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탐색: 경청, 관찰, 질문

by 위혜정


머릿속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붙잡은 것이 글감입니다. 이것을 활자로 묶는 과정이 글쓰기이고요. 그런데 일상에 널려 있다고 하는 글감이란 녀석이 막연히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탐색해야 합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적용된다고 해야 할까요?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미처 몰랐던 말들의 출처」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기획했던 적이 있습니다.‘마태 효과’,‘밧세바 신드롬’,‘루시퍼 효과’ 등과 같이 성경에서 비롯된 일상 용어를 인문학적 지식과 접목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 어느 때보다 주제에 맞춰 관련 용어를 찾기 위해 예민하게 안테나를 세웠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심폐소생술(CPR) 의무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요, 강사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심폐소생을 시행했다가 나중에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소송을 당하면 어떻게 하죠?”

괜히 도와줬다가 뒤통수를 맞는 억울한 상황입니다. 다행히 이를 막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 법’이라는 법적 안전망이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생명이 위급한 사람을 대상으로 응급조치를 했을 경우, 이로 인해 발생하는 책임을 감면하는 법이 있더라고요. 그 순간,‘선한 사마리아’이라는 용어가 잽싸게 낚였습니다. 그 출처가 바로 성경이거든요. 글감을 건져 올려서 한 편의 글이 쓸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고민과 탐색이‘무심’ 코 지나칠 수 있는 소재를 글로 연결하는 그물망이 되어주었습니다. 무심(無心)’을‘유심(有心)’으로 바꾸기 위한 기폭제는 무엇일까요? 바로‘경청’과‘응시’가 아닐까 싶어요.『아티스트 웨이』의 저자 줄리아 캐머런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의 깊게 듣는 행위는 우리를 주변의 소리와 접하게 하고 주변과 더 깊게 만나게 한다.”


듣기는 주변의 모든 것과 연결하는 행위라고 합니다.‘경청’이란 것은 사랑과 존중을 기반으로 해요. 사랑에 빠지듯 통제를 포기하는 것, 듣고자 하는 대상에게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이기에 그래요. 멈추어서 집중할 때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오롯이 그 순간에 머무르다 보면 이해와 공감으로 연결이 됩니다. 예상치 못하게 통찰이라는 방문객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요. 그걸 글로 쓰면 됩니다. 언젠가 아이가 쌓였던 서운함을 쏟아내며 제 앞에서 펑펑 운 적이 있었어요.


“엄마는 내 편이 아닌 거 같아요. 내 얘기는 안 듣고, 다른 애들 먼저고 나는 신경도 안 써주고...(엉엉엉)”


아들은 또래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큽니다. 워낙 큰 체구인지라 작은 몸짓도 확대경을 댄 듯 도드라지고, 본인에겐 가벼운 터치라도 물리적 힘의 크기가 상대에 따라 다르게 접수될 위험이 다분하다고 생각되었어요. 수많은 학교 폭력은 작데서 비롯되기에 교사의 시선으로, 처음부터 아이를 단속시키느라 바빴지요. 언제나 다른 친구들의 입장에서 아들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엄마가 선생님이 아니면 좋겠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울음을 터트린 아들을 통해서 최악의 공감자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티스트 웨이』의 줄리아 캐머런이 말했듯 부탁하지 않은 충고는 폭력이며 상대의 귀를 닫아버리게 하는 오만함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요. 그 일이 있고 난 후, 아이의 마음을 듣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나의 자존심을 사랑했던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집 밖에서 칭찬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고 나를 사랑했기 때문에 내 아이의 마음을 상하는 걸 감수했더라고요.‘아이 마음 돌보기, 그 당연한 것을 먼저 하지 않았을까?’하는 통찰과 함께 글 한 편을 썼습니다. 상대에게 경청하면 공감과 이해, 나아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번에는 청각을 시각으로 데려와 볼게요.‘경청’에 해당하는 것이‘응시’가 아닐까 싶어요. 마음을 열고 바라보는 ‘관찰’과 같은 것이지요. 관찰은 관심을 가지고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시선을 한 곳으로 모으는 행위입니다. 분주한 나를 내려놓고 대상을 가만히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의미들이 가슴으로 흘러듭니다. 몽글몽글 글감이 피어나는 순간이기도 하지요. 자연에 머물러 봄의 행복을 살피고 싶어서 두 가족과 함께 캠핑을 계획했던 적이 있었어요. 햇살 가득, 푸르름 가득 어딜 가나 가슴을 활짝 열어 안아주는 자연을 덕유산 국립공원에서 만났습니다. 자연과 자연에 뒹구는 아이들을 눈에 담으며 자연의 시간에 머물러 관찰하기 시작했어요. 하루 자체가 멋진 글감이 되어 다음과 같은 글을 끄적이게 되었고요.


