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 가족 유럽 한 달 여행. 과연 얼마나 들까? 아직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니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오성급 호텔에서 룸 마사지받고, 미슐렝 레스토랑에서 고기 써는 럭셔리 여행을 다니면 집 팔아도 돈이 부족할 것이고, 가끔 노숙도 하고 굶어 가면서 여행을 하면, 다이어트도 되고 돈도 아낄 수 있지만, 그건 여행이 아니라 극기훈련에 가까울 것이다. 사춘기 중학생 큰아들과 까칠한 초등학생 둘째가 포함된 4인 가족의 가장으로서 럭셔리와 극기훈련의 중간 정도로 여행의 수준을 정했다. 그 수준에서 여행 예산을 짜 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모든 금액을 정확하게 적지 않았다.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 참조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1.항공권
항공권은 직항으로 골랐다. 저렴한 중국 비행기를 타고 스탑오버로 상하이 야경을 한 번 볼까 했지만, 딴짓 안 하고 바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를 골랐다. 스톱 오버로 하룻밤을 다른 나라에서 보내면 의외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입출국 수속을 받아야 하고, 호텔도 체크인/아웃을 새로 해야 한다. 오버레이도 피하는 걸로 했다. 환승 비행기는 우리에게 안 맞는다. 둘째가 비행기 타는 일을 힘들어한다. 3-4시간만 비행기를 타도, 온몸을 비비 꼬고 화장실에 수시로 들락거린다. 게임기 하나 쥐어주면 조금 낫긴 한데 그것도 한두 시간이다. 12시간을 타야 하는 비행이라면, 직항만이 우리 아이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중간에 환승 한 두 번 하는 게, 아이가 덜 지겨워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비행기 표는 이미 끊어 놓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항공권 가격은 시기를 잘 맞추면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얼리버드로 항공권을 구하거나, 특가 행사를 노려도 가격은 내려간다. 완전 비수기를 고른다면 훨씬 저렴할 수 있고, 한번 이상 환승하는 비행기라면 훨씬 더 저렴해질 수 있다.
항공권가격 - 런던인 - 로마아웃, 이코노믹, 대한항공 : 300만원 (초등학생 1인 포함)
2.숙소
숙소는 조금 신경을 쓰는 편이다. 숙소를 자주 바꾸는 것은 여행의 질을 떨어뜨린다. 짐 싸고, 풀고, 옮기고, 체크인/아웃 하다가 허무하게 하루가 다 끝난다. 우리 가족은 빨리빨리 움직이고, 후다닥 짐 풀어서 관광 다니는 것과는 먼 사람들이다. 늦게 일어나 커피 먹고, 화장실에 오래 앉아 세상사를 관조하는 여유로운 사람들이라, 숙소옮긴다고 어물쩍거리다 보면시간 다 보내게 된다. 가급적 도시 하나에 숙소 하나로 골랐다.
숙소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전진과 후퇴, 보급과 휴식이 이루어져야 곳이다. 어른들만 가면 전진과 후퇴가 용이한 교통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번에는 아이가 있는 여행이다 보니 보급과 휴식에도 방점을 같이 찍었다. 여기에 더해 안전까지 고민해야 한다. 맛집과 관광지가 가까이 있으면 더 좋지만, 그것까지 고민하면 예산이 오버될 것이다.
룸 컨디션은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편이다. 다만 나는 침구류가 더러우면 잠을 쉽게 자지 못한다. 베드 버그는 당연히 없어야 한다. 처음엔 베드 버그가 무엇인지 몰라 검색해 봤더니 빈대였다. 베드 버그에 물려 여행을 망쳤다는 사람 여럿 봤다. 현대의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은 젊은 시절 빈대에 수 없이 물리면서, 끊임없는 도전정신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굳이 우리 가족이 유럽까지 가서 빈대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필요는 없다. 그런 건 각자 살아가면서 터득하기로 하고, 베드 버그 후기가 있는 숙소는 무조건 제외했다.
큰 아들은 샤워를 열심히 한다. 아침에도 샤워하고 저녁에도 샤워를 한다. 둘째는 화장실 마니아다. 한 번 앉으면 20분씩 걸린다. 변비가 걱정되었지만, 그건 아니란다. 그냥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혼자서 중얼거리면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휴대폰을 가지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변기에 앉아 혼자서 중얼거리며 신나게 논다. 신기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아이디어도 얻고, 생각도 정리하고, 심지어 어느 종교인은 도까지 터득했다고 하니 사생활의 영역으로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화장실에 신경 쓴다. 밖에서 누가 기다린다거나, 문을 두드리는 상황에서 일을 보면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한다. 화장실과 샤워시설에 신경 써서 숙소를 골랐다.
