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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부른곰 Mar 20. 2020

2-4. 런던, 런던아이 + 브랙시트

브렉시트의 역사적 순간을 지나가다.

위에서 내려다 본 런던아이 관람차


어제저녁에 런던 아이+유람선 티켓을 예약해 두었다. 런던 아이 개장시간 오전 10시면 줄을 안 서도 될 것 같아 조금 일찍 같더니 역시나 줄이 길지 않았다. 시간 잘못 맞추면 2시간 줄을 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던 터라, 다행이다 싶었다. 예약 코드를 직원에게 보여주어야 실물 티켓으로 바꿔준다. 더 이상 영어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해야겠다. 매표소 직원의 영어는 영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제일 알아듣기 힘들었다. 굉장히 친절했고, 에너지가 넘쳤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나는 Pardon? 과 What? 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매표소 직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직원이 몇 시에 유람선을 탈 거냐고 묻기에, 나는 언제 타는 것이 좋은지 되물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적혀 있는 유람선 시간 보고 예약하면 되는데, 건방지게 시간을 물어보았다가, 결국 우리는 언제 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토론을 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매표소 직원과 나는 아래와 같은 정도의 대화를 했던 것 같다.

“손님! 유람선은 언제 타고 싶으신 건가요? 런던아이 갔다고 오셔서 타실 건가요? 먼저 타실 건가요?” “네? 뭐라고요? 저희는 유람선을 내일 타면 안돼요. 오늘 타고 싶어요.” “아니요. 손님. 유람선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시간을 예약하셔야 타실 수 있습니다.” “네? 아. 우리 가족은 총 4명입니다. 어른 2명에, 아이 2명입니다.” “아니, 손님 몇 시에 예약하실 거냐고요!!” “네? 네 저희 집 큰 아이는 14살, 둘째는 10살입니다.” 서로 웃는 얼굴로 대충 이런 식의 토론이 이어져갔다. 친절한 직원의 인내심과 아이들을 유람선에 태우겠다는 가장의 참을성이 더해져 우리는 꽤 오랫동안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중에 그 직원이 지쳤는지, 단도직입적으로 11 O’clock? 12 O’clock? 양자택일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진작에 이럴 것이지, 시간 물어보는 것은 나도 알겠다. 기분 좋게 일레븐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협상은 거기서 종료되었다. 친절했지만, 설득력이 부족한 친구였다.


뿌듯한 마음으로 티켓을 가지고 런던 아이 줄 서는 곳으로 돌아오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빨리 런던 아이를 타고 싶어 했던 아이들은 “역시 아빠!”라며 엄지척을 했다. 으쓱했다. 내가 못 하는 게 어디 있어, 안 해서 그렇지. 그런 뻔뻔한 멘트까지 날리고 줄 서는 곳에 갔더니, 아뿔싸! 직원과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런던아이의 줄은 꽤 길어져 있었다. 아내가 “유람선 탈 시간이 부족하지 않을까? 런던 아이 한 바퀴 도는 시간이 30분이던데? 시간 맞춰 올 수 있을까? 차라리 유람선 예약 시간을 바꾸어서 오는 것은 어때?”라는 제안을 한다. 그 티켓 판매소 직원이랑 다시 대화를 해야 한다고? 헐. 내가 얼마나 긴장감 넘치는 협상을 하고 왔는지, 이 티켓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영어 문장이 들어 있는 지를 알면, 그런 소리는 못했을 것이다. 아내의 말에 어물쩍거리고 있는데 큰 아이가 “괜찮아, 유람선 탈 수 있어. 시간 충분해! 이러는 동안 빨리 타면 돼.”라고 런던 아이 타는 곳에 성큼 줄을 섰다. 멋있다. 내 아들. 사랑한다. 


