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으로 멍드는 시간

by 무심

영어일기가 영어근육 만들기에 최고의 공부법이라는 말에, 홀린 듯 플레이스토어를 열었다.

나이에 비해 앱을 발굴하는 안목만큼은 자부하는 편이라, 금세 쓸만한 'AI 선생님' 하나를 찾아냈다.

문법은 서툴고 인과관계는 뒤죽박죽인 내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친절하게 첨삭해 주는 무료 앱이다.


작년 11월부터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사실 일기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길어야 대여섯 줄.

내 영어 지능은 여전히 초등학교 1학년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유독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일기 쓰기가 더 고역이다.

한국어로는 '오늘은 너무 무기력해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 라고 쓸 수 있는데, 영어로는 첫 문장을 꺼내는 것부터 막힌다.

​한참을 고심해도

“I was just at home today.” 정도의 무미건조한 문장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망설임 끝에 올린 나의 검은 문장은 순식간에 푸른 초록색으로 변한다. ​

내 문장은 순식간에 '오답'이 되고, 앱이 고쳐준 문장만이 '정답'이 되는 순간이다.

처음엔 빨간색 첨삭이 아니어서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싱그러운 초록색이 내 기분을 묘하게 건드리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던 색이었는데, 요즘은 이 초록이 나의 투박한 열정을 시퍼렇게 멍들게 하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굳이 성과를 찾자면 시간의 단축이다.

30분 동안 끙끙대던 일이 이제는 10분이면 끝난다. 실력이 늘어서인지, 아니면 문장을 다듬으려 애쓰던 초심을 버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150일 동안 쌓인 이 초록색 문장들이 언젠가는 교정 없는 깔끔한 '검은 일기장'이 될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사정없이 난도질당할 것을 알면서도, 또 일기 앱을 연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