중학생 아들은 호텔에서 성인 취급을 받는다. 내가 보기엔 아이지만, 남들은 그렇게 안 본다. 하긴, 먹을 때 보면 어른보다 더 먹는다. 뷔페 같은 곳에 가면 큰 아들은 네댓 접시를 기본으로 먹고 시작한다. 그래서 뷔페에 같이 가면 돈을 벌어 오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어른 요금으로 받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보통 방 한 개당 성인이 묵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이 2명이라 곤란스럽다. 두 개 이상의 숙소를 구하거나 방 두 개짜리 숙소를 얻으면 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유스호스텔, 민박, 에어비엔비를 중심에 놓고 숙소를 구했다. 호텔이라고 굳이 배제한 것은 아니고, 조건이 맞으면 호텔도 예약했다.
유럽에는 반지하 호텔도 있다. 후기가 좋고, 교통과 치안까지 좋은 데다가, 가격까지 저렴해서 이게 웬 떡이냐 하는 마음에 클릭해 봤더니 반지하 호텔이란다. 깜짝 놀랐다. 그런 방이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유럽의 호텔에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대학 다니며 자취하던 시절 반지하에 살아 본 적이 있어 거부감이 있다. 보통 반지하에는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난다. 관리를 잘하는 곳이라고 하더라도 창문이 없어 답답하다. 큰 아들에게 반 지하 호텔은 어떻냐고 물어봤는데, 기생충 찍으러 가는 거냐며 싫어했다. 맞다. 초등학생까지 끌고 가는 유럽여행에서 반지하는 아닌 듯하다.
가격은 박당 30만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골랐다. 가급적 20만 원 아래에서 맞췄으며, 예산으로 1박당 25만으로 잡았다. 나라마다 달라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위에서 정리한 몇 가지 원칙에 맞춰서 방을 찾았다. 아고다, 호텔스닷컴, 에어비앤비를 중심에 놓고 뒤졌다. 트립어드바이저와 구글로 후기를 찾아봤다.
마음에 드는 방이 나오면 할인 쿠폰 적용할 수 있는 지를 확인했다. 나중에 취소가 가능한 숙소 인지도 방을 고르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일정이 틀어지거나, 계획을 바꾸게 되면, 숙소에 코가 걸려서 꼼작도 못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아고다, 호텔스닷컴, 에어비엔비 모두 취소화 환불에 매우 인색하다. 아니, 한 번 결제해 버리면 절대 돈을 토해 내지 않는 곳들이다. 심지어 호텔에서 취소나 환불을 해 준다고 해도, 아고다나 호텔스닷컴에서 거부하는 일도 있다. 무서운 곳이다. 고장 난 자판기도 아니고, 돈 먹고 토하지를 않는다.
숙소 비용은 숙소 측에서 요구한 통화와 금액을 그대로 적었다. 실제 사용한 금액을 정리하는 글을 쓰게 된다면, 통화는 원화로 통일해서 지불한 당시의 환율을 기준으로 정리할 생각이다.
예산 금액은 25만 원 x 30박 = 700만 원이다.
런던 : 5박 1,390 달러 (호텔, 망설였지만 첫 숙소이니만큼 교통 좋고 편안한 곳으로 골랐다.)
파리 : 6박 1,480,000원 (에어비엔비, 15지구, 평점 높은 슈퍼 호스트)
베른 : 2박 418 달러 (유스호스텔, 4인 가족룸, 베른에서 가장 유명한 유스호스텔이다.)
인터라켄1 : 2박 383 프랑 (유스호스텔, 4인 가족룸, 베른과 같은 유스호스텔 체인)
인터라켄2 : 4박 549 프랑 (유스호스텔, 4인 가족룸, 인터라켄의 대명콘도로 불리는 그곳)
베니스 : 2박 180 유로 (유스호스텔, 4인 가족룸, 평점이 말도 안 되게 좋아서 골랐다)
피렌체 : 3박 348 달러 (유스호스텔, 4인 가족룸)
로마1 : 2박 368,000원 (한인민박, 4인 가족룸, 이곳을 고른 이유는 한식이 잘 나온다는 후기 때문이다)
로마2 : 4박 460달러 (호텔, 로마 호텔은 대체적으로 저렴하다.)
