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들을 넘는 여자들
제가 겪은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 쓴 글이 작년부터 책으로 나오고 있어요. 이번 달에는 #허들을_넘는_여자들 이라는 책이 출판됐습니다!
한창 책을 홍보해야 하는 시기인데 저한테 고민이 생겼어요.
여러분, 여러분이 쓴 글이 책으로 출판되어 나왔다면 어떤 기분이시겠어요?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알리고 싶지 않으시겠어요? 심지어 출판사에서 책을 너무 잘 만들어줬을 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상상이 되시나요? 이미 출판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런 기분 이미 아시겠네요? 이런 들뜬 느낌.
앗 참고로 저는 이런 느낌 처음입니다! 작년에 출판된 책 2권은 비매품이라 책이 아무리 잘 나왔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는 없었거든요.
이번만큼은 제가 참여한 책이 너무 알차고 예쁘게 나왔다고 널리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나한테 성폭력 피해 때문에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는데 다 지나갔고, 이제는 그 얘기가 책으로 나왔다고 엄청나게 자랑하고 싶었거든요. 책이 예스24에도 알라딘에도 대형서점에도 나왔으니 구입해서 읽어보라고, 카카오톡 선물하기도 가능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제 주변 여성들 대부분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겪은 사람들한테 이 책을 직접 각자 번 돈으로 구입해서 읽어보라는 말이 입 밖으로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래 저래 고민을 하다가 브런치에 지혜와 도움을 구해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제 주변 성폭력 피해자에게 제가 공저로 참여한 이 책, #허들을넘는여자들 을 사주고 싶으신 분이 계실까요?
이 책이 워~~~낙 좋아요. 제 글뿐만 아니라(?) 성폭력 피해 당사자들의 에세이도 너~~무 좋고요. 뒷부분에 있는 피해자/가해자 매뉴얼도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제가 제 주변 성폭력 피해자 여러분께 이 책을 너~~~무 선물하고 싶거든요. 힘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 얘기가 담겨 있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반전. 작가도 책 선물을 하려면 구입을 해서 선물해야 하더라고요.
저희 책이 온라인 서점 기준으로 13,500원인데요. 제 주변 가까운 곳에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갖고 있는 분이 스무 명 정도 있어요. 그럼 총 27만 원이 필요하더라고요.
성폭력피해 상담소라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최저임금으로 책정되어 있는 제 월급으로는 아무리 짜 봐도 27만 원 전부 다 감당이 불가능하더라고요. 명단을 좀 추려보려 해도 누구 한 명 제외하기가 쉽지가 않더라고요.
책 출판 계약금으로 책을 사서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계약금은 이미 아름다운 꽃다발이 되어 이 책의 다른 작가님들께 전달되었답니다.
아니, 그렇잖아요? 성폭력 피해 겪는 것도 각자의 인생에서 분명 큰 일이었을 텐데 그걸로 평소에 글을 써 오셨다는 게 얼마나 대단합니까? 출판사가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해주니 또 힘들었던 기억을 꺼내어 글을 썼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본인 얘기를 온라인 공간에 공개하는 것도 대단한데 다신 되돌릴 수 없는 물성을 가진 책이라는 존재로 꽝꽝 수천 권을 찍어 내기로 결심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심지어 출판된 책의 작가가 되는 일이기도 하니 아름다운 꽃을 한 아름 가득 커다란 다발로 받으며 축하를 받아야 마땅한 일이잖아요? 암요, 암요. 그래서 제가 받은 계약금으로 작가님들께 꽃을 한 송이씩 사드렸어요. 다발로 사드릴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어요. 혹시 이렇게 요청드리면 후원해주실 분이 있으실까요? 이 글, 좀 황당하시죠? 저도 제가 이런 글을 쓰게 될 줄 몰랐어요. 하지만 너무 고민되어서, 모르는 분들께지만 지혜와 도움을 구합니다. 아니면 혹시 제가 도움을 받아볼 수 있는 다른 경로가 있을까요?
덧. 이 글을 올린 지 한 시간 만에 10권이 넘는 허넘여 책값을 후원받았어요. 안 쓰던 계좌 하나를 비워서 허넘여 후원을 받기로 했습니다. 혹시 관심 있는 분 계실까 싶어서 댓글에 계좌번호를 달아 놓도록 하겠습니다. 투명하게 오직 허넘여를 사서 피해자에게 선물하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중간중간 내역 공개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