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영어에 파묻혀 있다

by 무심

오늘 아침도 눈을 뜨자마자 손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찾는다.

제일 먼저 듀오링고의 초록색 새를 마주한다.


그다음은 스픽(Speak) 앱이다.

덜 풀린 입으로 따라 말하다 보면 발음이 꼬이고 의기소침해진다. 말끝이 점점 흐려진다.


산책길이라고 다를 건 없다.

이어폰에선 '미스터 잉글리시'의 목소리가 흐르다가, 어느새 ‘귀가 뚫리는 영어’로 채널이 바뀐다.

그것도 모자라 원어민이 진행하는 'BBC 6 Minute English'까지 귀에 밀어 넣는다.

귀는 점점 바빠지고, 머릿속은 더 복잡하게 엉킨다.


카페에 앉아도 남편과의 대화는 없다.

단어 하나라도 놓칠세라 받아쓰기에 몰두한다.

남편은 이제 그런 내 모습이 익숙한지, 맞은편에 앉아 묵묵히 핸드폰 바둑을 둔다.


많이 쓰이는 여행영어 문장은 별도로 카드로 만들어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보고 입으로 중얼중얼한다.


그러다 아차,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오늘 영어 일기 안 썼지?'
어설픈 문장 몇 개를 적다가 막히면 다시 AI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어 하나 줄 테니 문장 만들어줘.'

급기야 AI까지 붙잡고 진땀을 뺀다.


침대에 누워서는 다시 검색창을 헤맨다.

“영어 빨리 늘리는 방법”, “60대에 시작하는 영어”, “단기 기억력 높이는 법.”

이미 충분히 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왜 끊임없이 검색창을 떠돌고 있는 걸까.


안타까운 딸이 한 마디 한다.

"엄마, 공부만 할게 아니라, 해외여행 일정이라도 잡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솔직히 말하면, 이건 영어 때문만이 아니다.

‘60’이라는 숫자가 나를 밀어붙이고 있다.

머리가 예전처럼 빠릿빠릿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느낄 때마다, 조바심이 나를 몰아세운다.


‘지금 안 하면 영영 못 할지도 몰라.’
‘조금만 늦추면 뇌가 굳어버릴 거야.’


나의 집착은 사실, 노화라는 거대한 파도에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발버둥인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공부가 아니라 강박증이다.


아침이면 다시 루틴이 시작된다. 자동반사처럼 듀오링고를 켠다.

열정과 강박, 그 경계 위에서 나는 오늘도 '60세의 속도'로 위태로운 걸음을 이어간다.


문법 파괴, 유치원생 같은 일기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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