 건드리면 툭 터질 것 같이 예민해졌다. 드디어 역병이 물러가는 것이 느껴지고, 부대찌개의 향과 아메리카노의 맛이 다시 느껴졌다. 꾹꾹 눌러왔던 식욕이 그야말로 폭발을 했다. 하필이면 꽂힌 음식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고등어봉초밥'이었다. 심지어 맛본 적도 없는 그 초밥이 미친 듯이 당겨서, 검색을 하다 보니 동네에 파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이자카야. 저녁에 기꺼이 나와 '고등어봉초밥'을 먹기 위해 나서줄 만큼 음식에 진심인 사람은 내 주변에 없었다. 단 한 명, 우리 남편만 빼고.


남편은 음식에 호불호가 없고, 새로운 자극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래서 미식의 모험을 떠나는 나를 묵묵히 따라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여보, 이것 봐. 고등어봉초밥. 나 이거 먹고 싶다."


남편은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하던 게임에 매진했다. 건성, 건성 대답이 이어졌다.


"어, 어어 맛있겠네."


나 이거 먹고 싶다고 하는 건, 같이 가 달라는 건데.

이 주나 제대로 못 먹은 마누라가 처음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인데...


솔솔솔솔... 도레미파 '솔'


남편은 일정한 '솔'음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게임은 하고 싶은데, 마누라가 신경 쓰여서 대충 듣고, 대충 대답하는 거구나. '울컥' 하고 서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됐어! 오빠랑 안 먹어. 나는 뭐 친구 없나???(없다) 혼자라도 갈 거야! 혼자라도 갈 거라고! 뭐, 뭐뭐뭐. 좀 사연 있는 여자 하면 되지 뭐!"


빼액 소리를 지르자, 남편은 화들짝 놀랐다.


"이주동안이나 못 먹었는데! 그거 하나를 같이 못 먹어주냐. 진짜 서럽다 서러워! 그래~ 뭐 내가 그렇지 뭐. 맨날 애들이 남긴 반찬이나 주서 먹는 신데렐라 그게 나지. 내 주제에 무슨 봉초밥이야~ "


말인지 방귄지 모르는 소리가 서러움의 파도에 밀려서 마구 새어 나왔다. 게다가 내 말에 내 감정이 북받쳐서, 결국 침대로 가서 등을 팩 돌리고 드러누워 버렸다. 남편은 어쩔 줄 모르면서 따라와 내 옆에 누워서, 나를 달랬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나는 단단히 삐쳐있으니까.


그런데 그때, 남편이 갑자기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나, 사실은.......라는 말을 들었어."


힘없이 내뱉은 그 한마디에 나는 식욕이 다시 없어졌다.

나는 갑자기 철딱서니 없는 떼쟁이 사춘기 딸이 되어버렸다.


'너무해. 지금 그런 말을 해버리면 나는 어떡하라고...'


남편의 회사는 분위기가 좋지 않다. 벌써 몇 번째 '희망퇴직' 자를 받고 있다. 남편이 대상자는 아니지만, 어제 들은 이야기는 이런 상황에서 듣기에 매우 적절하지 않았다. 늘 야근에 치이며 회사일에 심신을 다하지만, 보상받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일해온 남편이 들어야 할 이야기는 정말 아니었다. 화가 났다. 속상했다.


마음이 쿵 내려왔다.



남편은 상처 입으면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홀로 치유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이라, 곁에서 지켜보는 나는 늘 '무력함'을 느꼈다. 내 손길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늘 애달팠다. 지금 내 남편은 동굴 속에 있다. 이번에는 상처가 깊었나 보다. 혼자 쉬는 한숨이 메아리가 되어서, 밖에 있는 내 귀에도 들려왔으니.


그것도 모르고 나는 '고등어봉초밥'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다.


수렁 속에 있는 남편에게, 닿을지 모르는 이야기를 힘껏 외쳐본다.


"그 사람이 그런 말을 당신에게만 했던 것은 아닐 거야. 아마 윗선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을 거야. 그런데 전달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네. 당신이 많이 속상했겠다. 요즘 다들 많이 어렵다더니, 정말 그런가 봐."


남편은 내 이야기를 듣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잠이 오질 않았다.

나는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자꾸 내 마음도 동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다녀올게"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영 힘이 없다.

출근길에 있을 그에게 톡으로 따뜻한 카페라테 한잔을 선물한다.


오빠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야
오빠처럼 성실하고 꾸준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난 그게 늘 잘 안되더라.
오빠는 예술가야.
가끔 오빠의 세계를 문틈으로 엿볼 때면, 나는 질투심에 사로잡히더라.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그렇게 못할 것 같아서.
오빠의 본질을 늘 기억해.
그리고 잊지 마, 내가 있다는 걸.


잠시 후, 따뜻한 카페라테를 쥐고 있는 사진이 한 장, 톡으로 도착했다.

조금은 나의 온기가 전달이 되었기를.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지만. 그래도 당신의 하루에 조금의 의미로 다가와 주기를.


어젯밤, 남편이 나지막이 속삭이듯 내게 건넨 말.


나 응원해 줘


당연하지. 여보.

뭘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나는 당신뿐인걸.



새장에 갇힌 파랑새.

그래, 가끔, 더 날갯짓을 펼칠 수 있을 텐데. 더 넓은 하늘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나를 괴롭힐 때가 있지.


우리 나이가 짊어진 것들이 짓누를 때, 무게에 스러져가면서도 우리는 기어이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갈망하잖아.

꿈을 꾸자. 여보.

아직 우리는 젊잖아.


분명 우리는 근사한 꿈을 꾸게 될 거야.


그러니 힘을 내요. 미스터 김.

당신 곁엔 내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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