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본: 무엇을 어떻게 쓸까?

글감 찾기의 출발: 나, 그리고 일상

by 위혜정


글쓰기의 과정은 단계를 밟아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문화적응 4단계처럼 말이지요. 허니문 단계(Honeymoon), 문화 충격 단계(Culture shock), 조정 단계(Adjustment), 적응-동화 단계(Adaption-Assimilation)가 그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단계를 건너뛰기도 하고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경험하기도 합니다. 일단, 글쓰기 문화 안으로 처음 들어오면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움에 대해 한없이 설레고 즐겁습니다. 갓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부부처럼 앞으로 펼쳐질 낭만적인 인생을 상상하며 그저 행복해지는 것이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결혼 전후의 차이를 확연히 경험하게 되듯 글쓰기에서도 이상과 현실이 부딪치는 시기가 옵니다. 현실 감각이 조금씩 깨어난다고 할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낯선 문제들에 대해 좌절과 혼란을 겪습니다. 잘 쓴 글과 초라한 나의 글을 비교하는 마음, 글을 쓰면서 과거와 내면의 민낯을 보는 고통, 글을 쓸 수 없게 만드는 현실에 대한 불만, 도저히 극복되지 않는 습관의 굴레 등 각종 이유로 글쓰기를 주춤하게 되는 고민의 시간을 통과합니다.




그러다가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가는 깨달음과 조정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문화적 충격을 극복하고 낯선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일상에 스며든 글쓰기의 새로운 세계에서 나만의 방법들을 찾아가는 문제해결의 과정이 되겠지요. 이 시기를 잘 넘어가면 편안하게 글을 쓰게 되는 동화의 단계에 이릅니다. 의문의 찌꺼기가 부지불식간에 수면 위로 올라오고 주기적으로 권태기에 빠지기도 하지만 걸러낼 수 있는 거름망과 벗어날 수 있는 퇴로를 압니다. 그동안 글쓰기에 부은 시간이 고여 내공이 생긴 덕분이겠지요. 자체 정화 시스템이 가동되어 멈추었다가도 다시 글을 쓰는 동력이 생긴 것입니다.





‘뭘 그렇게 끊임없이 쓰는 거야?’하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무엇을 썼던 걸까요? 멈춤과 지속의 구간을 반복했던 경험을 떠올려 봅니다. 글 쓸 소재가 화수분처럼 쏟아져 나오면 좋으련만 글감이 말라버려 서성일 때가 종종 있거든요. 쓸거리가 있으면 쓸 걱정이 없다고 하는데 말이지요. 시선의 각도를 살짝 틀어서 ‘뭘 써야 할까?’ 대신‘왜 못 쓰는 걸까?’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해요. 글을 못 쓰는 이유를 소거하다 보면 글을 쓰게 되는 답을 찾게 될 테니까요.





먼저,‘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뭘 써?’하는 의심 속에 맴돌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이거 아시나요? 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평범하다고 착각할 뿐이지요. 판화를 찍어내듯 나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심지어 쌍둥이도 다른 인생을 살아갑니다. 생의 동선이 살짝 겹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유사한’,‘보통의’ 등과 같은 형용사로 내 인생을 수식하지 마세요. 누구나 같은 경험을 해도 모두 다르게 생각하고 느끼는 개별성과 독자성을 가집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감각하고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경험의 의미도 달라지고요. 꽃이라 불러야 비로소 꽃이 된다고 하잖아요. 나만의 이야기, 내 목소리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한때 유행했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지요.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고유한 정체성을 살리는 것이 국경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이야기와 생각은 풀어내기 가장 쉬운 분야이기도 해요. 전문가가 바로 나라서 그래요. 가장 생생하게 어필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고요. 거창하게 수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수에게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놓는다고 생각하세요.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 메시지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글을 쓸 수 있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영어 교사’라는 정체성을 특별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워낙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도 많고 학교 현장에서도 원어민 발음의 실력자 학생들도 많이 만나거든요. 한 때, 교사가 힘들어 새로 다른 것을 시작해 보고 싶은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수년간 함께해 온 영어를 한순간에 떨구어 낼 수 없었어요. 쌓인 시간만큼이나 삶의 일부로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떼어낼 생각 말고 ‘영어’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새로 시작하자고요. 그렇게 영어 필사를 만나고, 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꾸준히 학습했기에 영어 소설을 읽을 수 있었고, 책에서 건진 명문들을 영어로 필사를 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글쓰기로 연결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필사책을 처음으로 집필할 수 있었던 것도 영어와 분리될 수 없는 ‘나’가 바로 출발점이 되었어요.






