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에 실패하지 말자

실패를 준비하지 않도록

by 위혜정
천국의 열매는 구한다고 해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그대가 준비되었을 때 그것이 그대를 찾을 것이다.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중, 류시화 -



육아 휴직으로 한 해를 오롯이 엄마로 살았다.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는 것이 소박한 꿈이었기에 때마다 멈춤이 필요했다. 잠시 일을 접고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들을 총동원하여 육아의 공백을 최소화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감사하게도 때마다 길이 열리고 아이는 시절 따라 허락된 엄마와의 동행길을 열심히 걸어 주었다. 여전히 엄마의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지만 점차 혼자만의 발걸음을 찍을 수 있는 시공으로 들어서고 있다. 아이의 때와 엄마의 때가 겹쳐진 지난 시절, 함께라는 이름으로 생의 한 챕터를 잘 넘겨준 2인 1각 뜀박질에 아들에게도, 나에게도 잘했다 격한 토닥임을 건네주고 싶다.



이제 엄마가 아닌 직장인으로 잠시 멈춰선 워킹맘의 문을 열기 위 복직원 제출하러 학교로 향했다. 내 아이를 잠시 내려 두고 타자의 자녀들을 태우기 위해 트랙을 옮기는 ,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담임이 되면 더욱 그렇다. 묵직한 책임감으로 업무 분장원을 받아 들었다. 교무 부장님께서 빈칸 없이 빼곡히 채워 넣으라고 하신다. 여느 때 같았으면 원하는 업무, 원하는 학년, 담임/비담임, 왜 이 업무를 맡아야 하는 지의 사유(아니 그보다 왜 비담임을 해야하는지의 구구절절한 이유)등을 빈칸없이 써넣었을 텐데 이번엔 좀 달랐다. 특별히 선호하는 업무도, 선호하는 학년도 없다. 뚜렷한 그림이 없기에 업무 분장원을 제출하지 않 교감 선생님을 뵈었다.


"담임을 해도 상관없고, 어느 학년을 배정 받아도 괜찮습니다."


내가 봐도 별 생각이 없는 말이다. 호불호도 없고 자기 주장도 없다. 왜 그랬을까. 그냥 마음이 그랬다. 어떤 아이들과 만나든 1년 간 내 아이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주어진 대로 정성을 들이고 싶은 다짐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오는 누구든 그냥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근자감은 절대 아니다. 한동안의 공백으로 다시 뛰어드는 일터는 언제나 치열했고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다만, 어느 정도의 휴지기가 가져다 준 긍정 효과 아닐까 싶다. 자고로 사람은 쉼표를 찍어 가며 일해야 다. 이야기를 듣던 교감 선생님께서 대뜸 환한 미소로 대답하신다.


"너무 고마워요."


담임을 하겠다는 말에 감사 인사를 받다니 살짝 당혹스럽다. 힘들어서 담임을 기피하는 학교 분위기에서 담임 업무는 늘 희망자가 필요 숫자를 채우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담임을, 그것도 아무 학년이나 꽂아 넣을 수 있는 조커 자청했다. 출장이라 빨리 나가셔야 한다고 하시더니 흥이 나셨는지 이것저것 묻고 말씀을 덧붙이신다. 과분한 고마움의 마음이 전해진다.


교사의 꽃은 담임이다. 교사의 수렁도 담임이다. 꽃길을 걷는 일은 없을테니 수렁에나 빠지지 말자는 모종의 음모(?)론이 팽배해 있다. 아이와 학부모 응대에 각종 민원까지 덤으로 더해지는 담임의 업무는 사람과 엮이는 에너지 탈진으로 인해 스트레스 수치가 높다. 비담임의 업무에 비해 선호도가 밀릴 수 밖에 없다. 잘해야 본전이고 기본은 욕받이인 지역도 있다보니 더하다. 왜 이렇게 힘들어 졌을까. 짓누르는 짐의 무게가 크다보니 짊어지는 방식의 문제라고 탓하기 힘들 때도 있다. 납작하게 눌려 버려 제대로 형태 잡기 조차 버거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눈씻고 찾던 보물은 준비되었을 때 나에게로 찾아온다 한다. 한 차례의 폭풍을 겪든, 여유로움을 오가며 캐낸 지혜든 간에 주변 상황이 아니라 나의 준비도가 초점이다. 준비된 사람들이 우연히 마주칠 발견의 기쁨, 보물 자체보다 발견이라는 빛이 눈에 띄길 기대해 본다. 아무래도 풀어두었던 지력과 심력을 조이며 준비하는 새해를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실패를 준비하지 않기 위해서.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벤자민 랭클린-





매거진의 이전글크리스마스이브의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