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대 앞에서 고개 숙인 나

by 무심

“엄마, 먼저 계산하고 있어요.”

10년 전, 딸과의 첫 해외여행에서 그 한마디는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그당시 교환학생이었던 딸은 유창한 영어로 호텔 체크인부터 식당 예약까지 모든 상황을 척척 해결했다.

보호자는 언제나 나였는데, 이제는 내가 기댈 수 있는 딸로 성장했다는 사실이 대견하고 우쭐하기도 했다.


그런데 딸이 자리를 비우자 갑자기 식당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조용히 와인을 나누는 노부부, 모두가 그 공간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보였다.

딸이 옆에 있을 때는 나도 괜히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혼자 남겨진 순간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딸이 나올 화장실 쪽을 자꾸 흘깃거렸다.

카드를 언제 내밀어야 할지, 영수증을 달라고 손을 들어야 하는지, 종업원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괜히 고개를 숙였다.

느긋하게 돌아온 딸이 말했다.

“엄마, 아직 안 했어?”

별것 아닌 한마디였는데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단순히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었다.

낯선 나라에서 카드 한 장 내미는 일조차 혼자 못 하는 내가 너무 작게 느껴졌다.


몇 년 뒤, 삶에 암이라는 폭풍이 들이닥쳤다.

거듭되는 항암과 수술, 그 생존의 시간 동안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몸을 살리는 일은 의료진에게, 일상을 버티는 일은 가족의 돌봄에 기대야 했다.

가족들은 내가 물건 하나 드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음식점에 가면 자리가 나기 무섭게 나를 앉혔고, 조금만 시간이 걸려도 “엄마는 여기 앉아 있어”라며 가장 먼저 챙겨야 할 어린아이처럼 여겼다.

그 다정한 배려는 늘 고맙고 미안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도 모르게 스스로를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처럼 여기게 되었다.


오랜 요양 끝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집조차 잠시 머무는 낯선 공간처럼 느껴졌다.

내 공간인데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는 느낌.

그게 생각보다 답답했다.


결국 어느 날, 나는 잠깐 떠나기로 했다.

“지인과 여행 좀 다녀올게. 여행 베테랑이라 걱정 안 해도 돼.”

가족의 보호를 잠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오래 알고 지낸 지인과의 여행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이 취미인 지인은 내 앞에서 성큼성큼 걸어가 티켓을 끊고 구글맵을 따라 맛집이나 숨은 명소를 종횡무진했다.

여행지에서 나는 엄마와 동행한 어린아이 같았고, 지인은 여행 인솔자였다.

나는 또다시 그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건강도, 판단력도, 언어도 스스로 발휘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뒤를 따라가는 나.


그 순간 10년 전 딸과의 여행이 겹쳐졌다.

그때의 불안과 초조, 막막함에서 나는 사실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오지 못했구나 싶었다.

아니, 어쩌면 한참 더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 뒤로도 삼 개월마다 검진을 받는 날들 속에 미세암이 발견되었고, 나는 또 생존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평화로운 일상이 다시 깃들기 시작한 어느 날, 산책길에서 문득 이런 소리가 올라왔다.


지금이야. 지금 시작해. 지금 아니면 영영 못해.


왜 하필 영어였는지는 지금도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어를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내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이후는 오랫동안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내는 시간이었다.

보호받는 것은 분명 사랑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스스로를 약한 사람으로 믿게 된 것 같다.

혼자서는 길도 못 찾고, 결정도 못 하고, 계산도 못 하는 사람처럼.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고, 짧은 문장 하나를 소리 내어 말해보는 일.

별일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서툴러도, 더디어도 아직 할 수 있겠구나.

그 생각이 들면 이상하게 기운이 난다.

누군가의 뒤에 숨는 편안함 대신, 내 발로 걷는 불편함을 택하고 싶었다.

다시는 식당 계산대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기 위해.

누군가의 그림자로만 서 있지 않기 위해.


영어는 나에게 단순한 허영이 아니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나 자신을 스스로 움직여보는 일이고,

내가 아직도 혼자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매일 조금씩 나를 믿어보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짧은 영어 문장 하나를 더 중얼거려 본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