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인턴, 주도권만 준다면 충분한 성과 보일 수 있어
기업, 일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 시작해야
인턴의 처지는 서글프다. 취업 시장에서 약자인 동시에 당사자로서도, 고용의 대상으로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취업준비생은 경력을 쌓기 위해 무급도 자청하지만 인턴이 실무 경력으로 이어지거나 노동력으로 존중받는 경우는 드물다. 인턴은 대학생과 직장인의 경계에 걸친 이방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효용이 적다. 정부의 방침이나 채용 상의 편리로 인해 필요 없는 인원을 떠맡게 되더라도 현업부서에서는 인턴 관리가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관리에 필요한 시간과 인력의 여유가 없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반 규정이 탄탄한 대기업 등을 제외하면 인턴은 소모품으로 물화(物化)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부조리한 현실에도 기업은 변화를 자처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기성세대의 조직문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기존의 신세대들이 기성세대에 반발하면서도 결국 조직 문화에 동화되었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불합리를 보고만 있지 않다. 열정 페이를 거부하고 평생 직장의 개념이 없으며, 퇴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들과 조직의 갈등은 인재 유지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기존 기업의 조직문화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까닭이다.
같은 선상에서 ‘좋은 일자리’를 향한 고민이 사회 곳곳에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기자는 진저티프로젝트에게 '하루인턴'을 제안했다. 진저티프로젝트는 개인과 조직의 건강한 변화를 위한 실험실을 표방하는 조직이다. 인턴이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이 뒷밤침해보자고 화두를 던졌다.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밀레니얼에게 유연한 환경과 주도권을 준다면 어떤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가 출발점이었다. 진저티프로젝트는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매거진 멜리니얼’을 펴내며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가능성을 조명했었는데, 그들의 관점에 공감한 기자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기로 했다. 진저티프로젝트에서 기자가 직접, 단 하루 동안 인턴으로 근무하였다.
인턴에게 주도권이 주어진다면
지난 4월 29일 10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진저티프로젝트 사무실. 여느 때처럼 회의실에 모여앉은 직원들이 한 번 웃었다. ‘하루인턴‘이 하루만 일하러 왔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조직문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진저티프로젝트에게도 이번 실험은 낯설었다. “’하루인턴‘이라는 경험이 진저티에게 무얼 남겨야 할까요?”, ”무얼 남기고 싶나요?”, “왜 진저티에 왔나요?” 등의 질문이 그치지 않는다. “오늘 입사했는데 그럼 내일 퇴사하시냐”는 농담도 오고간다. “하루 가지고 뭘 해요?” 기자의 '하루인턴‘ 제안을 들은 진저티프로젝트의 첫 마디였다.
기자는 입사하기 하루 전, 진저티프로젝트를 방문했다. 맡게 된 일을 예습하기 위해서였다. 나름의 계획도 있었다. 다른 구성원 모두 자신이 정한 직함으로 일을 하고 있던 만큼 기자는 ‘Proposer’를 자청했다. 다음날이면 헤어질 사이니 쓴 제안도 마음껏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의견과 제안은 이미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오가고 있으며, 그 자유에 대한 주인의식과 책임은 본인이 가져야 한다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진저티프로젝트의 문화가 정말 수평적인지 의심하고 있던 기자에게 하루 동안 경험한 일의 일기를 브이로그로 남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페이스북 공식계정에 업로드하면서 홍보로 활용하기로 하였다. 구성부터 촬영, 편집까지 전권을 위임받았다. 결재는 필요 없었다. 업무용 메신저 ‘슬랙’에서 소감에 가까운 구성원들의 피드백이 오갔다. ‘하루인턴 내일 출격합니다’라는 제목의 예고편을 올리고 출근 날을 기다렸다.
첫 출근 장소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였다. ‘임팩트 커리어 W’에 참여한 3기 펠로우의 소감 발표가 계획되어 있었다. 임팩트 커리어 W는 ‘경력보유여성’을 위한 교육과 채용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출산과 육아, 가족 돌봄 등으로 사회, 경제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이전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기자는 현장의 촬영을 맡았을 뿐이었는데 진저티 동료들은 계속해서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어째서 중요한지를 물었다. 자연스레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서 들어보게 됐고 현장에서 브이로그의 대본은 공감을 담기 위해 대폭 수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건조하게 여겼었던 소감이 절실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늘어난 권한만큼 책임도 따라왔기에 스스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진저티프로젝트는 ‘고등인턴‘이라는 또 다른 실험을 지속하고 있었다. 조직이 청소년을 구성원으로 믿을수록, 청소년이 자신에게 집중할수록 이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이 펼쳐짐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고등인턴이 자신의 일을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하는 ’회고‘ 시간에 기자도 함께 참여했다. 전환희(17)는 진저티프로젝트에서 영상 작업과 카드뉴스 제작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성장을 이룬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등인턴 김승훈(19)은 “보통 직장에서는 나를 숨겨야한다는 느낌이 들 것 같은데 여기서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학생이 아닌 인턴 동료로서 신뢰가 갔기 때문이었다.
