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 약을 다량으로 복용하고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나름 배운 게 있다고, 웬만큼 많은 양을 먹어서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요.
약을 먹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일을 치르려고 사전 작업(?)으로 한 통을 털어 넣었습니다.
여기부터 저는 축복받은 삶이었습니다.
온갖 감각이 예민한 탓에, 역한 약냄새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구토만 했거든요.
구토를 해도 몸에서 약 냄새가 뿜어져 나왔어요.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있으니 침대와 방 전체에서 약 냄새가 나서 더욱 머리가 깨질 듯 아팠습니다.
구토를 한 덕분에 약은 제 몸에 별로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에게 끔찍한 기억만 심어주고, 저는 다시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X에서 백경님의 글을 보고,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아이들이 눈물을 참아가며 119에 전화를 했고, 제가 털어 넣은 약의 이름을 들은 구급대원님은 '아이고, 그 약..' 하면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셨습니다.
다량 복용 시 간독성이 큰 약물이었거든요.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누워서도 계속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어요.
'저 같은 사람 때문에 마음 졸이게 해서 죄송해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구급대원님은 안쓰러움과 기가 막힘을 함께 담아 대답하셨고요.
"네,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러시면 안 돼요."
하마터면 저도 백경님 사연 속의 여성분처럼 될 수도 있었어요.
위장이 녹아내려서 평생을 주사기를 꽂은 상태로 살 수도 있었어요.
공포에 질려 다시는 요단강 근처에 가지도 않으면서,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언제일지 시계만 보면서 점점 더 지옥으로 파고들어 갈 수도 있었어요.
그렇지 않았던 건, 여느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한 번 더 살아보라는 축복이었습니다.
찬란히 빛나는 삶만 가치 있는 게 아님을 깨닫는 기회였어요.
내가 벌레 같아서 꾹 눌러 죽이려고 했는데, 다시 한번 살아보라는 축복이 딱딱한 껍데기가 되어 지켜주었어요.
사기꾼들은 간접 살인자라고 피를 토하며 말하던 제가, 가장 나쁜 살인인 자신을 없애는 걸 하지 않도록
세상으로 다시 보내주는 손길이었습니다.
지금도 우울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세상으로 다시 보내준 그 감사함에 견뎌낼 수 있습니다.
심장과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았던 통증도 2년 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당시에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던 아픔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건 지나간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다.
나도 세상도 달라진다.
지금 숨 쉬고 있음이 축복이다.
이 축복과 감사함을 얼마나 느끼고 만끽하느냐에 따라 삶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다른 누구도 해줄 수 없어요. 나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