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의 반격

흩어짐이 곧 묶임이다

by 위혜정

"한국과 미국의 크리스마스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 같아?"

"우린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데 한국은 각자들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외국인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이다.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듣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한국의 크리스마스는 집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연인 혹은 친구들과 함께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집을 벗어날 계획을 세우고 거리의 왁자지껄 한 북적임과 혼연일체가 되어 연말의 분위기에 타오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크리스마스에 나 홀로 집에'라는 세상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무슨 건수라도 하나 잡아 을 배회하는 것이 당연함인 시절이기도 하다. 나의 과거 역시 특정된 날은 여지없이 바쁨이 미덕이었으니, 다 한 때 아니겠는가. 왜 그리 안간힘을 다해 집의 안락함에서 탈출하려 했던 걸까?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그 시절 젊음의 광기는 끓어오르는 외로움의 반격이 아니었을까싶다. 혼자라는 고독을 지워 내고, 함께의 힘으로 뿌리 박혀 있는 외로움을 캐내기라도 해야 한 해의 끝자락을 놓아줄 수 있다. 새로운 해를 만나러 가는 길목에서 맞이하는 통과의라고 해야 할까.




결혼하고 가장 좋았던 점은 "너 언제 결혼할 거야?"라는 질문과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내 결혼에 1도 도움 주지 않는 사람들의 지긋한 부담감, 그 눈빛들에서 해방된 자유 함이었다. 그다음으로 좋은 것은 사람들이 지정한 특별한 날에 특별 이벤트와 특별 만남을 준비하고 머리 굴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그저 당연히 내 옆에 있을 가족과 다복하게 하루를 채우면 그만인 여유로움에 세상 편하다. 외로움의 빈자리를 꽉 채워주는 가족의 온기까지 더해져 밖으로 향하는 에너지의 압 힘없이 빠져나간다. 특별할 것 없이 단조로운 평타의 크리스마스, 또 다른 일상이 예견된 올해였다. 사실, 그런 인식조차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빨간 날, 가족과 예배를 드리며 성탄의 기쁨을 잠잠이 보내게 될 화려하지 않은 시간 아쉬움도 없었다.


그. 런. 데. 워낙 단조로운 크리스마스인지라 살짝 부스트업을 해주려는 듯 크리스마스이브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예수님 탄생이란 성탄의 의미를 지켜주되 활기 넘치는 어리고 젊은 에너지들을 외부로 흥청망청 뿌리지 않도록 교회에서 파자마 파티 행사가 계획되었다. 중고등부, 아동부 전도사님들이 새로 부임하신 터라 아이들과 친해질 수도 있는 절호의 기회 불이 붙었다. 아동부의 막내인 아들은 들떠있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엄마랑 떨어져 교회에서 자겠다고 신이 났다. 중고등부 교사인 남편 역시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나는 두 남자와 함께 이브의 반격에 따라나선다. 요즘 교회 문화에서도 많이 사라진 올나이트, 새벽송들의 풍경이 오래간만에 펼쳐질 기대감에 찬다. 성신여대 앞에서 뻑적지근한 젊음의 분위기를 들이켜고 왔다. 샤방샤방 예쁜 대학생들과 젊은 거리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이들이 방탈출 게임을 하는 동안 남편과 함께 돈암 시장을 돌아다니며 아이들 저녁 식사거리 장을 보고 준비한다.


설거지 등 뒷정리를 하고 저녁 8시가 되어서야 혼자 교회를 나서 집으로 향했다. 1시간이 넘는 먼 귀갓 길에서 또르르 굴러들어 오는 알쏭달쏭 이브의 반격은 멍자국이 아닌 추억 자국으로 가슴에 찍힌다. 아들은 아동부실에서, 남편은 중고등부실에서, 나는 우리 집에서 온 가족을 뿔뿔이 흩어 놓았지만 꽁꽁 더 단단하게 묶어 놓은 시간들이다. 소복이 쌓인 눈을 밟으며 집으로 가는 길목에서 폭신한 크리스마스이브는 뻔한 단조로움에 한방의 일격을 날려준 현란한 폭죽으로 터졌다.


크리스마스 당일, 교회 앞에서 눈과 합일이 된 아들과 아동부 아이들의 눈사람 사진이 배달되었다. 이브가 제대로 선물을 투척하는구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선물까지 선사하다니. 다시 온 가족이 합체가 될 기쁨으로 지하철에서 자판을 두드린다. 외로움이 아닌 끈끈함으로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이브의 반격은 문장 하나를 남겨준다.


흩어짐이 곧 묶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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