첫 책의 원고를 투고했던 경험도 들려드릴게요. 출판사의 거절 메시지를 줄줄이 받고 하염없이 작아져 있던 때에 한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어요. 투고했던 원고가 아닌, 저자의 경력을 보고 기획 출판을 의뢰해 주신 것이죠. 어리둥절했습니다. 당장 손에 쥔 원고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책을 쓰고 싶은 동력이 생기지 않아서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운이 좋게 출간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최종 원고 작업이 마무리될 시점에서 또 다른 출판사의 연락을 받았어요. 투고했던 원고를 검토하던 중 영어 교사로서의 경력을 보고 책 집필 의사를 타진해 온 것이었어요. 아직 책 한 권 출간하지 못했던 글쓰기 초보 시절에 무엇을 믿고 기획 출간을 의뢰했던 걸까요? 10년 이상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영어 교사로서의 관점과 시선이 필요했던 책이었어요. 뜻밖에도 경력이 경쟁력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크게 깨달았습니다. 무심코 쌓인 시간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스스로에게 익숙하다고 해서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계시나요? 오랜 시간이 고인 활동은 결코 허비가 아닙니다. 직업이든 직업이 아니든 시간이 길어 올린 지식과 기술은‘전문성’이 되어 남습니다. 설사 전문적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분명히 남들과는‘다른’ 안목과 시선이 나도 모르게 생겨나 있어요. 다른 이에게 없는 나만의 관점으로 글을 쓸 수 있고 이것은 고유한 빛을 띱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로 평범한 일상은 글의 소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착오를 들 수 있어요. 초등학생들이 평소와 다른 거창한 특별 이벤트가 있어야 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매일 똑같이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된 일상 속에 쓸 거리를 건져낼 수 없다고 투정합니다(실은 제 아들이 그래요. 일기를 쓰기 위해 뭔가 특별한 걸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요).





윌리엄 워즈워드라는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시인이 있어요. 그는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삶’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기로 유명합니다. 워즈워드의 시론에는 ‘상상의 착색(a certain coloring of imagination)’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평범한 일상의 경험을 특별하게 창조적으로 재구성하는 힘을 말합니다. 시인만의 시선으로 평범한 현실을 특별하고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박웅현 작가도『천천히 다정하게: 박웅현의 시 강독』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어요.


“시인과 같은 시선이 우리 내부에 쌓이기 시작하면 우리도 매일 평범한 하루 속에 예술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삶이 예술이라는 관점을 가져보신 적 있나요? 일상적이면서도 객관적인 현실은 주관적인 감정과 관점을 덧입히면 완전히 다른 소재로 탈바꿈될 수 있어요. 자신만의 시선으로 흐르는 일상을 아름답게 글로 묶어 보세요. 그 순간의 생생한 심상이 박제되어 영원히 머무릅니다. 하나의 예술이 되어서 말이지요. 글쓰기란 사랑하는 대상을 불멸화하는 일이라고 하는 말이 있잖아요. 나의 인생을 사랑한다면, 애정을 담아 반복되는 일상을 글로 남겨 보세요. 매일의 산책, 새로 배우기 시작한 킥복싱, 평생의 숙제인 다이어트 등 작고 소소한 일상을 엮어 의미 있게 글로 포장해 주는 것이죠. 수천 개의 숲도 한 개의 도토리 열매에서 만들어집니다. 나의 작은 일상은 글이라는 숲을 만들어 줄 수 있어요.






평범한 일상이 글이 되고, 책으로 묶이는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아무튼』시리즈는 일상에서 건져낸 단 한 가지의 주제를 풀어낸 글모음입니다. 『아무튼, 달리기』,『아무튼, 노래』, 『아무튼, 술』 『아무튼, 친구』,『아무튼, 맛집』 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달리기, 노래, 술, 친구, 맛집 등은 누구나 흔하게 접하는 주제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축으로 다양한 일화들을 응집력 있게 엮은 것이지요.『나의 직업은 엄마입니다』,『나는 메트로포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매일 읽겠습니다』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라는 역할, 경비원이라는 직업, 독서라는 취미 등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이야기가 결국 책이 됩니다. 평범한 소재인듯하지만 글로 펼쳐낸 사람만이 저자가 되는 기회를 잡게 되는 걸 알 수 있어요.






게다가 평범함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무기가 됩니다. 어떤 글을 읽다 보면, 내 머릿속을 샅샅이 훑고 지나간 것처럼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놓은 글이 있어요. 글쓴이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놀라우면서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혼자 겪는 일이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나 누구나 겪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글의 흡인력을 높여줍니다. 글을 쓰는 사람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지요. 흔해 보이지만 흔하지 않은 기회의 주인공이 되는 것, 글을 쓰는 사람만이 누리는 혜택이 아닐까요?


♠‘나’와‘일상’을 소재로 글쓰기 ♠


1. 남들과 다른‘나’만의 평범함, 아니 비범함은 무엇인가요?


2. 삶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내 인생을 이루고 있는 반복되는 일상은 무엇입니까?


3. 새롭게 시도하거나 배우는 무엇이 있나요? 매일 변화되는 과정을 떠올려 글로 묶어 보고 싶은 주제는 무엇인가요?




매거진의 이전글끊임없는 탐색: 경청, 관찰,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