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인생도 응원할 거예요?

크라우드 펀딩 도전기 (1)

by 보라체

크라우드 펀딩 도전기라는 소제목에 '(1)'을 달아본다. 텀블벅 도전기를 열심히 써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뿐, 계획은 없다. 펀딩 도전은 세 번째이다. 세 번 모두 텀블벅이다. 와디즈는 잘 되는 프로젝트들이 너무 잘되기 때문에 나처럼 소소한 프로젝트들은 성공을 해도 충분히 기쁘지 않을까 봐 걱정됐다.


우리는 2017년 인권 매거진을 발행했고 실패했다. 사회이슈 포탈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뭐.... 너무 여러 번 실패했다. 늘 실패했다. 실패와 패배의 경험들을 잔뜩 갖고 펀딩을 준비한다.


실패한 이야기에도 응원을 보내줄까?

공대를 나와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조직문화 때문에 병을 얻고 불합리하게 퇴사당한(?) 구구절절하지만 평범한 30대 여성의 이야기. 대학 가면 자유로워진대서 기대했지만 대학생활 4년 중 3년을 학교에서 살았고, 대학원 다녀오면 월급을 좀 올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른 건 그대로이고 정말 월급만 오르더라는 삐그덕 소리 나는 인생 이야기.


직장엘 다니며 세상이 뭔가 틀렸다고 느꼈다. 회사생활은 말도 안 되는 명령과 이유도 없는 문화를 내 몸에 욱여넣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커다란 내 몸을 접고, 다시 접고, 또다시 접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가방에 숨겼다. 내 감각과 생각, 내 의견을 궁금해하는 사람 한 명 없이 상사의 기분, 인맥, 가치만을 제대로 따르기 위해 훈련됐다. 심지어 그 훈련도 잘 이겨내지 못했다.


그렇게 병을 얻고 부모님 집에 돌아가 쉬며 안산의 활동가들을 만났다. 서민들이 퇴직금 갖고 외식 자영업 창업하지 못하도록 국가가 막아야 한다고 외치던 센터장님, 불온한 책방을 운영한다는 조용하고 치열한 사람들, 코인 노래방과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인권변호사,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분들, 세월호 단원고 생존자와 일반인 생존자, 노란 리본을 만드는 사람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평화운동하는 사람들, 통일운동하는 사람들, 여성운동하는 사람들, 정당인, 무정부주의자,...


다른 분야에서 목소리 내던 이들을 한 번에 알게 된 것은 세월호 참사에 공동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시민들이 모여서 대응하면 뭐가 달라질까? 아무것도 모른 채 정성을 의심하던 시절이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처음으로 합동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를 걸었다. 난 그냥 따라 걸었는데 사람들은 이런 걸 시위라고 불렀다.


세월호 참사, 자본주의, 정부

내가 일하던 공공기관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단어였지만 여기서는 다른 단어였다. 관리의 대상, 어쩔 수 없는 것, 불려 가는 곳이라고 부르던 것들은 세월호 추도식에서 절규, 원인, 책임소재라고 불렸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내가 확신한 것들이 그저 배운 것일 뿐이었음을, 바꿀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존재하고 그 대안 이외의 다른 대안을 만드는 일에 내가 참여할 수 있음을 알아갔다.


그때 박근혜가 세월호 참사에 깊게 연관이 있다는 기사가 나왔고 세월호 가족들과 활동가를 중심으로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시민에 의해 '탄핵' 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처음에 '탄핵'은 안되고 대통령 스스로 '하야' 하는 것뿐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그게 빨라 보였다.


가을에 시작된 집회가 겨울에도 이어졌다. 함박눈이 오는 날에도, 진눈깨비가 광화문을 적시는 날에도 집회에 갔다. 처음엔 참석만 했는데 나중엔 다른 사람들과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때려잡아야 하는 것들, 뿌리부터 달라져야 하는 것들을 두더지 잡는 오락기계에 붙여 사람들과 함께 때렸다.


추진력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던 순실길 프로젝트


매주 광장에 가면서 '시민사회'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몰랐지만 '시민단체'라는 곳들이 있었다. 거기엔 거의 무급으로 혹은 최저임금으로 생을 바친 '시민활동가'들이 있었다. 광장의 젖은 바닥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만든 전단지가 쓰레기 뭉치를 이루었다. 정말 많은 지역에 다양한 의제가 다뤄지고 있었다. 어떤 것은 의제지만 어떤 것은 문제였다. 우리 모두의 문제,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직도 진행 중인 문제.


내 친구는 사람들이 그 전단을 다 읽어보지 못하고 광장을 떠나야 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전단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광장에선 경황이 없지만 집이나 자주 가는 편한 장소에서 이 전단을 읽으면 이 의제를, 문제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우리는 그 전단들을 모았다. 전화로 요청하고, 이메일로 요청해서 모아 봉투에 담았다.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우편으로 보냈다. 2월에 100부로 시작해서 매달 200, 300, 500으로 발행을 늘렸다. 6월부터 격월로 바꿔서 4,000부를 보냈고 그렇게 4번을 더 4천 부를 보냈다. 구독자는 계속 늘었다. 나중엔 상시 비치하는 곳까지 1,800여 곳이 되었더랬지. 2,200명까지... 쭉 욱 쭈욱.


우리 매거진은 만드는 데 손이 많이 필요했다. 전국의 구독자들이 안산에 모여 함께 매거진을 만들었다. 안산까지 달려와준 이들은 우리를 믿는 활동가들이었다. 나와 내 친구, 나와 내 친구가 하는 일을 응원하는 사람들. 각자 신념과 사연을 갖고 몸으로 손으로 혼으로 뛰는 사람들.


http://cafe.daum.net/isuisu/Tm40/10


그리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도 성폭력이 있었다.

내가 이 글을 끝까지 마칠 수 있을까.



제가 텀블벅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올렸어요. 한번 읽어 보세요 ^^ https://tumblbug.com/around_bo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