‘하루인턴’도 퇴근 전, ‘회고’ 시간을 가졌다. 진저티프로젝트는 회고를 중시한다. 일 년에 하루는 모든 스케줄을 비우고 성과나 숫자가 아닌 성장과 의미를 기준으로 활동을 평가한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방향을 돌아보는 게 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기자는 처음의 무책임한 말을 반성했다. 밖에서 본 것만으로 충분히 안다고 여겼던 것들이 하나도 모르는 거였다는 걸 깨닫게 됐다.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갈수록 대본을 거듭 수정하게 됐고 본인의 성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턴이었지만 ‘내 일’을 주도하며 책임이 생기는 순간을 경험했다.
여전히 닫힌 기업 문화, 고민을 시작할 때
‘하루인턴’ 외에도 조직의 변화는 확산 중이다. 기업도 새로운 세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4월 16일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 인사 담당자 4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세대갈등, 우리는 왜 다를까’란 주제의 강의를 열었다. 신한은행은 역할극을 통해 서로의 처지를 바꿔보는 행사를 진행했고 전문가를 초청하기도 한다. 스브스뉴스는 2015년부터 인턴 기자가 주축이 되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팀이다. SBS뉴스의 외연 확장이라는 긍정적인 평을 받고 있다.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세대 차이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있지만 시스템과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대학생 10명 중 7명이 올해 하반기 인턴에 지원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기회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여긴다는 것과 별개로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은 연이어 상승 중이다. 기업이 이들을 포용하지 못할 때 도태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고속 경제성장을 경험한 기성세대와 날 때부터 저성장 구조였던 밀레니얼 세대가 가진 현실 인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기성세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저티프로젝트는 이들에게 독립된 프로젝트를 맡기고 결정을 받아들여 보라고 말한다. 결론을 열어두고 업무 결정권을 나누면 성과 또한 끌어낼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진저티프로젝트는 밀레니얼 세대 구성원에게 온라인 서베이의 홍보 진행을 맡긴 바 있다. 이들은 새벽 3시 예약 콘텐츠에 ‘자니? 안 자면 서베이 좀 해줄래?라는 멘트를 쓰는 등 세대에 맞는 접근을 했다. 곧바로 서베이 참여자는 급증하였다. 새로운 조직문화의 가능성은 안전한 환경 속에서 자유와 권한이 주어질 때 밀레니얼 세대의 역량이 발휘된다는 데에 있다.
성과를 위해서는 조직이 아니라 가치가 동기가 되어야
‘하루인턴’의 홍보 효과는 크지 않았다. 영상의 조회 수나 구독자도 눈에 띄게 늘지 않았고 유의미한 제안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자에게도, 진저티프로젝트에게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만들어졌다. 밀레니얼에게는 자신이 믿는 가치와 동기가 가장 큰 원동력임을 확인하였다. 조직이 구성원에게 가치를 탐구하게끔 돕는 역할을 할 때 조직의 성과 또한 올라감을 알게 되었다. 조직이 조직 자체를 강조하며 헌신을 요구해서는 더는 안 된다는 뜻이다. 준비된 ‘하루’로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는데 ‘두세 달’의 단기인턴을 소모적으로 활용할 까닭이 없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진저티프로젝트는 ‘하루인턴’의 가능성을 발견하였다고 기자에게 전했다. 충분한 대화와 질문을 통해 하루의 가치를 ‘함께’ 높인 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진저티프로젝트는 조직의 유연성에 대한 지평을 한층 더 넓혔다. 그들은 진저티프로젝트의 조직 문화를 어디에나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주변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지혜(31)팀장은 “‘하루 가지고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데에는 ‘하루’도 충분하구나 싶었다”라고 말했다. 서현선(42) 공동대표도 “새로운 이야기와 좋은 실험을 우리에게 선물해주어서 고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안세연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10기)
이 글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청년, 세상을 담다 vol10(http://futurechosun.com/archives/42955)'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