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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섬 Jul 28. 2023

로펌에 워킹맘이 많은 이유

워킹맘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

지금은 연예인, 유튜버가 장래희망인 아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초등학생 땐 드라마의 흥행에 따라 모두의 장래희망이 결정되곤 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형사가 꿈이기도 했고, 파티시에가 꿈이기도 했다. 드라마 ‘로펌’은 그 당시 흥행하지 않았는지 변호사가 꿈인 친구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해에 적어도 1편은 로펌과 관련된 드라마가 나오고, 그중 1편은 히트를 친다. 가장 최근 히트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변호사뿐만 아니라 송무팀에게까지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오죽하면 내 친구들도 ‘너희 회사에 이준호 같은 송무팀 직원 있니’ 했으니. 대학교에 가면 논스톱 같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유리상자였던 것처럼(그저 밈일 뿐입니다.) 로펌에도 나나 같은 조사원, 강태오 같은 직원은 없다. 그런데 워킹맘은 좀 있는 것 같다.


우리 팀은 기혼여성만 3명, 그중 워킹맘은 2명이다. 다른 친한 책임님이 있는 팀은 기혼여성 5명, 워킹맘 3명이다. 이 정도만 봐도 우리 회사에는 워킹맘이 꽤 있는듯 해 보인다. 그리고 그중 한 워킹맘은 자녀들이 벌써 대학생이다. 다른 로펌들은 더 많은 기혼여성과 워킹맘이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 로펌에는 도대체 왜 워킹맘이 많은 것일까? 내가 8년 전, 로펌으로 입사를 결정했던 이유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나름 괜찮은 업무강도와 규칙적인 업무시간이다.


나는 로펌에 입사하기 전, 국내 TOP3 홍보대행사와 국내 유명 공기업에 다녔었다. 대학교에서 취업진로 상담을 하던 중 나의 성격이나 강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게 홍보업무여서, 홍보대행사에 정규직으로 지원을 했었는데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사를 했다. 알고 보니 정규직(6개월 인턴 후 내부 평가 후 전환가능)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물속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23살, 갓 졸업한 여자아이에게 매사에 실수하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항상 밝은 ‘20대 초반다운 풋풋한’ 모습을 동시에 바랐던 상사들 때문이었다. 신입이 할 수 있는 실수는 사실 별 것이 아닌데, 회사스타일이었는지 내가 있던 팀은 작은 실수에도 크게 혼을 내는 분위기였고, 나는 실수를 하고 혼이 나면 주눅이 들었다. 주눅이 든 상태에서는 뭘 해도 뚝딱거렸고, 실수를 더 했다. 그러니 금방 적응을 못하고 입사초기와는 상반된 꽤 어두운 표정을 짓고 다녔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옆 팀 인턴은 밝다고 비교된다 하시며 ‘우리 팀이 잡아먹니, 웃고 다녀라’고 얘기하는 상사의 말은 더 큰 스트레스였다. 지하철을 타고 8시에 출근하던 나는, 결국 어깨에 담이 와서 한의원까지 다니게 되었다. 물론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과거에는 빌런이었던 것 같다. 다른 팀 인턴들은 밤새 함께 작업하며 야식을 사 오던 것에 반해, 나는 내 할 일을 끝내면 가도 되냐고 묻곤 눈치를 한번 보고, 가라는 말에 저녁 9시에 넙죽 뒤도 돌아보지 않고 퇴근해버리곤 했다. 그리고 3개월 차에, 믿었던 사수에게 순진하게도 이 회사에 다니지 않을 것이고 대학원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당시 비밀이라고 얘기했지만 그 사수는 팀원 모두에게 그 얘기를 했고, ‘쟤는 곧 퇴사하고 대학원 갈 아이’라고 소문이 났는지 사람들이 잘해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을 더 버티니 할만한 것 같았고, 퇴사하지 않고 일하겠다는 이야기를 그 사수에게 했다. 다음 날, 다른 사수가 출근하자마자 ’퇴사 안 한다고요? 대학원 갈 거 아니었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곤 다시 3개월 전처럼 모두가 못되게 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수들도 지금의 내 나이와 같았던 것 같은데, 나도 너무했지만 그들도 참 너무했다 싶다. 그리고 나는 결국, 내부의 평가가 있기 전에 내가 먼저 6개월 차에 회사를 관뒀다. 그리고 그 믿었던 사수는 나의 업무를 탐내하더니, 내가 관둔 다음 그 자리에 들어갔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힘들었지만, 밖에서 17시간 정도를 보내는 일상은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다.