큰 아들에 대하여


큰 아들은 굉장히 낙천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이다. 세상에 욕심도 많고, 원하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실패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결단력도 있고, 실행력도 있다. 언젠가는 그런 아들이 너무 멋있어서 “아빠도, 그런 너를 본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몇 번 한 적이 있다. 이게 아빠로서 해도 되는 말인지, 아니면 아직 어린 아들에게 할 말이 아닌 지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노력하는 큰 아들의 모습은 작은 문제도 좌고우면 하는 내 태도에 비추어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이다. 큰 아들에게서 요즘 부쩍 발견되는 허세기도 사실 사춘기여서 나타났다 보다는, 본래 타고난 성향이 점점 어른스럽게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모양을 갖추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말의 무거움을 아는 어른이 되면, 허세는 자신을 가늠하고 반성하는 저울이 되거나 스스로를 견인하는 긍정적인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나쁘지 않다. 


아내는 그런 아들을 보며 “저 녀석, 공부만 잘하면 되는데”라고 말하지만, 공부야 나중에라도 잘할 수 있는 것이고, 설령 조금 못하더라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자기 길을 찾을 수 있는 아이라 믿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아내의 말속에도 사실, 성적 빼고는 다 괜찮다는 믿음이 실려 있다. 엄마 아빠가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하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 부모가 아이에 대해서는 가장 잘 안다. 이건 큰 아들이 나를 매표소로 되돌려 보내지 않아서, 고마워서 하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진짜다.



아내의 전공은 사진이다. 


며칠 동안 우중충 했던 그곳과 같은 도시일까 싶을 정도로 런던의 하늘이 맑았다. 눈이 부실 정도였다. 런던 아이를 타고 올라갈수록 먼 곳까지 보였다. 태양에 반사되어 도시는 하얗게 보였고, 템즈강은 잡지 화보처럼 반짝였다. 사진 찍기 놀이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아내의 셀카봉은 여지없이 셔터를 눌러 댔다. 이 모습도 했다가, 저 포즈도 했다가, 이리도 찍어보고, 저리도 찍어보고, 보는 사람이 무서울 정도다. 나야 익숙해서 아내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해준다. 키를 맞추라고 하면 무릎을 구부리고, 내 머리가 크다고 하면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선다.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불만을 말해서 얻을 손해보다 순순히 따랐을 때 얻는 이득이 크다는 것을 그동안의 결혼 생활을 통해 체득했다. 아이들은 아직 인생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야 얻는 것도 있는 건데, 이것들은 엄마가 사진 찍는 포즈를 취하라고 해도 시큰둥하다. 마지못해 한 두 장 찍고 뒤돌아 선다. 그런 아들을 보며 아내는 꿍시렁거리며 다시 말 잘 듣는 나를 찾는다. 


재미있는 것은 아내의 전공이 사진이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잡지사 사진기자로 일을 했고, 일반 회사의 사진사로 일하며 오랫동안 사보와 다양한 사진을 찍었다. 모르긴 몰라도 수 십 만장은 찍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사진만 찍어서 한이 맺혔나, 언젠가부터 주야장천 자기 사진을 찍는다. 어마어마하게 찍는다. 집에 SLR부터 미러리스까지 다 있는데, 카메라는 무겁고 복잡하다고 들지도 않는다. 폰 카메라만 눌러 댄다.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나르시시즘인지, 여행 습관인지, 아니면 예술혼인지, 맺힌 한 같은 건지, 한번 연구해 봐야겠다.


둘째 아들은 흥분했다.


