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nning이 자꾸 Lion이 된다

by 무심

오늘로 영어 공부 264일째.

어느 정도 귀가 열렸다는 자신감에, 내 발음을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해외여행 필수 앱, 구글 번역기를 켰다.


호흡을 가다듬고 말했다.

"Running makes me happy!"

(달리기는 나를 행복하게 해요.)

하지만 화면에 뜬 글자를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Lion makes me happy."

(사자는 나를 행복하게 해요.)

사자라니!

나는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lion. 정말 사자였다.


어이가 없어 더 또렷하게 발음했다.

"Running makes me happy."

이번에는 이렇게 떴다.

"Groaning makes me happy."

(신음은 나를 행복하게 해요.)

달리는 게 힘들긴 하지만, 신음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Groaning은 사실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포기하기는 싫어 몇 번 더 말했다. 느리게도, 빠르게도, 발음을 최대한 굴려보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Running… running… running…”

하지만 화면에는 여전히 엉뚱한 문장이 떠올랐다.


번역기에 실망하고, 이번엔 제미나이와 챗GPT를 차례로 소환했다. 하지만 녀석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Learning makes me happy."

(배움은 나를 행복하게 해요.)

영어 공부 열심히 하는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아 고맙긴 한데, 마음과 달리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번엔 최후의 보루, 파파고를 켰다. 한국 태생 앱이니, 한국인의 발음 특성을 잘 캐치해 낼 거라 믿어 보았다.

"Running makes me happy!"

이번에는 단번에 정답이 나왔다.

하지만 망가진 자존심이 바로 복구되지는 않았다.


'내 발음이 그렇게 형편없나.'

260일 넘게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어를 공부했는데, 정작 기계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니.

그동안 내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한 건 아닐까. 마음이 복잡했다.

기계 하나 이겨먹겠다고 온 에너지를 쏟아부었더니, 정작 진짜 공부를 할 기운은 남아 있지 않았다.


휴대폰을 덮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오늘은 휴업이다.

사자랑 싸우고, 끙끙 앓고 나니 더 이상 기력도, 의욕도 없다.


아직 내 running은

자꾸 lion이 되고,

가끔은 groaning이 되고,

외모만 비슷한 learning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내가 말한 그대로

running이 되는 날이 오겠지.


번역기가 기록한 나의 처참한 발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