두 번째는 더 신중하게 취업을 준비했다. 그 당시 핫했던 스타트업에 콘텐츠 작성 담당 정규직, 엔터테인먼트 홍보 정규직, 공기업 홍보실 인턴으로 합격했다. 엔터테인먼트는 CEO의 마인드도 좋았고, 직원, 소속 연예인들도 서로 대우가 괜찮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지금도 좋은 것으로 보임) 여긴 내 자리가 아니라고 느꼈다. 면접 중에 주말에도 격주로 출근을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만한 열정은 없었다. 그리고 스타트업은 그 당시 카카오페이지와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카카오페이지보다 오히려 더 인기가 많던 곳이라 욕심이 났었다. 그러나 워라밸은 안 좋은 것이 어린 나의 눈에도 너무나 보였다. 이전 회사에서 워라밸이 없어 퇴사를 했던 기억이 나서, 입사를 결정하기 전 부모님께 상의를 드렸다. 당시 아버지는 KEB외환은행에서 여신관리를 하고 계셨는데, 신생 스타트업의 부채와 발전가능성, 부도 관련을 여과 없이 설명해 주시며 나를 설득하셨고, 어머니는 그냥 단번에 공기업 인턴이 훨씬 낫다고 대답하셨다.(여기서 부모님의 성격이 드러난다 ㅋㅋ) 그리고 나는 공기업 인턴으로 두 번째 취업을 했다. 아직도 생각이 날 정도로 좋은 사람들과 일을 했었고, 업무 특성상 출퇴근이 남들보다 몇 시간 빨랐는데, 그 시간조차도 즐겁게 여겼었다. 장기 인턴을 하다가 무기계약직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기에, 같은 부서 사람들은 내게 더 있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고, 나도 망설였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정규직으로 입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인턴 연장을 고사하고 많은 선물과 편지, 눈물세례를 주고받고 퇴사를 했다. 워라밸이 만족되며, 그래도 사람들이 들었을 때 알만한 회사에 다니고 싶어 졌고,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낳고서도 재밌게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다니고 싶어졌다.


우리 회사는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면 좋겠어요


공부를 하다 보니 나는 영 엉덩이가 무거운 체질이 아니어서 싱숭생숭하던 때에, K로펌에 다니던 친한 언니가 앞서 말한 그런 회사를 다니고 싶다면 로펌에 지원해 보는 건 어떻냐고 제안을 했다. 나는 K로펌에 다니고 있지는 않고, 겁나서 그 로펌에 원서도 넣지 않았고(약간은 후회가 되는 점..^^) 당시 채용인원 오픈을 하던 로펌들 중 가장 그래도 네임밸류가 있는 로펌에 입사를 해서, 지금 8년째 다니고 있다. 아무래도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팀 바이 팀으로 사람들 성향, 업무강도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 회사가 워킹맘이 다니기는 좋은 회사라는 점은 역시 변함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곁에 두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다른 회사들처럼 신입이라면 으레 조금 더 일찍 출근하고 조금 더 늦게 퇴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을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회사는 많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육아기 단축근로, 출산휴가, 육아휴직에 관해서도 크게 막는 이 없고, 휴직을 마친 후 돌아와도 불이익이 대체적으로 없거나, 다른 회사처럼 큰 편은 아닌 것 같다. 남직원 중 몇 년 전에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쓰신 분도 있는 걸 보면, 그래도 로펌이 워킹맘으로서 꽤 다니기 좋은 회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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