“낮 동안 실컷 달궈진 땅의 열기가 식기 시작하는 느지막한 오후, 낮을 배웅하고 저녁을 마중했다. 서서히 깔리는 어둠의 융단 앞에 불을 지펴 밤의 여운을 가만히 데려왔다. 숲의 한기와 사람의 온기 사이를 오가며 옹기종기 화덕 주위에 모여 앉아 마시멜로를 구웠다. 몽글몽글 피어나 터질 듯 부풀어 오른 하얀 꽃송이를 조심스레 입에 물었다. 보드랍고 폭신하게 스며 나오는 달콤함이 입안에 얇게 퍼진다. 아이들은 맛있었고 어른들은 즐거웠다. 그렇게 자연에 둘러싸인 시간은 지친 삶을 쉼과 행복으로 덮어주며 가슴 뛰는 기억으로 새겨졌다.”


경청과 응시는 마음과 시간을 들이는 과정입니다. 애씀이 들어가니 대상에 대한 애정은 기본이겠지요. 그 대상이라는 것은 내부와 외부, 즉 나 자신과 주변을 모두 포괄합니다. 나의 소리를 듣고 나를 살피는 것, 다른 이의 말을 듣고 관찰하는 것은 모두 글감으로 연결됩니다. 이 경험이 쌓이면, 어디 또 글감이 없는지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고 여기저기를 뒤지고 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돈이 돈을 낳는 것처럼 글이 글을 낳는 나비 효과라고 할까요.




글감을 발견하는 또 다른 방법은‘질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영어 필사를 하면서 질문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어요. 자연스레 글을 쓸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어주었습니다. 필사책을 출간할 때마다 텍스트와 함께 질문을 넣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경험했던 사유와 성찰을 접목하기 위한 장치였지요. 여러 권의 필사책을 출간하고 난 후 필사 시장을 둘러보았더니, 질문이 전무(全無)했던 필사책들에 하나둘 질문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경험했던 질문의 중요성을 증명하듯 필사책의 패턴이 바뀌어 가더라고요.




질문력(質問力)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질문은 중요합니다. 무비판적인 수용이 아닌, 사고 자극과 확장을 도와주기 때문에 그래요. 시선과 관점의 차이를 가지고 의문을 가지면 답을 찾아야 하거든요. 맞든 틀리든 답을 더듬어 가는 과정은 변화의 시작점이며, 한 편의 글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난생처음 CT를 찍은 적이 있어요. 난치성 폐질환 진단을 받았지요. 치료제가 없어서 고치기 힘들고, 증상이 심해지면 독한 약물에 의존할 뿐, 회복을 기약할 수도 없다는 말에 마음에 덮친 먹구름의 무게에 짓눌렸어요. 이유 없이 기침이 날 때마다 마음이 쪼그라들었고요. 1년이 지나고, 추적 관찰을 위해 두 번째 CT 촬영을 했을 때 교수님의 예상치 못한 처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오지 마세요. 폐의 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염증도 많이 줄어든 것 같고.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니 나중에 증상이 나타나면 방문하세요. 지금처럼 관리 잘하시고요.”


1년 만에 손바닥을 뒤집듯 변화가 일어난 이유가 뭘까요? 바로 질문과 관점의 차이때 문이었어요. ‘왜’에서 출발했거든요. ‘왜 폐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저보다 남편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는 것이 맞습니다. 꼬리를 무는 질문 속에서 ‘환경 개선’과 ‘면역력 강화’라는 자체 계획으로 걱정스레 제 옆을 지켜주었으니까요. 남편은 아내의 건강을 위해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고, 운동으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PT를 자처했습니다. 근력 운동은 기본이고 폐기능 강화를 위해 달리기도 추가하여 함께 뛰었어요. 운동이 끝나면 온몸에 오일과 로션을 발라주고, 아침마다 디톡스 주스를 갈아 주었습니다. 저녁이면 가습기를 채워 숨쉬기 편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고, 기침 소리가 날 때마다 따뜻한 차를 대령하여 증상이 잦아들게 해 주었고요. 당분간은 폐병이라는 족쇄가 헐겁게나마 풀려 일시적인 자유가 허락된 이유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했기 때문이에요.





벌어진 일, 주어진 상황, 스쳐 가는 여러 가지 자극에 대한 반응은 다양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지?’, ‘매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무엇을 더 해야 할까?’ 등 문제의 실마리는 잘 던진 질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질문과 문제의 해결의 과정은 사고의 깊이를 더합니다. 나를 변화시키게 되고 결국 깊은 서사로 뽑아낼 수 있게 되고요. 결국, 하나의 장대한 경험이 결정체가 되어 남게 됩니다. 글감을 찾는 최적의 방법은 바로 ‘질문’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로 마무리할게요.




“만일 내게 인생을 좌우할 중대한 문제를 풀 시간이 1시간 주어진다면 나는 55분을 중대한 문제가 무엇일지 고민하는 데 쓸 것이다. 최적의 질문을 찾기만 한다면 해답은 5분 안에 찾을 수 있다.”


♠ 탐색의 과정 ♠



1. 자연, 나, 상대 등 집중해서 듣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요? 언제, 어떻게 들으시겠습니까?



2. 관찰과 응시를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요? 어떤 대상을 관찰해 보시겠습니까?



3. 내 일상, 혹은 인생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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