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을 보는법

by 러키승

귀멸의 칼날! 나에게 벅찬 감동을 준 명작 애니매이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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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탄지로가 동생 네즈코를 구하기 위해 인간을 잡아먹는 혈귀와 맞서 싸우는 혈귀사냥꾼이 되어 동료들과 여정을 떠나는 것이 애니의 줄거리인데 선한 주인공과 악한 혈귀의 싸움같지만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선과악은 구별이 없고, 둘은 공존한다는 메시지가 강하다.


우리는 애니매이션을 볼때 주인공이 악(혈귀)를 물리치면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과 혈귀의 대결이 인상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작가의 깊은 메시지가 내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쾌감을 느끼며 깊이 몰입했다. 원래 인간이었던 혈귀가 왜 인간을 잡아먹는 악마가 되기로 선택했는지, 주인공 탄지로는 자신을 죽이려는 혈귀를 왜 구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런 주인공의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해보면서 인문학에서 배운 철학적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주인공이나 혈귀가 결국 나와 같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동료 중 교메이라는 스님이 있다. 그는 평범하게 살다가 혈귀사냥꾼이 되었다. 그가 혈귀사냥꾼이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내가 그날밤 혈귀의 습격을 당하지 않았다면,
난 죽을때까지 내가 강하다는 사실을 몰랐겠지.’

교메이는 가족들과 평범하게 살고 있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어느날 밤 갑자기 닥쳐온 혈귀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하고 여동생만 남는다. 그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밤새 미친 듯이 혈귀와 싸웠고 결국 혈귀를 죽인다. 남들과 똑같은 보통의 사람인 줄 알고 살던 교메이는 그날밤 혈귀를 죽인 자신의 힘에 놀라며 혈귀사냥꾼이 된다. 나는 이 장면에서 철학자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라는 말을 했다. 고통을 겪고 통과해야 진짜 ‘자기자신’이 된다는 철학적 의미를 담은 말이다.


작년 말 나는 힘든시기를 겪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계획했던 일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온갖 잡념과 감정으로 괴로울 때였는데 주인공의 대사로 나의 상황을 다시 해석해 보게됐다. 닥쳐온 문제를 이겨낸다면 나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교메이처럼 미친 듯이 부딪쳤고, 내가 하려고 한 일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일의 과정만 조금 달라졌을 뿐이었다.


이 일로 나는 나에게 놀랐다. 항상 약한 체력에 힘들어하고 건강에 불안해 하던 나에게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된 일이었다. 건강악화라는 혈귀가 오지 않았다면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었을까.

계속 흔들리던 나를 깨워 준 것도 주인공이었다. 애니매이션에서 혈귀는 꿈속으로 인간을 끌어들여서 현실로 돌아오지 못하게 한다. 혈귀가 만들어 놓은 달콤한 꿈안에 빠지게 된 주인공이 현실로 나오는 방법은 바로 자기 자신을 칼로 찔러 죽이는 것이었다. 자기가 죽어야만 혈귀의 꿈에서 깨어 난다는 것이 인상깊게 다가왔다. 나에게 고착화된 관념을 깨야만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깨우침을 담고 있었다.


나의 건강이 안좋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좌절했었다. 냉정하게 말하는 의사가 얄밉기도 했다. 세상은 나에게만 가혹한 것 같았다. 그것은 나의 관념이었다. 하지만 그런 관념을 깨야만 했다. 몸이 안좋다고 하고 싶은 일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발짝 물러나서 상황을 볼수 있는 기회라는 해석을 할 수 있었다. 그때당시 나는 건강식을 한다며 음식을 가려먹었는데 오히려 그것이 폭식으로 이어졌었다. 절제가 무너진 폭식을 건강식을 먹는다는 이유로 합리화하고 있었고 전체적인 건강의 균형이 무너졌던 것이다. 나는 나의 건강을 재정비하게 됐고, 지금은 적절히 먹고 적절히 운동하며 이전보다 체력이 올라왔다. 건강식이 무조건 나를 건강하게 만들거라는 관념을 죽이고 나를 객관적으로 볼수 있었던 것이다.


귀칼의 배경은 우리의 현실 그 자체였다. 주인공도, 혈귀도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들이 주는 메시지는 나를 향한 것이었고 그것을 해석하고 유리하게 적용하는 힘이 나에게 있었다. 이건 그동안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귀칼을 통해서 철학적 메시지를 잡아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철학자들이 떠올랐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인문학을 공부하기 전이었다면 귀칼은 단순히 재밌는 애니매이션이었을 것이다. 물론 약간의 삶의 활력이 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 메시지를 해석하고 내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면 잠깐의 응원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작품의 메시지와 철학적 의미를 내 몸과 마음에 깊이 들여올 수 있었다. 그것은 인문학의 힘이었다. 귀칼은 그 힘을 더 견고하고 강하게 만들어주는 통로였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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