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새치 낚은 헤밍웨이의 노인이 운전을 한다

by 유연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표류 도중 큰 소리로 독백한다. "아이가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 도와주고, 이걸 같이 볼 수 있을 텐데" 거대한 청새치를 낚은 노인의 절절한 독백은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인 문제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관건은 '도움'이 아니라 '함께'와 '같이'에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늙어가는 노인의 모습과도 겹친다. 노인 문제의 방향 전환을 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흐름과도 통한다. 단순히 노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권리에 기반한 적극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유엔은 노인 인권의 향후 과제로 노인들 스스로 공공정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꼽는다. 단순히 복지 혜택을 누리거나, 혹은 경우에 따라 제한당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노인을 규정하지 않는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고령자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부산시를 시작으로 운전면허를 ‘자진 반납’한 노인에게 10만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사업을 각 시는 계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지능력과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지면서 사고 위험이 커진다는 게 근거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를 줄였고 치매 검사와 교통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일본이나 영국, 뉴질랜드와 같은 다른 고령화 국가들도 비슷한 형싱적 절차를 밟고 있다.


위 국가들의 방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노인을 대상화한다는 비판에 직면한다. 노인이라는 집단에 앞서, 존재하는 사람의 개별성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10만원이라는 보상으로 현혹하는 한, ‘자진 반납’이라는 말 자체도 모순이다. 다양한 사람의 스펙트럼을 무시한 채 군림하는 정책의 건전성은 극히 왜소하다. 정책의 실효성이 낮다고 하더라도, 결국 주체가 되지 못한 노인의 이동권을 침해하고 다양한 형태의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고령자 운전 제한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인, 혹은 공리적인 접근방식 역시 타당하지 못하다. 노인 문제가 곧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대사 교수 팻 테인의 말마따나 "늙는다는 것이 역사상 처음으로 정상적인 것이 된" 세상에 살고 있다. 40년 가까이 노인 연령의 기준이었던 만 65세라는 틀이 허물어지고 있다. 연령의 경계가 흐릿해진 지금, 교수가 전하는 통찰은 노인 문제가 곧 인간의 문제라는 데 있다. 노인 역시 전체 인간의 일부이며, 노인의 고통이 젊은이의 고통으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시기를 언젠가 반드시 맞는다. 인간의 숙명에 대해 겸허히 인정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를 소중히 받드는 노력이 노인 인권의 지향점이어야 한다. 노인과 장애인 등의 약자들이 운전을 해도 위험하지 않은 환경을 만드는 게 먼저다. 노인의 문제를 무능한 일부 사람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을 넘어서,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는 공감 능력이 필요한 때다.


청새치를 낚은 헤밍웨이의 노인이 출항을 그만둘 시기는 노인이 직접 정해야 한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결코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84일 동안 고기를 못 잡았으나 85가 행운의 숫자라고 믿으며 다시금 출항했던 그였다. 작품 속 동네 사람들은 걱정을 감출 순 없었지만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의 귀환을 확인하고 안도의 울음을 터뜨렸다. 청새치 낚은 헤밍웨이의 노인이 운전을 한다면, 우리 사회는 그의 존재 증명을 존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