아내의 셀카 놀이와 큰 아들 뒷모습 사진 찍기가 끝나고, 런던아이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런던 구경도 마무리되어 가자 슬슬 쫄깃해지기 시작했다. 유람선 시간은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저기 저 멀리서 유람선에 사람들이 탑승하는 것도 보였다. 런던 아이에서 내리려면 5분은 남은 것 같은데, 배 출발 시간은 거의 다 되어서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포기했다. 안될 것 같다. 다음 유람선에 타자. 본래 포기하는 마음은 쉽게 퍼진다. 다른 가족 모두가 마음을 비우고 있는데, 큰 아들이 나섰다. 모두 여기 모여요. 할 수 있어요. 우리 모두는 아들의 말을 따라 런던 아이 관람차 문 앞에 섰다. 잠시 침묵. 문이 열리자, 큰 아들이 “뛰어!”라고 소리치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큰 아들을 따라 있는 힘껏 뛰었다. 선착장 입구까지 30초도 안 걸렸을 것이다. 전 속력으로 뛰었다. 남들이 봤으면 전쟁이라도 일어났나 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유람선에 들어가는 다리에는 굵은 쇠사슬이 놓여 있었다. 문을 닫은 것이다. 실패에 대해 관대한 큰 아들은 “아, 안됐네”라고 머리를 긁혔다. 이쯤 되자 내가 오기가 생겼다. 쇠사슬 옆 길로 몇 발자국쯤 들어가, 저기 멀리 떨어진 직원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Can We take this cruise now? We have this time’s ticket” 직원은 시계를 봤고 망설였다. 우리 가족 모두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를 잠깐 보던 그 남자는 ok! 라며 우리에게 다가와 쇠사슬을 열어 주었다. 우리는 아싸 하고 뛰었지만, 그 직원은 위험하니 뛰지 말라고 한다. 무전으로 배에다가 뭐라고 하더니, 천천히 걸어가도 된단다. 땡큐가 절로 나왔다.



둘째는 엄청 흥분했었나 보다. 배에 타자 마자 속사포처럼 떠든다. 와, 유람선 못 탈 뻔했어. 간신히 탔어. 긴박했어. 완전 모험이었어. 그런 아들을 보며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래. 이게 여행의 맛이지. 유람선을 타도, 못 타도, 모두 지금의 즐거움이고 훗날의 추억이란다. 중요한 것은 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야. 그러기에 작은 일상이 소중해지고, 작은 스릴에 두근거려지는 것이겠지. 훗날 지금의 일을 꺼내어 큰 모험 마냥 떠들어 대는 날이 온다면, 오늘의 기억들이 더더욱 소중해지리라. 유람선은 꽤 괜찮았다. 코스도 알찼고, 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강 옆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패키지로 구입하면 저렴하기 때문에 런던아이를 탈 생각이 있다면, 같이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닭고기 필렛과 감자튀김.  영국음식은 어딘지 모르게 성의 없어 보인다.


유람선에서 내려 조금 걷다가, 김밥천국 같이 생긴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맛과 서비스는 김밥천국이었지만 가격은 인당 10파운드 이상씩 들었다. 확실히 외식이 비싼 나라다. 그래도 먹고 나니 힘이 나서 도시를 열심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런던아이에서 내려다본 런던은 평지가 많았다. 조금만 걸어도 크고 작은 언덕이 불쑥 튀어나와 한땀씩 흘려야 하는 한국의 도시와는 다르게 천천히 따박따박 걷기에 무리가 없다. 


역사적인 브렉시트 한 복판에 서다.


어느새 우리는 다리를 건너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까지 왔다. 런던 아이에서 봤던 조용한 런던의 속내는 생각보다 들떠 있었다. 여기저기서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을 옷처럼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때때로 뭉쳐서 소리 내어 노래도 부르고 있었다. 어?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아! 1월 31일 영국이 EU에서 나가는 날, 오늘이 브렉시트이구나. 태극기 부대, 아니 그래서 저리 유니언잭 부대가 돌아다니는구나. 역사의 한 복판에 있구나 싶어 매우 신기했지만, 광화문의 태극기 부대에게 배웠던 학습효과 때문인지 그분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두려웠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부분도 많아 보였다. 나이 때가 높았고, 시끄러웠다. 이미 술을 한 두어 잔 드신 듯한 분도 있었고, 몇몇은 소주처럼 맥주를 들고 다녔다. 많은 이들이 영국 국기를 등에 매거나 들고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쪽에는 성조기나 이스라엘 국기가 없다는 점이랄까.