3.교통비
유럽의 교통비는 만만하지 않다. 택시는 언감생심이다. 기차와 버스, 지하철을 이용하더라도 상당히 많은 돈이 든다. 일정에 맞춰서 따져봐야 하겠지만, 외국인이나 관광객을 위해 각 나라에서 제공하는 패키지 교통 패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교통 패스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혜택이 있어 유용하다. 일정이 짧거나, 그런 혜택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굳이 교통 패스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우리 가족의 런던 일정은 짧다. 사실 처음 계획에는 프랑스로 들어가서 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로 나오는 코스였다. 나라마다 10일 정도는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간 김에 짧게라도 영국을 둘러보려고 런던을 일정에 넣었다. 런던에서는 4일 머무를 생각이다. 우리 가족의 움직임을 대충 계산해 보니까 패스를 구입하는 것이 맞아 보였다. 파리에서 7일 있을 예정인데, 공교롭게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머문다. 파리의 교통 패스 나비고는 월요일에 오픈해서 일요일에 마감하기 때문에 우리 일정에 아주 알맞았다.
스위스에는 스위스 패스 만한 것이 없다. 9박을 계획하는 곳이기에 8일짜리 스위스 패스를 구매했다. 하루는 융프라우 vip 패스를 구매할 생각이다. 스위스 패스 가격이 상당하다. 어쩔 수 없다. 스위스 물가에 자비가 없다. 그렇지만 17세 이하 아이들에 대해서는 부모 1인당 1명이 무료다. 당연히 어른 2명이 사면 아이 2명이 공짜다. 아이들에게는 매우 은혜롭다. 그렇기에 자비 없고 은혜로운 스위스 패스는 가족여행에 있어서는 무조건 사는 것이 옳다.
이탈리아에서는 세 번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스위스에서 베니스로 넘어갈 때 한 번, 베니스에서 피렌체로 갈 때 한 번, 피렌체에서 로마로 넘어갈 때 마지막으로 한 번. 기차 비용도 꽤 나온다. 로마 안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이용할 생각이라, 대중교통 패스를 구매할 생각이 없다. 게다가 숙소가 트리미니 역 인근이라 어지간한 곳들은 걸어서 다닐 계획이다.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결정할 계획이다.
교통 예산 : 300만원 (유로스타 1회, tgv 1회, 스위스패스 8일, 이탈리아기차 3회, 기타 시내버스 비용 포함)
음식
살은 괜히 찌지 않는다. 가끔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사람이 있는데, 인간이라면 물만 먹고 살이 찔 수 없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면 그 사람은 병원에 가야 한다. 예수님도 최소한 오병이어는 가지고 사람들을 먹이셨다. 물만으로 살이 찌다니. 분명 사기꾼이거나, 외계인이다. 나와 아내가 많이 먹는 편이다 보니, 물만 먹어도 살찐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생각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여행에서도 충분히 먹어주어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중학교 1학년 큰아들도 우리 부부만큼 먹는다. 아니, 나보다 더 잘 먹는다. 적고 보니 아들에게 진 것 같아 괜히 분하다. 둘째는 입맛이 까다로워서 많이 먹지는 않지만, 이게 또 골치 아프다. 어설픈 음식에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특히 맛없는 음식에는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린다. 집안의 식량 사정이 이렇게 어렵다 보니, 음식에 예산 분배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 집에서 여행은 음식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침은 가급적 소식이고, 점심은 간단하게 먹고, 저녁은 적당히 배부르게 먹을 계획이다. 저녁을 많이 먹는 식사법이 비만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하루를 정리하며 먹는 식사는 다른 일상과 바꾸기 힘든 행복감을 준다. 1주일에 한 번은 특식을 먹을 계획이다. 돈이 부족해 특식을 줄여야 한다면, 차라리 일정을 줄일 각오다. 우리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먹는 것이다. 소홀이 할 생각이 없다.
