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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Oct 28. 2024

엄마, 어디가?


  ‘주말마다 어디를 그렇게 다녀요?’ 동네 엄마들이 나를 보면 하는 말. 

  월요일이 되어 등교한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속닥속닥 주말의 일상을 늘어놓았겠지. 나는 아이들과 다니고 싶은 곳들이 넘쳐 고민과 선택의 연속인데, 그들의 눈엔 그렇게 다녀도 갈 곳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한가보다. 


  날씨가 좋으면 좋은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대로 금요일이 되면 일단 짐을 싸고 집밖을 나설 마음의 준비를 했다. 남편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혼자 애 둘을 데리고 떠났다.  왜 그렇게 다니냐고 묻는다면 의외의 답변이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엄마인 ‘나’를 위해서. 

 예고 없이 찾아온 번아웃으로 인해 집에만 웅크리고 있던 내가 여행으로 생의 의지를 다지게 되면서 집돌이였던 남편도 체념 반, 기대 반으로 외출에 동참하였다. 침대에 누워 내내 끙끙거리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는 설득이 꽤나 효과가 있었던 듯 싶고, 나중에 여자 셋의 여행에 소외되기 싫으면 어떻게든 잘 끼어 있어야 할 거라는 반협박이 은근 먹혔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이들까지 집에만 틀어 박혀 지내게 할 수 없었던 ‘엄마’라는 자리가 나를 침대 밖 세상으로 걸어나오게 한 건지도.


  그렇다면 아이 둘을 데리고 대체 어디를 그렇게 다녔을까. 

이 질문에서 클로즈업 해보는 ‘아이 둘’. 물론 아이 셋, 넷을 데리고 캠핑을 하고, 해외 여행을 다니는 가족도 많지만,  40대 중반의 에너지 고갈 상태에서 막 벗어난 엄마의 선택지에는 한계가 있었다. 


  처음 시작은 살고 있는 지역에 처음 관광을 하러 온 외국인이 되어보자는 다소 생뚱맞은 설정이었다. 그저 놀이 삼아 그들의 입장이 되어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보자는 의도였는데 아이들은 아이들인지, 엄마의 설정에 혼을 맡긴 듯 상황극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아이들은 정말 여행을 온 관광객이라도 된 양 지역의 여러 곳을 탐색하고 예전에 가봤던 장소들을 속속들이 소환해냈다. ‘한옥 카페, 떡볶이 박물관, 향토 문학관, 놀이 공원’ 등 여러 의견들이 난무하며 어른의 생각으로는 닿지 않는 의외의 대답으로 엄마를 웃겨주기도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군데씩 다 가보자며 외국인들에게 소개를 하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더니, 사촌들이 오면 꼭 데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선정을 해보겠다고(글치, 아무래도 영어는 어렵겠지?).  자연스럽게 소개의 주체자가 된 아이들은 ‘가봤다, 해봤다, 먹어봤다’ 3종 세트를 펼칠 생각에 신이 났다. 


  나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성장 배경, 힘든 순간을 이겨낼 연료가 되어주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부재. 아마도 그런 것들이 나의 번아웃으로 이어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라는 지점을 고민하던 때였다. 나의 아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내는 주도적인 아이들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 그런 아이들로 키워야겠다는 비장한 다짐. 그런데  사실 그 문장 앞에는 ‘학습’이라고 하는 부사어가 생략되어 있었다. 해야할 목록을 꼬박꼬박 지워나가는 삶에 높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온 내가 아이들에게 허락한 주도성이란 그런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아이들이 애정을 가지고 고른 장소는 스스로의 실행을 이끌어내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되어 주었다.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이라 생각했던 열 살, 여덟 살 두 아이들이 매주 걷고 만지고 듣고 느껴보며 이제는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말하며 자기 몫을 해내려 한다. 어느날부터 자기 짐은 알아서 챙겨 메고 손이 모자란 엄마의 짐을 선뜻 나누어 든다. 택시가 잡히지 않아 곤란해 하던 어느 날엔 일단 그냥 걸어보자며 씩씩하게 앞장서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전부인 줄 알았던 확신에 금이 가는 순간인 동시에 아이들의 성장을 눈으로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아이들의 에너지는 늘상 예상을 훅 뛰어넘는다. 그런 아이들을 진심으로 칭찬하고 격려하자 날개라도 단 듯 사뿐히 걷고 또 걷는다. 지친 기색이 없다. 아이들이 지치지 않는다는건, 아빠와 엄마의 체력을 상당히 요구하는 상황이지만 이것 역시 우리 가족에겐 큰 약이 되었다. 당시 내가 가진 마음의 병은 몸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는 움직여줘야 회복에 활기를 띄는 종류였기 때문이다. 

바리바리 싸들고 간 짐과 아이들 손까지, 손이 서너 개만 더 있었으면 싶었던 어느 날, 우리는 청계천을 뱅뱅 돌며 길을 못찾아 헤매고 있었다. 짐 챙기랴, 아이들 챙기랴, 이미 지쳐버린 엄마를 대신해 찰떡같이 길을 찾아낸 아이들. 엄마가 못 찾은 길을 찾아낸 아이들은 환호했고, 그런 아이들을 보며 엄마는 뭉클했다. 

“엄마는 눈이 여섯 개여서 너무 든든해.”

서로의 눈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해마다 여름이면 청계천의 그밤이 생각나 슬며시 웃는다. 


여행지에서의 사소한 어떤 장면을 되새김질 해가며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간들은 덤으로 주어진다.  

반복 재생의 순간마다 아이들은 자신만의 단어를 골라내고 자연스럽게 다음 여행에 대한 기대를 채워나간다. 

 

처음 가본 낯선 길을 걷고 그 장소를 느끼고 음식을 맛보는 것은 이제 즐거운 일상으로 자리잡았다. 작고 네모난 디지털 세상으로 빠져들기 전,  아이들을 반겨줄 넓은 세상을 부지런히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이 자신들만의 장면과 문장을 저장하고 수집해 나가는 순간에 함께하며, 나 역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아이들과의 밀도 높은 시간을 브런치에 기록해 나가고 싶다.

오늘쯤에는 물어올 것 같다. 

“엄마, 이번주는 어디에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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