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거지? 경험 부자!
얕은 체험이 아닌 깊은 경험
"엄마, 우리 반에서 현장체험학습 안 쓴 사람은 저 밖에 없을 걸요? 저는 결석도 안 하고 학교 다 갔어요."
"너 독감 걸려서 안 가고, 아파서 안 가고 결석 많이 했는데?"
"아니, 그거 말고요."
"주말이랑 방학 때 놀러 다니잖아."
"학교 안 가고 놀러 가는 거요."
순간 뜨끔하다. '개근거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성실함이 거지 취급을 받는 시대에 초등학교 생활을 1년도 채 하지 않은 아이가 벌써부터 현체를 앙망하다니. '개근거지'는 현장체험학습을 이용해서 학기 중에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무결석생을 일컫는 비하/혐오 발언이다. 현재 학부모들의 학창 시절에는 아파도 학교에 가는 것이 당연했는데, 요즘은 결석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비난을 받는, 가치를 역행하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개근상'의 의미가 각별했던 시대적 가치가 소멸되고 '개근상'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다. 성실의 미덕이 각광받던 시대에서 정직과 정도(正道)를 오히려 미련함으로 여기는 왜곡된 시선이 짐짓 씁쓸하다. 여기에 소비적인 체험학습 남발이 진정한 교육적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경험은 타자와의 만남이다. 반면 체험 속에서 인간은 언제나 자기 자신만 본다. 경험이란 떠들 수 있게 된 체험이다. 다른 사람과 소통이 가능하게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을 우리는 경험이라 부른다. 경험은 죽었다. 온통 체험으로 바뀌었고 체험은 경험을 소비로 전락시켰다. '해보자'식의 깊이 없는 체험은 그저 잘 보고 왔거나 잘 놀고 왔다는 허탈한 소비만 남기에 된다.
- <한 학기 한 책 읽기 슬로리딩> 中 -
경험과 체험은 모두 영어로 'experience'이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살짝 다르다. 경험이란 피상적인 체험이 아니다. 체험학습이라는 이름 하에 몸은 반응하지만 마음으로 흡수되어 머리에서 휘발되지 않는 진정한 경험의 축적이 과연 몇 프로나 이루어지고 있을까? 나 중심이 아닌, 타자와의 만남 즉, 마음 깊숙이에서부터 공감을 끌어내는 과정이 경험이다. 속전속결로 소비되고 종결되는 체험은 더 깊고 넓은 경험의 확장과 동의어가 아닌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으로 들어가 '경험'하는 과정이 빠져있는 텅 빈 체험들이 난무하다.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체험학습이라는 말 자체가 썩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가치의 역행을 다시 뒤집어보려는 고리타분한 고집 때문인지, 명칭에서 오는 거부감 때문인지 모를 노릇이지만 아직은 체험학습으로 결석시키고 싶지 않은 것이 어미의 마음이다. 게다가 결석 한번 하면 담임 선생님께 서류 수합이라는 번거로운 업무를 드리게 되는 데다 솔직히 학비도 아깝다. 속사정을 모르는 아들은 친구들이 해외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 여행, 아니 집안 행사로 결석하는 것을 마냥 부러워한다. 학기말까지 버티다가 체험이 아닌 경험이 되는 구실을 찾아본다.
마침, 교회 찬양팀 제부도 펜션 여행이 잡혀 있어서 일 년에 한 번쯤은 아들 소원 한번 들어주자 싶어 현체 계획서를 냈다. 신난 아들, 친구 엄마한테까지 내일 학교 안 오고 펜션에 수영하러 간다고 한껏 자랑한다. 여행 당일, 학교 안 가니 깨우지 말라고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꼴등에 가까운 도착 시간을 기록했다. 네 가정에 청년 5명, 총 20명의 인원이 움직이는 작지 않은 규모의 여행이다. 세 살배기 유아에서부터 오십 대 중년까지 연령층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넓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대형 펜션에서 '함께'의 시간을 녹였다. 뜻하지 않게 아빠와 엄마의 삶으로 초대된 아들이 아직은 어려서 '동행'의 의무(?) 수행해 내야 할 때, 타자와의 이야기로 전환된 체험을 가져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펜션에는 온수풀과 어린이 놀이 공간 및 노래방이 갖추어진 공간이 예비되어 있다. 첫날부터 비가 오고 다음 날은 눈이 내리니 맞춤형 장소다. 아이들은 부모와 동일한 공간 내에서 안전하게 그들의 시간을 만들고, 어른들은 각자의 삶과 신앙 이야기들을 펼쳐 놓는다. 간간이 서로 교차되는 아이와 어른들의 시간이 '우리'의 추억으로 조화롭게 섞인다.
언제부턴가 혼자보다는 '가족과 함께'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함께'가 익숙한 삶의 사이클 안에 들어섰다. 홀로 독립족으로 나만의 삶만 영위하던 싱글에서 껌딱지인 아들과 그에 못지않은 남편을 배제한 삶이 오히려 내 것이 아닌 듯 어색해지는 시기를 넘어섰다. 시간이 갈수록 다른 가족들과의 확장된 관계로 유입되어 깊이감과 넓이감이 더해져 간다. 아들을 부모의 시간 안에 끼워 넣을 때 단순한 체험이 아닌, 깊은 경험이 되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도 점점 커진다.
개근 거지를 경험 부자로 치환해 내는 힘을 가지면 좋겠다. 어른들의 시간 안에서 찬양과 노닐던 기억,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과 어른들의 사이에서 서로 소통하는 기회, 상대의 영역을 존중하며 주거니 받거니로 결속되는 경험, 작년에 이은 방아머리 해수욕장 방문을 통해 하얀 눈 속에서 바람에 날려갈 뻔 한 긴장의 시간, 미니 눈사람을 기어이 만들어 낸 자신감을 단순한 재미보다 의미 있는 그 무엇으로 떠올리길 바라본다. 학교 안에서든, 학교 밖에서든 경험의 깊이는 당사자가 결정하는 것이다. 단순히 특정 공간에서 이탈하는 것이 체득한 경험의 질을 결정하지 않는다. 얕은 체험뿐인 체험학습 보다 깊은 경험을 품은 개근 왕자로 사는 것이 백 번 천 번 낫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