가급적 현지식 위주로 먹을 계획이다. 막내 빼고는 뭐든 잘 먹기 때문에 입맛 때문에 고민할 것 같지는 않다. 막내는 빵과 스파게티 정도는 무난히 먹는데, 그게 현지식이라 문제없을 것 같다. 숙소의 대부분을 유스호스텔과 에어비엔비로 잡아 놓았기 때문에, 저녁은 직접 해 먹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조식은 숙소에서 제공되는 식사를 하거나, 간단하게 우유와 시리얼로 먹을 생각이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의 예산을 짜야할까? 다른 부분의 예산은 어느 정도 쉽게 견적이 나오지만, 레스토랑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먹을 것만큼은 계산이 쉽지 않다. 아침식사는 0원으로 잡았다. 조식을 제공해주는 경우가 많고, 전날 마트에서 사다 놓은 빵과 시리얼 정도로 때울 생각이라 딱히 예산에 넣지 않았다. 점심은 샌드위치나 햄버거 정도로 먹을 생각이다. 인당 10유로, 사이드 메뉴나 음료 포함하면 그보다 더 나올 것이다. 한국돈으로 인당 15,000원 생각하고 있다. 저녁은 1주일에 4-5번 정도는 사 먹고, 나머지는 숙소에서 조리해서 먹을 생각이다. 검색해 보니 어지간한 음식점에서의 식사 비용은 인 당 30-40유로 정도 나온다. 한 사람 당, 4만 원 잡으면 될 것 같다. 만만치 않은 돈이다. 하루 음식값만 22만 원이 찍힌다.
1주일이면 154만원. 30일이면 660만원. 부식비와 맥주값을 더해 700만원으로 식비 예산을 잡았다.
숙소에서 해 먹는 경우가 많아 이 보다 적게 들겠지만, 가끔 맛집에 가거나 오버해서 먹는 경우를 생각하면 대체적으로 저 금액 정도가 한 달 식비가 될 것 같다. 문득 독일의 통계학자 엥겔이 생각났다. 엥겔지수가 높으면 가난하다고 했던가. 배울 때는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던 엥겔의 이론은, 지금 식비를 계산하다 보니 큰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가난해서 엥겔지수가 높은 것이 아니라, 많이 먹으려고 해서 엥겔지수가 높은 것이다. 엥겔은 먹을 것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간과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다고요. 우리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현지 문화를 느끼는 것이었다. 문화에서 먹는 것을 뺄 수 없다. 잘 먹고 와야지! 적다 보니 변명 같은데, 예전부터 우리 민족은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당연히 그러면 알프스도 식후경이다.
문제는 스위스다. 스위스에서의 한 끼는 정말 후덜덜하다. 예전에 혼자 배낭여행으로 스위스를 갔다가 맥도널드에서 빅맥 먹으면서 울고 온 적이 있다. 장난하나. 어떻게 빅맥 세트가 2만 원이 넘지? 억울한 마음에 빅맥 단품만 먹었다. 혼자 스위스에 있는 동안에는 레스토랑은 꿈도 못 꿨었다. 이번에는 아내와 아이들도 있으니, 몇 번은 나가서 사 먹을 생각인데 검색해보니, 적당한 레스토랑에 가면 인당 50-60 프랑은 잡아야겠다. 한 끼에 200프랑 이상, 우리 돈으로 24만 원 이상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벌써 오바이트 쏠리는 가격이다. 나중에 어느 정도 먹게 될지, 예산과 어떻게 다른 지, 비교해 보겠다.
4.가이드투어 + 박물관 입장료
그냥 보면 돌덩어리일 뿐이다. 알고 보면 카이사르 신전이다.
가급적 가이트 투어를 따라다닐 계획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거라고 믿는다. 내가 아는 게 없으니, 아는 사람 따라다니는 것이 맞다. 문제는 예산이다. 어디까지 따라다녀야 합리적일까? 고민하다가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박물관과 미술관은 가이드를 따라다닌다. 둘째, 장거리 여행은 차량 운행하는 가이드 투어에 참여한다. 셋째, 도시에 도착하면 가급적 처음 한 번은 도시 투어를 쫓아간다. 그래야 어디가 맛집인지, 어디가 숨은 비경인지를 알기 쉽다. 이런 기준으로 가이드 투어를 정리했다.
가이트 투어 10회 참여 x 평균 15만원 = 150만원 + 박물관 등의 입장료 50만원 = 200만원
5.스위스 스키
스위스에서는 스키를 한 번 탈 생각이다. 나는 스키를 탈 줄 모른다. 어렸을 적 내 기준에 스키는 부자들이 하는 운동이었다. 비닐포대에 앉아 뒷동산을 내려오는 것만이 유일한 겨울 스포츠였던 나에게 스키는 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나이가 들어 스키를 탈 만해졌을 때는 허리 디스크가 생겨 배우지 못했다.
