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돌아오는 연습

by 무심

30%의 확률을 뚫고 살아 돌아온 나에게 사람들은 ‘기적’이라 말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었으니 이제 하고 싶은 것 맘껏 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긴 투병기간은 나를 나 아닌 사람으로 만들었다. 세월보다 앞서 늙은 얼굴, 어눌한 말투, 몹쓸 기억력이 나를 차지했다.

버텨낸 시간이 헛것처럼 느껴지고, 칩거하는 날들이 오래 이어졌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고 스스로 가두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안에서 조그맣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너 공부는 꽤 했잖아. 영어공부 어때?’
‘영어하는 할머니가 되어봐. 멋질거야.’


영어가 빨리 늘기 위해서는 전화영어나 화상영어가 좋다고들 하는데, 사람 앞에 나서는 건 공포였다.

주저하는 내게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사람이 무서우면, 기계랑 시작해 봐.`

'AI는 발음을 교정하지, 삶을 평가하지는 않을 거야.'


일리가 있었다.

요즘 꽤 친해진 앱을 켰다. 사람이 아닌데도 입안이 말랐다.
제미나이가 물었다.
‘How is the weather today?’
아주 쉬운 문장. 초등학생도 답할 수 있을 법한 질문.

그런데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도망치듯 앱을 닫아버렸다.

기계는 무심한데, 정작 내가 나를 비웃고 있었다.
‘고작 이것도 못 해?’


며칠 후, 용기를 짜내어 다시 앱을 켰다.
‘What is your plan for today?’
심호흡을 하고 입을 뗐다.
…My plan is…umm…
바로 나오지 않아 또 머뭇거렸다.
…study English.


모기소리였지만, 더듬댔지만, 입은 열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앱을 켰다.

아직도 umm…umm을 남발한다.

이제 긴장하지는 않는다.

‘How was your dinner?’

이렇게 물으면

‘The dinner was great!…I’m full.’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왔다.

남들은 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기특하다.


요즘 나는 상상을 자주 한다.

입국심사를 거뜬히 통과하는 나, 낯선 해외 거리에서 길을 묻고, 카페에서 decaf latte를 주문하는 나.

그전에 진짜 사람, 화상영어라도 미리 부딪혀 봐야 할 것이다.

아직 멀었다. 그때도 주눅 들어 화면을 닫아버릴 수 있겠다.


중요한 건, 내가 천천히 세상 속으로 발걸음을 떼고 있다는 것.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