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re you?”
영어 공부에 매진 중인 걸 아는 아들이 방문을 빼꼼 열더니, 기습처럼 던진 말이다.
비웃음인가, 테스트인가.
그 순간, 내 머릿속은 바빠졌다.
국민문장 “I'm fine. And you?”는 하기 싫고, I'm good, I'm great, How's it going, How are you doing… 반년 넘게 쌓아 올린 영어 문장들이 서로 먼저 나가겠다고 싸우는 사이, 입은 얼어붙었다.
“어… 음… 어버버…”
하루도 안 빠지고 켜 온 영어 학습 앱의 불꽃이 무용지물이 됐다. 아들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보이는 표정.
‘엄마, 반년 넘게 공부한 사람 맞아요?’
그렇다. 나는 반년 넘게, 정확히 말하면 223일째 영어 공부 중이다. 하루도 안 빠졌다. 이 나이에 꾸준함 하나는 꽤 자랑할 만하다. 그런데 실전은 역시 다르다.
사실 예순을 코앞에 둔 내가 왜 이렇게 영어에 매달리는지 가족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쉰둘에 암이라는 불청객을 맞이했고, 수술과 항암, 재발을 거치며 7년이 흘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인생에서 황금기라 할 수 있는 50대가 통째로 증발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요즘 뭐 해?”
이 질문 앞에서 늘 말문이 막혔다.
직업도 사라졌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다. 나를 설명할 수식어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생각보다 꽤 서글펐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가 가장 못하는 것에 도전해 보자고.
외국인 앞에서 입을 억지로라도 떼 보자고.
영어 한마디 못해 얼굴부터 빨개지던 이 체질을 좀 바꿔보자고.
‘영어 한마디 멋지게 하는 할머니.’
이거, 꽤 근사한 목표 아닌가.
늘 시간에 쫓기던 삶에서, 어느덧 ‘시간 부자’가 되었다. 암세포가 뇌세포를 조금 가져갔는지 열 개를 익히면 아홉 개를 까먹지만, 100개를 외워 하나라도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나를 다독인다.
223일 전, 내 기준에선 꽤 큰 거금을 들여 결제한 영어 앱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시작될 내 인생에 대한 ‘투자금’이었다. 비록 오늘 아들의 기습 질문에 무참히 패배했지만, 나는 다시 앱을 켠다. 내일이면 224일 차 불꽃이 타오를 것이다.
언젠가 해외 스타벅스에서 당당하게 “Excuse me”를 외치며, 도움 없이 나의 최애 Decaf Caffè Latte를 유창하게 주문할 날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