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재배정
2025년 올해 비전 보드다. 가족 선교 여행은 개인적인 꿈이었기에 여름 방학 달력에 네팔 여행 일정이 가장 먼저 입력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다른 일정들이 더해졌다. 어느덧 여름 스케줄이 빼곡히 들어찼다. 마음이 분주해지고 조금씩 부담감이 더해진다. '괜히 무리해서 네팔을 간다고 했나' 하는 마음이 꼬물꼬물 올라온다. 눈앞에 놓인 일처리에 급급하다 보니, 네팔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났다. 가장 처음 입력했던 여행이 가장 나중에 처리할 과업이 되다 보니 초심을 잃어 간다. 체력 보강을 한답시고 잘 먹기만 하고, 마음의 준비는 뒷전이 되어 버린 탓이다.
비행기를 타기 한 주 전,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다. 우선, 챙겨갈 물품부터 리스트업 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후원물품 구매다. 산간 지역에 위치한 제르 기다 초등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다. 학생 55명, 교사 2명을 대상으로 진행할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들을 고민한다. 산골 마을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연 학용품이다. 한국산 질 좋은 노트, 지우개, 연필, 연필깎이, 색연필 등을 떠올린다. 색종이와 스티커도 덤으로 넣어 아들에게 부탁해서 종이접기도 가르쳐주면 어떨까 싶다. 한바탕 쇼핑을 하고 와서 쭈그리고 앉아 포장지에 나눠 담는다. 반 아이들 선물 싸는데 수년간 훈련이 되었기에 껌이지!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워낙 인원수가 많다 보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꾸역꾸역 스티커 작업까지 완료했다.
그래도 끝내고 나니 뭔지 모를 뿌듯함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힘든 것도 잠깐, 미소가 흐른다. 옛날 옛적, 꽁꽁 숨어있던 한국 땅을 먼저 찾아오셨던 외국인 선교사님들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두 번째, 짐 싸기 리스트를 짠다. 7박 8일간의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여행을 위해 삼 인분의 짐을 싸야 한다. 전도사님의 물품을 받아 실어 가야 하기에 추가 비용 없이 우리가 비행기로 태워 가져갈 수 있는 짐은 총 두 개다. 짐의 경량화, 최소화가 목표다. 네팔 선교사님께서 보내주신 팀별, 개인별 목록부터 살펴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비약이다. 매번 해외에 나갈 때마다 애용하는 소아 청소년과에 전화하여 비대면 진료부터 받는다. 아이를 위한 약과 더불어 상비약을 준비하기 위함이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여 약을 미리 처방받아 갔다가 해외에서 예상치 못한 병고에 요긴하게 복용했던 적이 많아 빠뜨릴 수 없다.
애를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대면 진료의 번거로움을 없애려면 원스토어에서 병원 이름을 검색한 후, <비대면 진료 예약>을 누르면 간단하다. 의사 선생님이 가능한 시간에 전화를 주시고 상담 후, 처방전을 발급해 준다. 처방전은 약국으로 바로 팩스를 보내주거나, 이메일로 보내주시니 그걸로 필요한 약을 받으면 된다. 간단한 상비약 챙김 완료 후, 바로 해외 여행자 보험에 가입한다. 여러 번 보험료 이상의 보상을 받았기에 이 역시 빠뜨리지 말고 반드시 챙겨야 한다.
그다음으로, 필수 용품을 점검한다. 네팔의 음식이 아이에게 힘들 수 있다는 말을 워낙 많이도 들었고, 산간 학교로 올라가는 일정이 2박 3일이라 혹시 모르는 식음의 어려움에 대비하여 바로 마트로 달려간다. 참치는 종류별로 고추, 야채, 일반으로 골라 담고, 깻잎, 장조림, 김 등의 마른반찬과 라면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아이를 위해 좋아하는 과자와 쫀드기(나의 최애 아이템 ㅋㅋ)등 입을 달래주는 간식거리도 함께 데려간다. 짐의 경량화가 목표였는데 이미 짐이 차고 넘치는 걸 어쩌나 큰 일이다.
기본적인 옷가지, 모자, 등산화/운동화, 세안 용품 외에 툭툭으로 이동할 때의 매연에 대비하여 마스크, 뜨거운 햇빛을 가리기 위한 쿨 토시와 얼굴 가리개, 우기의 질척거림을 피하기 위해 판초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비를 준비 목록에 넣는다. 비포장도로를 한참 동안 달릴 때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을 수 있으니 에어쿠션을 가져가라는 지인의 충고에 따라 짐에 포함시킬까 고려 중이다.
세 번째, 선교사님이 섬기고 계신 네팔 고아원 아이들 대상의 영어 캠프 준비다. 명색이 영어 교사인데 이틀 간의 수업을 대충 할 수 없다. 가르쳐보지 않은 초등학생이 주라는 것이 함정이다. 여러모로 고민 끝에 말하기-단어 게임-영어 동화 -성경과 연계한 찬양 -동화책 만들기 등으로 네 가지 영역의 스킬(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을 다루는 활동을 모두 넣어 구색을 맞춘다. 아이들의 연령도, 영어 수준도 천차만별이라 어려움이 있고 선교사님께서 '수준 하에 맞춰주세요.' 했지만 결국은 내 맘대로 짰다. 푸핫. A3 용지와 색연필을 듬뿍 준비했으니 수업하다가 정 안되면 그림 그리기 활동으로 마무리하련다.
대충 얼개를 짜고 준비에 집중하다 보니, 남은 방학을 불사를 네팔 미션 트립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물론 촘촘하게 구멍을 메우며 가기 전까지 챙기고 빼고를 반복하면서 초경량화 짐을 싸야 한다. 남편과 아들이 어린이부, 중고등부 수련회를 위해 며칠 동안 집에 없을 때 나름 혼자만의 자유 부인을 꿈꾸었는데 망(?)했다. 완전한 자유는 아닐 듯. 그래도, 방학이라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그래서, 방학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안녕, 소중한 방학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