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눈에 닿는 모든 곳마다 푸르른 5월에 나는 처음 유럽여행을 떠났다.
유럽여행 에세이 그 첫 번째 이야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비행기는 커녕 근교로 여행 한 번 떠난 적이 없는 내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겠다 마음을 먹었다. 내 나이 딱 24살 때였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 한다고 했던가. 경유지 공항에서 밤을 새운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지도 못했던 패기 넘치던 나는 장장 20시간이라는 경유비행을 선택했다.
저가 비행기를 탈 때 드는 수하 비용을 줄여보겠다고 크기별로 다양하게 있는 캐리어에 눈을 거두고 커다란 배낭에 2주가량의 필요한 짐을 담았다.
최대한 소박하게 가자. 덜어내는 법을 배우고 돌아오자라고 다짐했지만 그게 아니었는지 생각보다 무거운 배낭의 무게에 몸이 휘청거렸다. 20대, 여행을 가기도 전에 기대로 부푼 마음처럼 가방도 무겁다.
이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이 캄캄했지만 돈을 아끼자는 다짐에 몸이 또 희생당해야 했다.
출근하는 가족과 홀로 여행을 떠나는 내가 신발장 앞에 나란히 서있다.
온 가족이 신발을 구겨 넣고 있을 때 언제 줄까 망설이며 준비하고 있던 손이 이때다 싶어 편지를 내민다. 며칠 전부터 눈물 콧물 흘리며 써 내려간 편지는 그렇게 전해졌다. 표현 잘 못하는 막내딸이자 동생이 무심코 전해주는 편지. 가족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덩달아 내 손길도 함께 민망해졌다. 하지만 "뭐야~편지야?" 하며 고맙다는 듯 편지를 받아 드는 모습에 문득 미안함이 앞섰다.
누군가 내게 '가족을 사물로 비유한다면 뭐라고 대답할 거야?'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불이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어쩔 땐 너무나 따뜻한데. 어쩔 땐 걸리 적거리는, 그렇다고 냅다 "아! 안 덮어!" 던져 버릴 수 없는 이불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솔직히 가끔 삶에서 가족이 방해물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뒤에서 나를 서포트해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처럼 내 앞을 가로막는.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 가끔 나를 버겁게 만드는. (물론 나 역시 가족들에게 그런 존재였을 수도.)
성인이 되고부터 실현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났다. 따라 조급함도 함께 늘어갔다. 그럴 때일수록 남들과 달랐던 내 환경을 탓하였고 그런 특별한 환경으로 인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억울하다고 느끼면 안 되었지만 또 억울했다.
그래서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하고부터는 포기하는 법, 덜어내는 법을 잊었다. 내 욕심은 끝이 없었다. 앞만 보고 달리는 불도저처럼 곁에 있는 이를 배려하지 않았고 내가 얻을 것과 잃을 것만 재고 따지며 가족에게 희생과 이해를 강요했다.
이런 나의 복잡한 감정을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그렇게 알게 모르게 마음의 골들이 쌓여 서로에게 가끔 짜증 섞인 대화로 이어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리고 우리는 대가족 회의에 들어갔다.
새벽이 될 때까지 우린 대화를 나누며 감정의 골들을 풀어냈고 조금은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나의 가족도 욕심이 많고 꿈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가족에게 희생과 배려를 강요할 수 있었지만 다만 그들은 그러지 않고 기다렸을 뿐이다. 상처를 주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법을 찾았을 뿐이다.
그렇게 아프도록 사랑스러운 나의 가족들은 편지를 품에 안고서 각자의 일터로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코끝이 시큰거렸다.
떠나는 것은 항상 이상하다. 그것도 함께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사람들과 이런 인사를 주고받고 헤어지는 건 더욱 이상하다. 만약 이렇게 짧은 인사가 마지막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행은 항상 리스크라는 커다란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것만 같다. 비행기 사고, 실종, 죽음.
테이큰처럼 여행지에서 무시무시한 마약상에게 납치되는 일들이 일어나면 어쩌나. 이곳에 남겨진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라는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기다렸다는 듯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따라붙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는 힘이 없다. 두려움을 자극할 뿐이지 내게 어떤 커다란 위안이나 힘을 더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떠날 때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언제나 남겨두고 가는 것은 리스크만큼이나 커다란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가족, 집, 잠시 멈추어야 하는 나의 꿈.
나를 설명하는, 내 삶을 정의하는 이 단어들의 무게는 실로 무겁고 크다. 이런 무거운 것들은 남겨두고 홀로 떠나는 여행은 내게 잠시나마 해방감과 자유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가벼움은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때론 버겁게만 느껴지던 일상도 나의 짐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어느 순간엔 그리워질 거라는 것을. 허구한 날 싸우고 투닥거렸던 가족이 무척이나 보고 싶어 질 거라는 것을.
막연한 기대와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항상 희망과 절망을 얼싸 앉고 좌절을 해야 했던 나의 꿈도. 어쩌면 내가 가장 포기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를, 그러나 포기가 되지 않는 지긋지긋한 짝사랑인 꿈도 아마 더 큰 갈증으로 변해서 돌아올 거라는 것을.
인생이란 무엇이고 옳은 삶의 길이란 또 무엇일까.
나는 이 여행을 통해 더 많은 질문을 던질 것이며 또 해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괜찮은 여행을 하고 돌아올 것이다.
이 과정 중에 내가 얻게 될 것들이 너무 무겁지 않고 단순하길 바란다.
경유지 중국공항에 도착했다. 기나긴 비행 탓인지 머리가 많이 지끈거렸다.
처음으로 공항에서 밤을 새웠다. 중국 공항에서 어둑해진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처럼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타인이었다. 같은 한국사람도 아니고 먼저 말을 걸기도 뭐하고 그것조차 대단히 이상하게 여겨져서 나도 그들처럼 핸드폰만 만지작 거렸다.
오랜 비행으로 몸이 찌뿌둥하여 잠깐 스트레칭을 하고 쏟아지는 잠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했다. 잠이 드는 건 역시 무서워서 영화를 보며 공항 딱딱한 바닥에 앉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기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경유 공항에서 장장 3~4시간을 버텼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다 싶다. 피곤하고 눕고 싶다는 생각을 시도 때도 없이 하긴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잘만 흘러갔다.
결론을 말하자면 코로나가 끝나고 또다시 배낭여행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적어도 20시간이라는 경유 비행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돈도 돈이지만 체력적으로 정말 못할 짓이다. 20대가 부릴 수 있는 객기로 선택한 것이지만 한 번의 경험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약 12시간의 비행을 걸쳐서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하늘은 파랗다. 눈부신 햇살과 함께 맞은 파리의 아침은 그렇게 맑을 수가 없었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길에 나는 한 커플을 보았다. 정해진 일정에 차질이 생겼는지 서로 손을 잡고 공항을 달리는 그 커플의 모습 유난히 예뻐 보였다.
나도 기차를 타러 갔다. 사람들은 바쁘게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