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실수가 뜻밖의 방향으로 이어질 때가 있다.
내 경우는, ‘삐끗’한 손가락 하나가 시작이었다.
어느 날, 내 손가락이 플레이스토어 결제 버튼 위에서 미끄러졌다.
129,000원. 화면에 뜬 숫자에 어안이 벙벙했다. 취소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두었다.
이 작은 선택이 내 휴대폰을 ‘영어 앱 지옥’으로, 내 일상을 작은 ‘복수 프로젝트’로 바꿔 놓을 줄은 그때는 몰랐다.
암 환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산 지 7년.
거울 속에는 낯선 초로의 여인이 서 있었다.
엉성해진 머리카락, 깊게 파인 팔자주름, 항암의 흔적이 남은 칙칙한 피부.
세월은 목숨은 지켜주었지만, 가장 빛났을 50대의 시간은 통째로 앗아갔다.
사람들은 하나둘 곁을 떠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게 남은 건 ‘완치’라는 기약 없는 목표와 텅 빈 일상뿐이었다.
억울했다.
거울 속 여인에게 뭐라도 채워주고 싶었다.
화장품이나 예쁜 옷으로는 가릴 수 없는 그 상실감 대신, 누구도 예상치 못한 ‘멋진 무기’ 하나를 쥐여주고 싶었다.
왜 하필 영어였을까. 사실 나도 모른다.
다만 외국인 앞에서 얼어붙던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해 해외 카페에서 당당하게 주문하는 할머니가 된다면, 그건 빼앗긴 7년에 대한 나만의 작은 복수이자 증명이 될 것 같았다.
시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습관이 붙자 유튜브 쇼츠를 열던 손가락이 저절로 영어 앱을 향했다.
평소 끈기 없는 내 성격을 알고 있는 가족들은 “저러다 말겠지” 하는 눈치였지만 상관없었다.
암세포가 남긴 흔적을 곱씹으며 우울에 빠지던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으니까.
앱을 켜는 순간, 나는 비로소 아픈 사람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영어 앱은 학습 도구를 넘어 나를 일으켜 세워준 ‘놀이이자 구원’이었다.
문제는, 의욕이 과해 ‘앱 수집’으로 번졌다는 점이다.
듀오링고 프리미엄, EBS 반디, 영어 일기 앱까지, 내 휴대폰은 어느새 영어 앱 지옥이 되었다.
아침엔 앱 알림을 확인하고, 저녁엔 팟캐스트를 듣는다. 외출했다 돌아와서도 미처 채우지 못한 분량을 채우느라 허겁지겁 휴대폰을 붙잡는다.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강박이지만, 이것이 지금 내 생활의 활력이다.
엉성한 실수로 시작된 이 여정이 결국 나를 조금 더 살아있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스픽의 불꽃을 이어가고, 듀오링고 올빼미와 절친이 되는 매일, 나는 빼앗긴 시간을 조금씩 되찾아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