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유시민 작가는 문학(시, 소설, 희곡 등)과 다르게 논리 글쓰기(에세이, 평론, 보고서 등)는 재능의 영향을 훨씬 덜 받는다고 말하고 있어요. 누구든 노력하고 훈련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글쓰기를 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이 쓰다 보면 글쓰기 실력이 높아진다는 말인데요, 여기서 ‘어떻게’ 글쓰기 연습을 할까에 대해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모방'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파블로 피카소예요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는 말로 유명하지요. 피카소는 엄청난 양의 습작을 통해 ‘노력하는 천재’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게르니카(1937)》를 완성하기 위해서 열여섯 권의 스케치 작업과 습작들이 동원되었다고 해요. 스케치에서 시작하여 중단 단계의 미완 작품, 여러 버전의 완성작까지 그의 천재성은 수많은 드로잉과 스케치를 거친 치밀한 연습과 구상의 결과였어요.
‘거인의 어깨에 올라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구자들의 위대한 성과 위에 더 높은 차원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인데요, 수많은 대작들을 면밀하게 흡수하여 새로운 명작으로 훔쳐낸 피카소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는 단순히 남의 작품을 베끼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영리한’ 모방을 했어요.
이것을 글쓰기에 적용해 볼게요. 감탄을 부르는 작가, 멋진 글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필사 열풍이 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런 글을 마음에 붙잡아 두고 싶은 욕구의 발로겠지요. 글쓰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좋은 텍스트에 대한 갈구는 마음의 감동을 넘어서 글쓰기 욕구를 함축하니까요.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려면 좋은 문장을 만날수록 도움이 됩니다. 독서가 중요한 이유이고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노력의 투여도 필요합니다. 즉,‘아, 문장 좋다!’라는 감탄으로 끝나지 않고 나의 것으로 소화하는 ‘글쓰기 연습’을 의미해요.
언어의 4가지 기술인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중 쓰기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 발달하는 고차원적인 능력이라고 합니다. 모국어 역시 자연습득이 아닌, 반드시 훈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문장 따라 쓰기에서 글쓰기 연습으로 어떻게 자연스럽게 옮겨 가면 될까요? 저만의 3단계 방법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문장 채집-문장 연습-문장 복용’이라는 나름의 타이틀을 붙여봤어요.
첫째, 문장 채집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은 문장을 만나면 보물을 발견한 듯 가슴이 뜁니다. 우선,‘어떻게 이런 표현을?’하며 작가의 문장에 감탄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집니다. 밑줄을 긋고 머리에서 이리저리 굴려보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바로 그 문장을 채집합니다. 글쓰기 초보 시절에는 조심스레 보석을 캐내듯 아름다운 문장을 뽑아 공책에 옮겨 적었습니다. 지금은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을 모두 병행하고요. 문장 채집은 나름의 유익이 있습니다. 우선, 선별한 문장 목록들을 보면 배가 불러요. 반복해서 들여다보면 마음에 각인도 됩니다. 나중에 한 편의 글을 쓸 때, 훌륭한 인용문으로 뽑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문장 연습입니다. 따라 쓰기(필사)에서 끝나지 않고 필수적으로 거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어요. 새로 발견한 단어, 어구, 문장 구조 등의 기본 틀에서 다른 문장을 재탄생시키는 작업이지요. 단순한 모방에서 끝나지 않고 나만의 문장으로 변환하다 보면 쓰는 문장이 좋아집니다. 문장력을 가꾸는 비결이라고 할까요. 예를 들어, 은유 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문장에 멈춰 섰던 적이 있어요.
‘엄마는 전형적인 옛날 엄마였다. 알뜰과 궁상의 화신. 그래서 여름에 수박을 살 때도 만원이 넘으면 망설였다.’
‘알뜰과 궁상’이라는 어구가 마음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 끗 차이지만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담아내는 신선한 대구어(對句語)가 잔잔하게 마음을 진동시켰어요. 반드시 이 표현을 내 글로 가져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문장 변환을 시도했지요.『괜찮아, 바로 지금이 나야』의 공저 글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기억 저편에서 알뜰과 궁상을 두르고 서 있는 엄마의 모습, 남루한 옷과 겨울철에 신던 여름 슬리퍼가 아릿하다.’
박경리 작가의『토지』를 읽으며 ‘아무리 좁은 면이라도 희망의 여백은 두렵다’는 문장에 감동한 적이 있어요. 추상적 개념을 2차원의 공간 안에 배치하여 만져질 듯 형태를 잡아주는 언어 연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기형도 시인의 『사랑을 목발질하며 나는 살아왔구나』라는 시구도 마찬가지고요. 아름다운 문장들을 흘려버리지 말고 나의 것으로 소화하고 싶어 졌습니다. 희망이 삐걱거리더라도 꾸역꾸역 걸어온 생의 길을 떠올리며 이 표현을 응용하기 위해 시간을 들였습니다. 결국,『아침 10분 영어 필사의 힘』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길어 올렸고요.
