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 딱 어울리는 전시회
우리는 자라면서 한번씩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접하게 된다. 초/중/고 필독 도서 목록에 꾸준히 올라 있었으며,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도 한 몫 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험과 기적은 코흘리개들에게는 마냥 신나는 이야기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만화 속 장면이 개그로 소비될 만큼 모두에게 익숙하다. 알겠습니다, 디오니소스님. 좌가자자장....
누구에게나 친숙한 그리스의 이야기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6월 5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리스 보물전 -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퇴근 후 문화생활,
<그리스 보물전>
<그리스 보물전>은 제목에서부터 짐작 가능하듯, 그리스 전국의 박물관에서 모아온 다양한 보물을 통해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전시회다. 제법 늦은 시간인 오후 8시까지 볼 수 있어, 직장인들 퇴근 후 문화생활하기에 딱 알맞다. 단, 입장은 오후 7시까지 가능하니 참고하시길.
퇴근 후 부지런하게 예술의 전당으로 왔다. 무척 부지런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본관 건물로 들어서니 저렇게 프로젝터로 바닥에 빛을 쏴 길 안내를 해 주고 있었다.
매표소에 도착했다. 티켓은 현장구매보다는 여기어때에서 쿠폰을 적용해 구매하면 저렴하다.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한쪽 귀에 요원처럼 착용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입장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그 외에는 아는 게 거의 전무했으므로 이 오디오 가이드에 많이 의지했다. 단돈 3,000원으로 유식해지는 기분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스 보물전은 총 아홉 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기원전 6,000년경의 선사시대 그리스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대가 끝나는 기원전 323년까지 찬란한 시대의 가치있는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시간 순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리스 문화가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가 한 눈에 보인다.
최초의 전시관 <그리스 문명의 서막, 에게해>에서는 그리스 문명 초기의 작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초기 작품들은 확실히 단순하고 간명하게 작업되었으나, 몇 발자국 더 걷자 섬세한 작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황금에 섬세한 손길로 그림을 새겨둔 미케네인들 전시를 지나,
이야기꾼들의 대선배, 호메로스 전시관에 가면 온갖 그리스 신화 속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다. 아테네, 포세이돈,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디오니소스(?), 이야기가 그대로 펼쳐지는 그리스의 항아리 '암포라'까지.
특히나 신화 속 인물들이 생동감 넘치는 조각상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모습들이라 반가울 정도.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것과는 살짝 다르다.
다음으로 보게 될 것은 요즘 장신구보다 더 섬세한 옛 귀족들의 생활소품들이다. 귀걸이, 목걸이, 머리장식 할 것 없이 모두 엄청난 디테일을 자랑하고 있다. 귀부인의 무덤에 함께 묻혀 있던 부장품으로, 무려 한 무덤에서 50개 이상의 물건들이 발굴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청년들을 묘사한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 <쿠로스와 코레>. 노란 배경에 엄숙하게 세워져 있어 더 위엄을 더한다.
아테네의 문화에 집중한 <아테네인들> 관에서는 종교, 예술, 연극이 꽃을 피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여류 시인 사포가 시를 낭독하는 장면을 묘사한 히드리아였다. 섬세한 선으로 그려낸 모습도 아름답고, 여류 시인의 활동을 남긴 것 또한 멋졌기 때문에.
번쩍거리는 금화관과 다양한 유물들이 묻혀 있던 <필리포스 2세> 전시관도 인상깊었다. 대단한 작품을 보면 살짝 압도되어버리는데, 이 금화관을 마주할 때의 기분이 그랬다. 종이처럼 얇게 펼쳐 만든것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마지막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새로운 시대의 서막> 전시관에 가면 <그리스 보물전> 포스터에 그려져있는 작품을 드디어 만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모습을 신화 속 판과 접목해서 만들어낸 조각으로, 머리 위를 자세히 보면 뿔이 달려 있다. 눈길 닿는 모든 곳이 품격있어보이는 보물이었다.
별다른 기구도 기술의 발전도 덜한 시대에 이토록 섬세한 보물들을 만들어냈다는 걸 믿기 힘들어 꼼꼼히 보느라고 천천히 걸었다. 거의 한 시간 반 동안 전시회를 둘러보고도 아쉬움이 남았다. 빨리 보는 분이라면 한 시간 정도, 하나하나 보려면 두 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가면 될 듯 하다.
그리스는 비록 완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엄청난 세기를 뛰어넘어 현재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뜻을 함께하는 '민주주의'의 개념을 만들어낸 나라다. 아주 멀고 낯선 그리스의 문화는 신화라는 강력한 몸을 빌어 우리에게 다가왔고, 쉽게 스며들었다. 그리스의 온갖 박물관에서 모은 보물들을 통해 문명을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경험은 흔치 않다.
무엇보다 무척 재미있는 전시였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식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퇴근하고 가니 사람도 붐비지 않았다. 6시 땡 퇴근하고 달려갈 만한 가치가 충분히다.
전시 다 둘러보고 나면 예술의 전당 건너편 앵콜칼국수에서 칼국수 한 그릇 추천. 괜히 미슐랭 맛집이 아니다.
그리스 보물전
-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
전시 기간 : 2019.06.05~2019.09.15
전시 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관람 시간 : 11:00~22:00
입장 마감 : 19:00
전시 문의 : 1688-4683
휴관일 :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티켓 정가는 16000원이지만,
기본가 14,000원, 쿠폰 받으면 더 저렴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