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고 짐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승부는 배우 이병헌과 유아인 주연이다. 각각 실존 인물인 조훈현 기사와 이창호 기사를 열연했다. 배우 이병헌의 연기는 역시나 몰입도가 높았고 논란은 접어 두고 극 중 유아인은 이창호 기사를 투영하는 데 집중한 것 같다는 생각이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청출어람’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느껴지는 감정 대립이 대단했다. 스승으로서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 이었고, 승자도 맘껏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배우 이병헌은 제자에게 패한 뒤 감정적으로 질투, 당혹, 분노 같은 감정을 표출했다. 어릴 적 몇수 두고도 이겼던 제자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본인이 인정하기 싫었던 스타일로 패배했을 때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병헌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는 모습이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이때 배우 이병헌의 등을 두드려준 배우 조우진의 역할은 냉철하면서도 진심이 느껴져서 좋았다. 상대적으로 유아인 배우는 스승을 이긴 것에 대한 기쁨도 잠시 이내 미안함을 느끼며 승부의 세계에서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마다 이병헌은 "내가 그렇게 가르쳤나. 승부의 세계에선 승자와 패자만이 있을 뿐"이라며 다그친다.
흔히 승부를 가르자는 말을 하곤 한다. '이길 승' 자와 '질 부' 가 결합 된 한자어 '승부'는 의미 그대로 이기고 짐을 뜻한다. 감명 깊었던 것은 그렇게 이기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던 제자를 상대로 절치부심한 끝에 재차 타이틀을 뺏어왔던 장면이다. 항상 승자의 위치에서 도전을 받아들여야 했던 입장에서 도전자가 되어 치열하게 대국에 나선다.
영화에서는 마음을 편하게 내려놓는 것이 주효한 것으로 연출된다. 이기려 하다 보면 질 수 있고 되레 지려고 하다 보면 마음이 편해 이길 수 있다는 이치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란 익숙한 표현보다 마음을 먹고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모든 승부는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도 되새겨 본다.
다큐 형식을 본따 만든 영화인 만큼 후반부에는 약간 지루하기도 했지만, 오랜 만에 극장에서 만난 웰메이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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