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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여전사 Aug 30. 2021

엄마 나는 엄마를 쓸 거야

엄마 찬스는 못 써도 엄마 이야기를 쓸게

나는 ‘브런치 작가 신청’을 홧김에 했다. 내가 무슨 글을 써서 작가가 되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고 기획서를 제출했는지, 우리 엄마가 알게 된다면 엄마는 분명 또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속상해할 것이다.


나는 ‘작가 소개란’에 이런 문장을 썼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입니다. 개천 사람들은 저보고 돈 잘 벌어서 좋겠다 했는데, 용 친구들 틈에서 저는 여의주 하나 못 샀어요. 요즘은 개천도 재개발 들어가서 개천 친구들도 부자가 되어 버렸는데, 여의주 좀 살랬더니 너는 돈 잘 벌어서 대출이 안 된다네요? 그냥 개천에서 살 걸. 뭣하러 용은 되었을까요. 저는 제 일이 좋은데 노동가치가 0이라니 뭐 어쩌겠어요. 부업을 해야지. 글이 쓰고 싶어요. 글 쓰게 해 주세요.”


그날 나는 정말 화가 났다. 임대인보다 열 배에 가까운 돈을 이 집에 묶어두었던 나는 실거주를 사유로 퇴거하기를 바란다는 어린 임대인의 말에 내밀 수 있는 카드가 없었다. 그가 이 집에 투자한 돈은 일 년 전보다 정확히 7배 부풀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호갱 노노와 네이버 부동산을 뒤지고 뒤지다가 폰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폰을 들어 “아 그 앱 이름 뭐더라”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앱 보관함에서 꺼낸 것이 브런치였다.


억울한(?)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말해야 할 것 같은데 대상이 없었다. 벼락 거지된 썰을 연재 하겠다 마음먹었다. 나 같은 사람이 봐주겠지. 스스로는 고소득자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월급쟁이지만 나라에서 정한 고소득자. 미혼. 청약도 못 하고 돈을 합칠 수도 없고 대출 기준에서도 10%의 돈을 덜 받을 수밖에 없는. 집의 도움을 받을 수도, 아니 오히려 나중에 부모를 부양해야 할지도 모르는.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의 무주택자. (아니 근데 부모님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하필 또 왜 집인 거야! 집! 집! 그놈의 집!!)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나는 또 부동산에 상담을 갔다. 사장님은 나에게 돈을 잘 모았다고 칭찬해주었다. 하지만 내가 아주 기초적인 질문을 연속으로 하자 한심하다는 듯 “근데 투자 한 번도 안 해봤어요?”하고 물었다. “안 해봤는데요” “엄마 따라서 좀 다니지” “글쎄요, 저희 엄마는 저보다 돈이 더 없으실 것 같은데요.” 나는 웃었고 사장님도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너무 슬퍼졌다.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이 말을 들으면 엄마가 또 “엄마 아빠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투자를 잘 못 해서 미안해. 근데 투자할 돈이 정말 없었어”하는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 갈 집을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몇 주 전부터 항상 눈물을 머금고 하던 고백.


내가 어렸을 때, 이 부동산이 있는 동네에는 유원지가 있었다. 호수를 끼고 있던 유원지. 엄마는 이 동네만 가면, “그 유원지에서 놀이 기구 탔을 때, 나는 정말 우리 딸이 어떻게 될까봐 너무 무서웠어”라며 오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어머니들을 모시고 견학을 갔다 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를 탔는데, 엄마는 동생을 안고 탔고 나는 그 옆자리에 혼자 앉았다고, 그쯤 이야기 하면 엄마는 항상 “기억 안 나?”하고 물었다. “응, 안 나지. 유치원때라며” 놀이기구는 생각보다 너무 어둡고 빨랐고 엄마는 앞도 보이지 않는 그 놀이기구 속에서 내내 ‘우리 큰딸 너무 말라서 쏙 빠지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다고. 엄마 인생에서 제일 무서웠던 때라면서 그 이야기를 수백 번은 해서, 나는 이제 그 기억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사실은 기억도 안 나면서, 나는 그때의 나와 엄마, 동생의 모습을 그릴 수 있다. 그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나는 작년에도 친구들과 놀이공원에 놀러 갔는데, 엄마는 놀이공원에 나 없이 간 적이 있을까.


부동산을 나왔다. 유원지는 없어졌고 수십억짜리 건물들만 가득했다. 유원지에 있던 그때 그 호수가 아까 호수뷰 아파트를 설명할 때 말한 그 호수인가. 이 부동산 자리는 엄마가 그렇게 무서워했던, 내가 떨어져 죽을까 봐 무서웠다던 놀이기구 자리는 아닐까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내게 준 것들을 생각했다. 감사가 물밀듯 넘쳐흘렀다. 하늘이 분홍색이었어서 그랬던 걸까.


집으로 오는 동안, 나는 엄마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못 해줘서 매번 미안하다는 엄마지만, 엄마가 준 모든 것을 기록해야겠다. 자산 정리를 하듯, 엄마가 내게 준 모든 자산을 정리해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브런치 앱을 켰다.


분명 몇 년 전에 만들었는데,

마침 프로필 사진이 엄마와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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