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영어가 들려!"

by 무심

오늘로 258일!

하루에 적게는 10분, 많게는 2시간 넘게 거르지 않고 영어를 마주한 시간이다.

아들이 툭 던진 "How are you?"라는 기습 질문에 얼어붙기도 하고, AI와의 대화에 목소리를 덜덜 떨기도 했지만,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된 건 아니었다.


​나만 아는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리스닝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산책이 주목적이 아니라 팟캐스트를 듣기 위해 길을 나섰고, 카페에 앉아 팟캐스트 문장 받아쓰기에 몰두한 시간들이 꽤 쌓였다.

비어 있던 노트가 까만 글씨로 채워질수록 내 마음도 가득 차는 기쁨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행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전율을 느꼈다.

늘 소음처럼 흐르던 한국어 안내 멘트보다, 더 선명하게 꽂힌 한 마디.
"Doors opening. Watch your step."


​제주행 기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장님의 안내 멘트가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를 뚫고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Our flight time to Jeju will be about one hour."

믿을 수 없어 남편에게 호들갑을 떨었다.
"자기도 들렸어? 나 영어가 들려!"


이제, 팟캐스트 A1·A2 수준의 대화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들린다. 완벽하진 않아도, 대강 내용은 이해된다.


항암의 터널을 지나며 나의 한국어는 느려지고 단어들은 혀끝에서 맴돌며 겉도는 순간이 많지만, 새로 배운 이 서툰 언어가 선물처럼 다가와 속삭인다.

'The doors are opening now.'

굳게 닫힌 세상에 절망했던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천천히 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난공불락은 스피킹.

귀는 열렸는데 입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말하기가 제일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달콤한 리스닝 유혹에 빠지곤 한다.

이 '편식' 같은 공부법, 과연 괜찮은 걸까?


스피킹은 많이 더딜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은 배신하지 않았다. 귀가 먼저 반응했을 뿐.

입이 버벅거리더라도, 꾸준히 맞서면 언젠가는 열릴 것이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