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장의 CD를 사모으며 알게 된 디테일의 차이

직접 만져보고 마들어본 경험의 중요성에 대하여

by withgrdnrush

손끝에 남은 감각이 만드는 차이

학창 시절 내 방 한쪽 벽면은 200장이 넘는 CD로 빼곡했다.

용돈을 아껴가며 좋아하는 앨범을 사 모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비닐을 뜯을 때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플라스틱 케이스를 열 때 느껴지는 딸깍거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북클릿 종이 특유의 냄새까지.

그 모든 과정이 음악을 듣는 행위의 일부였다.

요즘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고해상도 앨범 커버 이미지를 손쉽게 볼 수 있다.

픽셀 하나 깨지지 않은 선명한 이미지를 폴더에 저장하는 것은 몇 초면 끝나는 일이다.

하지만 모니터 속의 매끈한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과 실제 물성을 가진 오브제를 소유해 본 경험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이것은 단순히 아날로그적 향수나 낭만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결과물을 받아볼 클라이언트에게 실질적인 결과물의 품질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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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 안의 세상은 중력이 없다

디자인 미팅을 하다 보면 종종 난관에 봉착할 때가 있다.

클라이언트가 레퍼런스로 가져온 화려한 그래픽 이미지들이 실제 인쇄물이나 패키지로 구현될 때 발생하는 괴리 때문이다.

화면 속에서는 형광빛이 도는 쨍한 녹색이 가능하지만,

실제 잉크가 종이에 스며들면 그 빛은 탁해지기 마련이다.

(물론 별색을 쓰면 되지만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런것이 아님을 당신을 알 것이다.)

화면 속의 패키지는 접히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이어지지만,

현실의 종이는 두께가 있고 접히면 터지기도 하며 뒷장이 비치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이미지만을 학습한 디자이너는 이 지점을 자주 놓친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그래픽을 만드는 데에는 능숙할지 몰라도

그것이 현실 세계로 나왔을 때 어떤 구조를 가져야 하는지,

손에 쥐었을 때 어떤 무게감과 질감을 줘야 하는지에 대한 계산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모니터 안의 세상에는 중력도, 마찰도, 종이의 결도 없기 때문이다.

제작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일을 맡겼다가는 수많은 오류를 뿜어내고,

결국 비용 낭비와 시간 지연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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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성을 이해하는 디자이너의 설계도

200장의 CD를 사 모으며 내가 무의식중에 익힌 것은 그래픽이 입혀지는 구조에 대한 이해였다.

2단으로 접힌 종이와 3단으로 접힌 종이가 펼쳐질 때의 호흡이 어떻게 다른지,

코팅된 종이와 거친 종이가 손끝에 닿았을 때 브랜드의 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나는 머리가 아닌 몸으로 먼저 배웠다.

그래서 나는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모니터를 끄고 종이를 접어보거나,

유사한 재질의 샘플을 먼저 만져본다.

이 로고가 금박으로 찍혔을 때의 눌림 자국이 주는 고급스러움을 상상하고,

패키지를 열었을 때 소비자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 어디일지를 시뮬레이션한다.

이런 경험치는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실수를 사전에 차단한다.

인쇄 사고가 날 법한 얇은 폰트를 조정하고, 종이의 로스율을 줄이는 판형을 제안하며,

후가공 비용 대비 가장 효과적인 질감을 찾아낸다.

단순히 보기에 예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

실제로 생산 가능하고 내구성 있으며 심미적으로 완성도 높은 제품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것은 핀터레스트에서 이미지를 스크랩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오직 만져보고 깨져본 시간만이 줄 수 있는 노하우다.


보이지 않는 1mm가 명품을 만든다

결국 디테일의 차이는 경험의 깊이에서 온다.

인터넷 서핑으로 얻은 정보는 휘발되기 쉽지만,

직접 돈을 지불하고 소유하며 뜯어보고 만져본 경험이라는 근육에 기억된다.

당신의 브랜드가 모니터 안에서만 존재할 것이 아니라면,

현실의 물성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하다.

화려한 시안 뒤에 숨겨진 제작의 리스크까지 꿰뚫어 보고

당신의 예산을 가장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결과물로 치환해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나는 여전히 가끔 음반 매장에 들른다.

그곳에서 손에 잡히는 느낌과 종이에 인쇄된 질감의 인상을 느끼며

내 클라이언트의 결과물이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에게 전해질 감각을 미리 예습한다.

만약 당신이 화면 밖에서도 완벽한 결과물을 원한다면,

내가 그 실체 있는 경험을 당신의 브랜드에 입혀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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