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힘, 메모 : 생각 포착과 쪼개 쓰기

by 위혜정


아들이 1학년 때 휴직을 했어요. 매일 아침 뒷산을 오르내릴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었지요. 어느 날, 갑자기 일상에 흘러넘치는 감사에 대한 글이 너무 쓰고 싶어 지더라고요. 뒷산에서 뛰어 내려와 후루룩 글을 써서 공저『책 속 한 줄의 힘』에 담았습니다. 스스로에게도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갑작스럽게 영감이 막 떠오르고, 주체할 수 없는 감흥이 글로 변환되는 날은 그리 자주 오지는 않더라고요. 설사 그런 순간이 오더라도 바로 글로 옮겨놓지 않으면 금방 휘발되어 버리곤 합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건져낼 수 없어 머리를 쥐어박으며 실망하는 날들도 많고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본의 동화작가 요시타케 신스케는 메모 습관으로 유명합니다. 40세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작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언제나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글로, 그림으로 끄적인다고 해요. 추후 메모한 부분만 따로 모아 살펴보면서 동화책의 아이디어로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엉뚱하면서 기발한 그의 이야기는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들을 흘려버리지 않고 묶어 두는 메모 습관의 결실이었습니다.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는 말처럼 중요한 단어, 키워드만 적어 두어도 나중에 생각을 재생할 수 있어요.




수시로, 자투리 시간에, 끊임없이 무엇을 쓴다는 측면에서 메모는 글감의 중요한 단초가 되어줍니다. 소설가 김초엽은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관내분실’이라는 단어를 듣고 메모해 두었다고 해요. 메모를 보면서 책이 아닌 사람의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것이 사라지는 이야기를 구상하여 단편 소설『관내분실』을 완성했다지요. 소설가 양귀자의『모순』을 읽고 난 후 작가 노트가 인상적이었는데요,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는 시간 동안 언제나 메모 노트에 흘러넘치는 말들을 담아 둔다는 내용이었어요. 소설 안으로 유입되는 아이디어들뿐만 아니라 소설 바깥에서 보는 작가의 시선들이 난잡한 메모 노트 여기저기를 채운다고 합니다. 지나가는 꿈같은 시간이 메모 노트에 담겨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대요.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포착하는 것은 메모에서 출발합니다. 소중한 글감을 저장하기 위해 자신에게 맞는 메모장을 만들어 보세요. 물성이 있는 수첩이나 노트도 괜찮고, 언제나 들고 다니는 핸드폰도 글감 저장의 좋은 도구가 됩니다. 쓰는 행위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질 때 녹음을 해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바로 핸드폰의 녹음기를 켜서 음성으로 저장해 두면 좋아요. 저의 경우,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에서 제공하는 ‘작가의 서랍’ 공간을 자주 활용합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오는 놓치기 아까운 장면, 일상의 대화 속에서 불쑥 떠오르는 ‘아하!’의 순간, 쓰고 싶은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때면 핸드폰을 꺼내서 간단히 메모하고 저장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아이디어가 영글면 내용을 덧붙이고 가다듬어서 하나의 완성된 글로 발행할 수 있어요.