유니언 젝을 들거나 입은 사람들이 국회의사당 방면으로 걸어가고 있다. 트래팔가 광장부터 국회의사당까지 모든 도로를 개방하고 차량을 전부 통제하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유럽 여행의 또 다른 목적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아이들과 각국의 역사와 문화 정치와 경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 예술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내가 많이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공부했던 것들, 관심 있었던 것들,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것들을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어서다. 내 욕심이기는 하지만 한 달간 떠나는 여행이라면, 돈 많이 들이는 여행이라면(?), 놀고 즐기는 것 말고도, 배우고 느끼는 것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계속 아이들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다.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는 선에서 수위 조절은 했지만, 중요한 주제는 한 번씩 다 꺼내 본 것 같다. 여행 중에는 눈 앞에 떡하니 역사적 사건이나 유물, 그림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야기를 시작하기 어렵지 않다. 지금 우리 눈 앞에 유니언잭을 둘러싼 사람들이 지나가는 지금은 브랙시트에 대해 말하기 최적의 상황이다. 


문제는 내가 브렉시트를 쉽고 명쾌하게, 피아 구별해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말이야 간단하다. EU에서 영국이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왜? EU로부터 주권을 되찾아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고, 난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영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를 원해서다. 영국이 EU와 함께해서 손해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2016년 EU를 탈퇴할 것인가에 대해 영국 국민들은 국민투표를 했고, 투표 결과 EU에서 탈퇴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EU에서 탈퇴하는 것을 반대하는 영국 사람들 역시 많다. 찬성하는 사람들이 51.9% 였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48.1%였다. 찬반 논쟁이 굉장히 치열하다. 2% 차이가 안된다. 이 정도 차이면 정치인들끼리 사바 사하 해서 보통 중간 지점에서 합의를 보거나, 적당히 나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제도를 기본 원칙으로 하지만, 소수에 대한 배려 역시 주요한 철학이다. 48%의 반대자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투표의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찬성과 반대 둘 중 하나. 중간이 없다. 사바사바 해서 나눌 것도 없다. 찬성이 이겼다. 48%의 의견이 소수 의견이 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역별로 어마어마한 차이를 보였다는 점이다. 런던을 제외한 잉글랜드 지방만 EU에서 탈퇴하기를 원했고, 그 외 나머지 모든 지역에서 탈퇴를 반대했다. 스코틀랜드는 시민들의 62%가 EU에 탈퇴를 반대하고 잔류하기를 원했다. 탈퇴로 결정이 나자, 열 받은 스코틀랜드 시민들은 영국 연방에서 탈퇴하는 국민 투표까지 진행하려고 했다. 영국 의회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지만 이들은 여전히 EU에서 탈퇴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EU 탈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국에게 브랙 시트는 재앙이 될 거라고 말한다. 일자리는 사라질 것이고,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주장한다. 런던은 금융 메카로서의 자리를 잃을 것이고, EU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았던 기업들이 떠날 것이라고 한다. EU 탈퇴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꺼꾸러 EU를 탈퇴하면 영국 경제는 부흥할 거라고 말한다. EU에게 가져다 바쳤던 돈으로 내수를 진작시키면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고, EU의 법과 관세, 쿼터 조항 때문에 쉽게 육성할 수 없었던 다양한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뭐가 맞는지 나는 모르겠다. 모두 맞는 말 같다. 솔직히 내 관심은 여기 까지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그 앞에는 England Apple이라는 플래카드를 붙여 놓고 사과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보였다. 검색해 보니, 대표적인 브랙시트 찬성론자들인 영국 농수산업의 사람들이 벌이는 축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신토불이, 우리 것이 최고야, 브랙시트 기념으로 사과를 무료로 쏩니다. 같은 행사인 것인데, 브렉시트를 찬성하는 사람들의 경제 기반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매우 흥미로웠다. 