‘아무리 좁은 면이라도 희망의 여백은 두렵다고 했던가(박경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희망을 목발질하며 걸었다.’
이때, 주의할 것이 있어요. 화려하게 문장을 꾸며내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양이 없는 사유를 잘 다듬어 어떤 문장으로 표현하냐에 따라서 전달력은 분명히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알맹이 없이 텅 빈 미사여구만 나열해서는 안 되겠지요. 좋은 문장이란 생각의 축이 분명해야 합니다. 나만의 생각을 명료하게 담아야 해요. 문장 연습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간단명료’입니다. 영어로는‘KISS(Keep It Simple and Short)’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짧은 문장 안에 간결하게 하나의 생각을 넣는 것입니다.
글쓰기 시작 단계에서 발견되는 주된 글 습관은 전달하고 싶은 수많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한 문장에 밀어 넣는 거라고 해요. 따라서 만연체(수식‧반복‧부연 설명으로 문장이 길어져 호흡이 길게 늘어지는 문체)의 글쓰기 스타일을 내려놓고 문장 쪼개기 연습을 하면 됩니다. 문장이 길어지면 읽는 사람이 고된 것은 물론이고 오류가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에요. 의미 전달이 모호해지고,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실수가 자주 일어나거든요. 간결체를 지향하며 무조건 쪼개고 덜어낸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김혼비 작가처럼 문장은 길지만 유머와 재치를 담아 자신만의 문체를 만들 수도 있어요. 길고 매력적인 문체는 긴 호흡의 문장들을 오류 없이 자유자재로 쓰게 되는 경지, 글쓰기 고수가 된 이후에 고민하기로 해요.
마지막 단계가‘문장 복용’입니다.‘복용’은 삼키는 행위입니다. 몸 안으로 들어가 몸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지요. 너무 많이 복용하면 탈이 나고, 너무 적게 복용하면 효과가 떨어집니다. 건강한 문장 복용은 빈약과 과잉을 지양합니다. 정량의 생각과 의미를 간결한 문장에 담아 소화하기 쉬운 글을 써야 하지요. 단편적인 과정일 수 있는 문장 채집과 문장 연습, 이 둘을 잘 연결하여 한 편의 글 안에서 문장이 잘 흡수되도록 손을 보는 작업이 문장 복용이라 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연습한 문장이 들어갈 수 있는 주제를 찾는 작업을 자주 합니다. 문장 복용의 한 가지 방법이거든요. 특정 주제로 글을 쓸 때 이 문장이 어떤 글에 잘 스며들 수 있을지 거꾸로 탐색하는 방법인데요, 연습한 문장을 제대로 적용하는 과정이 되어줍니다. 짧든 길든 그 문장이 잘 어우러진 한 편의 글을 써보는 것, 모방에서 시작되는 창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볼게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다음 문장을 만났어요.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작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문장이지요? 이 문장을 내 글로 바꿔 적용해서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무한한 선택과 결정으로 점철된 인생길에서 선택하지 말아야 할 수많은 이유와 선택해야만 하는 한 가지 이유를 연결하면 되겠다 싶었어요. 마침,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던 차였어요. 소설의 주인공 펄롱은 순전하리만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위험한 선택을 하는데요, 그런 용기는 하루아침에 튀어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굳이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일을 선택한 그의 결심은 어린 시절을 빈틈없이 채워주었던 사랑과 친절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어요. 제목을 『이처럼 사소하지 않은 것들』로 패러디하여 한 편의 글을 썼습니다.
“... 선택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대형 트럭만큼 많을 수 있다. 그의 선한 마음은 어린 시절 따뜻함이 뭉근히 우려낸 결과였다. 그렇게 빚어진 그의 내면은 양심의 소리에 따르도록 단련되었다. 결코 사소하지 않은 그 용기와 선은 사소하다고 여길 수 있는 일상의 훈련 덕분이었다...”
자, 이렇게 문장 복용을 하고 나면 한 편의 글로 마음이 볼록한 양감을 띄게 됩니다. 문장 연습의 세 가지 단계가 이해되시나요? 사실, 글쓰기 연습의 정론이라 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없어요. 좌충우돌 나름 터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만, 각자 취사 선택하여 자신만의 글쓰기 방법을 찾아가는 것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보탭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나 산문집을 좋아해요. 전문 에세이스트들의 글은 기막힌 표현력에 매번 감탄하며 읽게 되거든요.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 능력 신장으로 연결 짓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좋은 문장을 찾고 또 어떻게 변환할까 고민하지요. 물론 그렇게 글을 읽다 보면 독자로서의 순수한 즐거움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어요. 그래도 배움의 과정으로 즐길 때가 더 많습니다.‘문장 채집-문장 연습-문장 복용’의 3단계를 통해 여러분의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