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보게 된 88세 할아버지의 영어 발음은 솔직히 좋다고 보기 어려웠다.
문법도 잘 맞지 않았는데, 놀랍게도 원어민과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14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굿모닝팝스' 한 우물만 팠다는 할아버지는 눈빛이 맑고 힘이 있었다.
그 영상을 보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조급함에 휩싸였다.
74세에 시작해 14년을 노력한 농부 할아버지와, 59세에 시작해 이제 9개월째인 나.
적어도 나이는 젊다며 스스로를 달래 봤지만, 그 위안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번을 되뇌던 짧은 문장 하나조차 잊어버릴 때, 왜 인생 전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초조해지는 걸까.
불쑥 겁이 났다.
항암 유발 인지 기능 장애(Chemo-brain).
혹시 오랜 항암 치료의 독성이 내 소중한 뇌세포를 너무 많이 앗아간 건 아닐까.
요즘 들어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도 내가 무엇을 꺼내려했는지 잊은 채 멍하니 서 있는 일이 잦아졌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뭘 검색하려 했는지, 화면만 들여다보는 순간도 늘었다.
열 개를 외우면 아홉 개가 흔적도 없이 뇌를 스쳐 지나간다.
"그래도 괜찮아, 하나라도 남으면 성공이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조금 무섭다.
가끔 딸이
“엄마, 깜짝 놀랐잖아요. 치매인 줄 알았네.”
웃으며 던질 때,
나는 웃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다시 묻는다.
혹시… 진짜는 아니겠지?
예전에는 기억력 나쁜 사람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상처도 빨리 잊고, 후회도 쉽게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막상 내 기억이 흐릿해지기 시작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픔만 지우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의 형체마저 함께 지워져 가는 듯한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무언가가 절실했다.
흩어지는 나를 붙잡아줄 단단한 지지대, 내게 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바로 그런 ‘동아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물 한 컵을 마신 후, 영어 앱의 불을 밝힌다.
저녁시간에는 팟캐스트를 쉐도잉하거나 받아 적는다.
밤에는, 두세 줄짜리 짧은 영어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든다.
그 짧고 서툰 시간들이 "나 아직 괜찮아"라고 외치는 나만의 생존방법처럼 느껴진다.
오늘로 스픽 불꽃 247일, 듀오링고 188일, 영어 일기 85일.
숫자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 숫자는 내가 오늘도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느리고, 여전히 자주 잊고, 여전히 문장 앞에서 더듬거린다.
그래도 내일 아침, 나는 다시 영어를 켤 것이다.
남들처럼 유창해질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나 자신을 붙잡고 싶어서, 오늘도 나는 입에 잘 붙지 않는 문장 하나에 내 열정을 꾹꾹 눌러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