그 와중에 둘째가 사과 하나 얻으려고 줄을 서길래 바로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이 녀석은 누굴 닮았는지 공짜라면 일단 줄부터 선다. 예전에 이 녀석 네 살 때는 공주 백제문화제에 갔다가, 공짜로 선물 준다는 말에 무작정 행사장 무대 위로 - 말릴 새도 없이 - 뛰어 올라간 적도 있다. 헉하는 사이에 아이는 무대에 올라갔고, 노래 춤 아무것도 못하는 우리 애를 보며, 그때 사회자가 선물 준다고 애들 막 올려 보내지 마시라고 놀리기까지 했다. 관객들은 웃고, 우리는 민망함에 부모가 아닌 척해야 했다. 이번에는 붙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줄 섰다면 사과 하나 받기야 하겠지만, 영어 한 마디 못하는 녀석을 보며 사회자가 뭐라고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영국 농담은 지독한 걸로 유명한데 말이다.


브렉시트에서 누가 나쁜 놈인 것인가?


어찌 되었건 브렉시트에 대해 단정 지어 설명하기 쉽지 않다. 의도와 의미는 설명할 수 있지만, 누가 옳은 길인지, 어느 쪽의 전망이 맞을 것인지 아이들에게 말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우리 애들은 누가 나쁜 놈인지를 알아야 이해가 빠른데, 결정적으로 그걸 말하기 쉽지 않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젊은이들을 볼모로 내세우고 있다는 생각도 있고, 영국 총리의 사기꾼 같은 행적이 거슬리다 보니 브렉시트가 영국의 이기심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국 국민들이 찬성하고 있고, 농어촌 경제를 살리는 효과는 분명하다고 하니 단정 짓기 어렵다. 이들도 쉽게 결정한 것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 표현이 되었고, 많은 논의와 정쟁을 통해 마무리된 문제다. 3자의 시각이 어떠하든 간에, 이들의 민주적 절차와 결과를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영국은 이제 EU 역사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다. 위대한 대영제국의 새로운 페이지를 적어 나갈지, "브렉시트 이전이 좋았지"같은 늙은 말이나 되풀이하는 망한 나라가 될지는 뒷날 판가름 날 것이다.


개인 간의 이혼에도 합의 기간이 필요하듯이, 영국과 EU 사이에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협상 없이 탈퇴를 진행하는 것을 노딜 브렉시트라고 하는데, 부부간의 이혼도 재산과 땅(?) 문제가 얽히면 쉽게 풀리지 않듯이 영국과 EU 역시도 지난 몇 년간 돈과 땅을 놓고 많은 협상을 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노딜로 합의 없이 브렉시트를 맞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영국의 도버에서 프랑스의 칼레로 가는 길마저 막힐 수 있다고 하는데, 이건 명백하게 영국의 손해다. (칼레는 지난번 글에서 영국의 메리 여왕이 잃어버렸다고 했던 그 땅이다. 영국과 가장 가까운 프랑스 땅이고, 아직도 산업적, 전략적 요충지이다. 메리가 심장에 이름을 새길만하다.) 


EU와 영국의 협상이 결렬되어도 브렉시트는 진행된다고 하니, 오늘은 영국이 EU에 속한 마지막 밤인 것은 분명하다. 기분이 묘했다. 현대 영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인 것이고, 나아가 세계사에도 중요하게 기록되는 시점에 우리 가족은 이방인으로 런던 한복판에 서 있다. 유니언잭을 입은 사람들과 삼삼오오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며, 타국의 역사적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없다면, 나도 맥주 한 병들고 따라가 이 사람들과 이 순간을 같이 즐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 태극기 아재, 아니 이들에게는 동양인 유니언잭 아재가 되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아, 안 되겠구나.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안타깝네.


라떼의 브렉시트


우리 둘째가 브렉시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더니 한마디 한다. “내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내 아이들한테 그런 말을 해 줄 거야. 라떼는 말이야, 영국이 EU의 나라 중에 하나였단다. 라떼는 말이야. 나는 EU에 속한 영국에 있어 봤단다. 라떼는 말이야. 심지어 영국이 EU를 떠나는 날에도 영국에 있었지. 라떼는 말이야. 블라 블라” 이 녀석은 지금 이 순간의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애 늙은이 같은 말을 즐기는 건지, 초딩 3학년 둘째의 생각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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