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글쓰기 보물 상자
실행
신고
라이킷
16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위드웬디
Jun 06. 2024
잔인했지만 행복한 여름밤
어제 휴일을 앞둔 여름밤은 참 예뻤습니다.
아침에는 긴팔 겉옷이 필요한 서늘한 공기인 반면,
새벽이 오기 전 밤에는 습기를 살짝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아~ 딱 좋다!"를 연발하게 했습니다.
산책길의 짙은 흙냄새와 나뭇잎 냄새가 어우러지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는 느낌과 함께
한없이 눈물을 닦아내며 걷고 또 걸었던 작년 여름의 기억이 올라옵니다.
진흙 구덩이에 빠져서
올라가려고 할수록 발목이 더 푹푹 빠지고,
손에 잡히는 것마다 더욱 깊게 저를 내리꽂던 그때의 기억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이내
그 지옥에서도 살아나온 제가 대견해집니다.
본인도 진흙더미를 잔뜩 이고서도
제 손을 잡아주겠다는 제 사람들이 더욱 고마워집니다.
아주 오래전 짝사랑하던 오빠를 포함하여 친구들에게 저녁을 대접하던 날도 여름밤이었습니다.
"요즘에는 바비인형 닮은 아이를 만나거든."
자랑스럽게 말하는 말에 좋겠다고, 능력 있다고 치하를 하고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던 날이 불쑥 기억에서 올라옵니다.
김형중님의 <좋은 사람> 노래를 들으며,
누가 또 내 이야기 막 가져다가 가사로 썼다면서 쓰게 웃었던 때의 풍경이 이렇게 또렷한데
이제 몇 년 후면 제 아들이 그때의 제 나이가 됩니다.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고 있는 저희 고딩이가 참 기특합니다.
변리사 2차 시험을 준비하면서
먹은 것보다 더 많이 토하고, 숨을 쉬지 못해서 10분에 한 번씩 독서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서 주저앉았던 그 계단이 선명합니다.
체력을 기르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부서져라 줄을 움켜잡고 줄넘기를 했던
그 신림동 골목길의 기억도 여름밤입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다 보면 된다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의 말과 안쓰러운 눈빛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한 발 한 발 뚜벅뚜벅 그 길을 걸어 삶으로 '이루어 냄'을 보여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록 그 자리에 주저앉아 친구들과 같은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20년이 지나 지금의 저에게도 같은 말을 합니다.
"조급해할 필요 하나도 없어. 하다 보면 되는 거, 이제 정말 잘 알지?"
keyword
여름
공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