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봐야 움직이는 미련의 법칙

잔소리 보다 직빵

by 위혜정

하교 후, 콜록대는 아들을 끌고 병원부터 갈 작정이었다. 엄마의 계획 아이는 요리조리 내빼며 그 작정을 뭉갠다. 뭐, 새롭지 않다. 하루 이틀 겪는 일도 아니기에.


"엄마, 공기가 차가워서 기침하는 거예요. 병원 안 가도 돼요. 저 괜찮아요."


어디서 주워들은 의학 상식 부스러기를 여기저기 잘도 갖다 붙인다. 공기가 따뜻해진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는 기침, 터져 나오지 못하도록 입을 꾹 다물어 삼키 아들은 엄마 눈치 보기에 바쁘다. 큰 병이라고 진단받을까 두려운 모양인지 코를 안 찌르겠다고 약속을 해도 손사래를 친다. 포비아에 가까울 정도로 병원행이라면 기를 쓰고 빠져나갈 궁리 하는 녀석에게 몇 번의 잔소리가 통할리 만무하다.

"그럼 내일도 기침하면 병원 가는 거야."

"네."


저녁이 되어도 기침 소리가 잦아들지 않는다. 배도라지 , 들깨가루와 꿀을 섞은 우유 등 각종 민간요법 음료들이 차례로 대령된다. 특효약이었으면 좋으련만 큰 진전이 없어 결국 남편까지 선물로 받은 베트남산 타이거 밤을 들고 나선다. 두통과 코감기에 직빵이라던데 애꿎은 기침 환자의 관자놀이를 덮치다니. 그건 좀 아 것 같은데 졸지에 나까지 기습적인 마루타가 되었다. 순식간에 피부가 화하게 닳아 오르는 느낌이 올라온다. 놀랜 아들은 살이 타들어가 죽을 거 같다며 닦아 달라고 아우성이다. 웬 엄살이 이리 심한지. 기침으로 잠자리까지 설치는 걸 보니 그냥 울고 불고 해도 끌고 병원에 갔어야 했나 후회막급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안부를 물었다.


"잘 잤어? 밤에 깨는 거 같아서 엄마 마음이 안 좋더라."

"제가요? 타이거 밤 때문에 잘 잤어요!"


죽겠다고 닦아 달라 호들갑 떨던 밤을 깡그리 잊었는지, 병원 가자 그럴까 봐 그런 건지 실드부터 치기 시작한다. 하교 후 병원에 데리고 갈 작정을 굳고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녀석은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입맛을 다 잃고는 차 뒤쪽에 축 처져 있다. 정문을 거의 통과했는데 갑자기 힘 소리가 들린다.


"엄마... 저 지금 병원에 갈래요..."

"많이 힘들어?"

"네."


엄마 똥개 훈련시키는 데 일가견 있는 녀석이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울상이 되어있다.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해서 차를 돌,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북적이는 병원인지라 일지감치 도착했지만 오픈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병원까지 오픈런이라니.

비염 섞인 단순 감기다. 약을 챙겨 먹고 학교 갈 채비를 하고 차에 다시 탔다. 순식간에 아이가 생기 있는 모습으로 돌변한다.


"휴우, 큰 병 아니라 너무 다행이에요."


뭐야, 죽을병 걸린 줄 알고 젖은 종이처럼 바닥에 납작 어 있었던 거니, 너? 심리적 압박감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병원은 가기 싫은데 힘들어 죽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진료받을 결정을 했지만 불안 죽겠고. 다행히 별거 없는 경증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에 플라시보 효과까지, 업다운의 사이클 속에 울고 웃었다. 룰루랄라 신나게 학교로 걸어 들어가는 뒷모습에, 몸 사리고 아끼는 것만큼 때 병원만 찾아 가 제발! 하는 마음을 쏘아 주었다. 병 키우다 큰코다친다는 잔소리 보다 백배 천배 직빵 효과인 경험 하나를 얻었다. 다시 한번 아들과 중창을 했다.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잔소리해서 변하지 않는다. 경험을 직접 하니 스스로 움직인다. 힘들어 봐야 제길 찾아간다. 자녀 스스로 겪어봐야 꿈쩍하는 미련의 법칙, 엄마가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핵심이자 힘 빼는 육아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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