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베르사유 궁전에 가다

유럽여행 에세이 그 두 번째 이야기

by 홍윤




약 20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드디어 파리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숙소로 가서 짐을 내려놓고 두 다리를 뻗어 끝없는 잠에 빠져들고 싶었지만 바로 다음 일정이 있었다. 첫날부터 계획이 틀어지면 그다음 날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것 같아 피곤해서 늘어지는 몸뚱이를 억지로 이끌고 다시 기차역을 찾는다.


그 어마어마하게 넓다는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 그곳으로 가기 위해 거북이처럼 커다란 배낭을 등에 매고 기차표를 구입한다.


가벼운 옷차림, 카메라 하나. 모두들 가볍고 간소한 차림에서 나 혼자만 다른 세상에 떨어져 있다. 누가 봐도 관광객이라는 티를 내며 기차에 올랐다.


옆자리에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드디어 짐에서 해방되어 기차 풍경을 바라보았다. 내려놓은 짐 때문인지 마음이 한결 편하고 가벼웠다. 오랜 비행으로 쌓아온 피로와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다크서클은 턱밑까지 내려오고 거의 하루가 지나갈 동안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지만 지나가는 풍경은 너무 아름다웠다. 잠에 들지도 않고 풍경만 하염없이 바라보아도 피곤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만큼.


예전부터 나는 항상 탈 것에 타면 영원히 깨지 않는 잠에 빠진 사람처럼 잠을 잤다. 뭐가 그리 편한지 깊은 잠에 빠져 버스 종점에서 눈을 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늦은 시간에 끝나는 학원에 다닐 때도 집에서 한참 떨어진 종점에서 일어나 퇴근하는 버스 아저씨의 자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간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피로에 쌓여 있는 내가. 앉은자리만 있다면 속절없이 잠에 빠져들어야 하는 내가 한없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니.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여행이 주는 에너지인가 보다.

창가에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차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대체론 조용하게 무언가를 하곤 했다. 핸드폰을 하거나 사색에 잠겨 창밖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잠에 청하거나 헤드폰을 끼거나 대체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로 이 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기차 초입부에는 온갖 설렘으로 사진을 찍고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영상으로 담아내기도 했지만 몇 개의 정거장을 지나고 나니 흘러가는 순간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순간을 즐기는 가장 최적의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책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 너는 이 풍경들을 아주 잘 보아야 해. 다시는 같은 눈으로 그 풍경을 볼 수 없어.


그렇다. 설렘은 언젠가 사라지고 색다르게 보였던 파리의 기차역도 처음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 나와 달라 특별해 보이는 사람들도, 싱그럽게만 보이는 풀밭의 잔디들도 며칠이 지나면, 아니 어쩌면 몇 개의 정거장이 지나면 익숙해질지도 모른다. 잔디는 그저 그런 잔디가 되고, 사람들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되겠지.


설렘은 영원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린 삶에서 영원하지 않을 설렘을 잡을 수 없기에 더 노력해야 한다. 더 오래 설렐 수 있도록 마치 이 순간을 붙잡아 둘 수 있을 것처럼 즐겨야 하고 더 관찰해야 한다.





1시간 후 베르사유 궁전 앞에 도착했다. 짐을 맡기는 것을 깜빡해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베르사유를 구경해야 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 없지, 라는 마음으로 다시 힘을 내본다.



사람도 많고 궁전에 들어가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비될 것 같아 아쉬운 대로 정원만 구경하기로 나 자신과 타협을 보았다. 아마 난 처음 베르사유 궁전에서 정원만 구경하고 나온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지인 말로는 정원을 구경하는데도 충분할 것이라고, 이미 네 체력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던데 정말 그 말을 증명하듯 커다랗고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정원의 넓이에 놀랐다.



궁전과 같이 정원의 화려함과 웅장함은 어마어마했다. 이 모든 화려함과 아름다움이 당시 국민들에게는 짐으로 다가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딱 그만큼 사치스럽게 여겨졌다.


수많은 피가 희생된 혁명 덕에 가난과 배고픔에 허덕이던 국민들이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입장료를 내고 거닐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참 모순적이다.


정원 끝자락에 다다르자 너렁청하게 펼쳐진 잔디밭이 보였다. 그곳에서 바게트를 먹으며 사색에 잠겨있는 그들이 보였다. 어깨에 매단 짐이 무겁게 느껴지던 순간에 만났던 평온이라 참 부럽게만 느껴졌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의 욕심은 참 알 수가 없다. 어쩔 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탐내며 갈망하다가 사소한 순간을 놓치고, 대단한 것을 이루고 나면 사소한 순간들을 그리워한다는 것이. 참 웃기지 않은가. 평생 만족을 알지 못하다가 죽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것처럼.


나 홀로 유럽여행을 떠난다는 내가 부럽다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나는 여행을 떠났다.

그런 여행에서 이런 사소한 순간들을 열망하는 것을 보면 참 욕심의 기준은 알 수없고 또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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