나에게 춥고 배고픈 설움을 안겨주었던 마테호른, 이번에는 배부르고 등따신 상태로 찾아가 볼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과 아내는 탈 줄 안다. 큰 아들은 유럽 여행을 가니 스위스에서 알프스를 보며 스키를 타 줘야지라고 기세 좋게 외친다. 초등학생 시절 도시락을 못 가져가서 수돗물로 배 채우던 나에게, 스키는 만화나 영화에서 보는 다른 나라의 귀족 스포츠였다. 그런 나에게 아들의 저런 당당함은 굉장히 묘하다. 나의 가난을 세습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있지만 더불어 알 수 없는 괴리감과 이질감도 생긴다.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해 봐야 라떼를 즐겨먹는 꼰대밖에 안 되겠지. 그렇지만 은근히 약도 오른다. 돈은 내가 버는데, 나는 스키도 못 타다니. 아들에게 니 돈으로 타라고 했더니, 그럴 수는 없단다. 아버지의 도리를 다해 달라고 한다. 웃기지 말라고 했지만, 한 번은 태워줄 생각이다. 예전에 혼자 스위스에 왔을 때, 스키 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웠었다. 가족들이 스키를 타고 마테호른을 내려오는 모습을 보며 나중에 나도 아이들 데리고 꼭 와서 스키를 타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스키를 못 타다 보니, 아이들과 스위스에 가는 목표까지는 이룰 것 같은데, 같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려 했던 계획은 아내에게 넘기게 될 듯하다.
스키렌탈 : 7만원 x 2일 x 3인 = 40만원 가량 (고글과 장갑, 옷은 가져간단다)
융프라우 vip패스 : 220프랑 (성인 3일권) x 60프랑 ( 아이 2명, 아이들 가격은 저렴하다.)
부대 비용 포함 전체 : 100만원
6.기타 비용
세세하게 적지 않았지만, 많은 비용이 빠져 있다. 하룻밤 묵을 때마다 돈을 내는 도시세도 상당히 나올 것이며, 물 값이나 간간히 먹게 되는 간식비와 커피 값도 꽤 많을 것이다. 양말이나 간단한 옷은 사 입을 계획도 있고, 한 달이나 여행하다 보니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는 비용도 필요하다. 유심이나 기념품 구매하는 비용도 계산하지 않았고, 여행자 보험료라거나 공항에서 사용하는 비용 등도 예산에 넣지 않았다. 이건 기타 비용으로 한 번에 퉁치도록 하겠다. 하루에, 10만 원씩 300만 원. 남으면 다음 여행을 위한 종잣돈으로 남겨둘 생각이다.
기타 비용 : 300만원
7.전체비용
4년을 준비했다. 여행 계획에서 장기간 준비해야 하는 것은 하나밖에 없다. 돈! 아이들이 3년에 걸쳐 각자 200만 원씩 400만 원을 냈고, 아내와 나는 4년간 모은 적금을 깼다. 전체 2600만 원을 예산으로 잡았는데, 2300만 원은 현금으로 준비했고, 부족해진다면 카드로 채우기로 했다. 금액이 상당하지만 예산은 일단 이 정도로 생각하기로 했다.
금액을 줄이는 법은 어렵지 않다. 비행기 표를 저렴하게 구하고, 숙소 역시 더 저렴한 것들을 찾으면 된다. 항공권 특가 뜨면 초치기로 구매하고, 도미토리에서 잠을 자면 예산은 확 세이브된다. 여기다가 가이드 투어는 생략하고, 먹을 것을 아끼면 비용은 예상보다 훨씬 뚝 떨어진다. 절반 이상 줄어들 될 것이다. 혼자 다닐 때는 그렇게 다녔다. 노숙도 하고, 빵 하나와 물 한 통 들고 하루 종일 걸어 다녔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내와 아이들이 같이 가는 여행에서 그런 고생을 하고 싶지 않다. 사서 하는 고생을 하겠다면 굳이 그 일정을 유럽으로 잡을 필요 없다. 배낭 메고 대한민국만 걸어서 돌아도 충분히 고생할 수 있다. 배우는 것도, 느끼는 것도 더 많을 것이고, 훨씬 안전하고 깨끗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극기훈련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좋은 추억과 기억을 만드는 여행이다. 아끼기보다는 즐기는데 초점을 맞추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예산을 잡았다.
이 글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고,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 글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여행 도중 틈틈이 글을 쓰겠다는 계획은 결국, 그리고 예상대로 계획만으로 끝나 버렸습니다. 게으른 성격은 다른 나라에 간다고 바뀌지 않네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 새면 이상하죠. 여기 까지가 여행 전에 쓴 글이며, 앞으로 쓰게 되는 글은 여행 후에 쓰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