메모를 통해 생각의 재료를 보관하고 서랍 속에 넣어둔 여러 주제를 섞어 조합하면 글이 더욱 풍성해질 때도 있습니다. 소재의 조합은 또 다른 소재를 창출하기도 하고, 생각과 경험의 결합은 새로운 논리로 연결되거든요. 비빔밥에 다양한 재료를 섞으면 풍미가 더해지듯 쓸 재료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으면 글에 양감을 볼록 채울 수 있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해야 할까요? 모두 메모의 힘입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남편이 커피숍을 창업하고 커피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적이 있었어요. 각각의 커피는 가진 향미가 다릅니다. 생산지의 고도와 기후에 따라 생두가 갖는 본연의 특성이 달라서 그래요. 다양한 커피의 향미에 따라 사람들의 호불호도 달라집니다. 어떤 이는 신맛을, 어떤 이는 고소한 맛을 좋아해요. 단, 식음인의 입맛에 맞춰 생두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바꿀 수는 없지요. 이 소재로 글을 쓰려고 할 때 즈음, 동일한 원고에 대해 출판사별로 반응이 다른 것을 또 한 번 경험하게 되었어요. 투고할 때면 겪게 되는 상황이지요. 이를 하나의 글감으로 메모해 두었습니다. 우연히 두 가지 소재를 나란히 놓고 보니 뭔가 교차점이 있더라고요. 각자의 선호도에 따라 커피의 맛을 알아봐 주고 기꺼이 찾아와 주는 고객, 출판사별 다른 시선과 의사결정 과정의 차이를 연결할 수 있었어요. 어떤 커피를 좋아하느냐는 각자의 선호도이지 내가 가진 향미의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나름의 논리를 세울 수 있었지요. 나만의 고유한 풍미를 가진 커피를 내리다 보면 결국, 나의 글이 닿게 되는 출판사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글을 썼어요. 메모해 둔 두 가지, 혹은 세 가지 아이디어가 만나 한 편의 글이 될 수 있습니다.




메모는 여러 측면에서 글쓰기에 힘을 실어주지요.

메모의 조각을 붙이다 보면 글의 이음새와 매무새가 다져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한자리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글을 쭉 쓰지는 못합니다. 그럴 능력도, 시간도 제겐 없거든요. 전업 작가가 아닌 한 우린 모두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시공의 제약을 거슬러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방법은‘쪼개 쓰기’입니다. 글감을 메모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어떤 생각은 묵혀두었다가 다시 꺼내 살을 덧붙이기도 하고 어떤 주제는 틈틈이 쓰고 붙이고를 반복하는 편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요. 단어 메모, 문장 메모, 글 메모까지 메모는 확장성을 가집니다.




메모와 메모를 이어 분량을 채우면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이어서 흠잡을 데 없는 수준의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으세요. 부엌에서 요리할 때 재료 손질, 칼질, 양념 배합, 조리 등 구간별 단계를 이어 붙여야 맛있는 음식을 식탁에 내어놓을 수 있듯이 완성된 글 한 편을 발행하기 위해서 치열한 붙임과 수정의 과정을 거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져요. 조각난 글을 이어 붙여 결국은 완제품의 요리인 글을 탄생시키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영어 단어를 자투리 시간에 외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처럼 모든 글을 굳이 책상 앞에서 쓸 필요는 없습니다. 스치는 상념을 메모한 후 다시 끄집어내어 글감으로, 글로 확장하는 작업은 매 순간 치열하게 연습하고 세워갈 만한 좋은 습관입니다.





메모는 기록의 힘을 보여 주는 시작점이에요. 기록하다 보면 기록할 것이 더 생겨나거든요. 책 속 한 줄 긋기처럼 나중에 다시 꺼내 보고 싶은 텍스트나 좋은 인용 문구를 만나면 기록해 두세요. 이는 사고 자극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관심사를 서서히 드러나는 효과도 있거든요. 어떤 분야에 대한 메모가 많은지를 가늠하다 보면 몰랐던 흥미 분야를 포착하여 책의 주제를 잡을 수도 있어요. 글의 내용이 빈약해 보일 때, 혹은 나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싶을 때, 기록해 놓은 문구들을 활용하여 글의 완성도를 높일 수도 있어요. 생각이 왔다 간 자리, 기록으로 아웃풋 해본 시간은 결국 책을 쓰는 데 큰 자산이 되어 줍니다.

♠ 메모하는 습관 ♠


1. 메모를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메모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세요.


2. 글쓰기 재료를 모을 수 있는 메모 도구를 선택해 보세요. 어디에, 어떻게 떠오르는 생각을 저장하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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